청명한 날씨였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햇빛을 쬐는 사람들.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는 행인들. 도로를 느긋이 달리는 차량들.
그러나 평화로운 거리의 분위기는 머지않아 깨져 버렸다.
파지직!
맑은 하늘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어?”
마침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구경하던 이가 눈을 깜빡였다. 원체 하늘이 눈부셨기에 제가 잘못 본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바로 밝혀졌다.
파지지지직! 파직!
불꽃이 더욱더 격렬히 튀더니, 그 주변으로 공간이 끼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암흑 안에서 거대한 팔 한쪽이 빠져나왔다.
“헉……!”
힘이 풀린 손아귀에서 커피 잔이 떨어졌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요란한 소음에 시선을 준 사람들은, 커피 잔을 떨어뜨린 사람이 덜덜 떨며 가리키는 쪽을 자연스럽게 쳐다보았다.
“저, 저, 저기!”
“……!”
“아……!”
모두가 경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으아아아악!”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행인들은 물론이고 운전자들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차량들의 속도가 다급히 올라가며 너 나 할 것 없이 위험한 주행을 시작했다.
비명과 클랙슨 소리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괴물의 다른 쪽 팔마저 쑤욱 튀어나왔다.
그것은 허공을 짚은 채 기어 나와 이내 몸통까지 전부 드러냈다.
사람, 짐승, 곤충을 섞은 듯 혐오스럽고 기괴한 외형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허겁지겁 도망치면서도 괴물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심각하게 흔들려서 제대로 담기지는 않았겠지만, 이건 반드시 찍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인 것이다.
결국 영상까지 찍기 시작하여 신경이 분산되었던 터라, 학생은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악! 씹!”
그를 보고 많은 사람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거나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인근 셸터가 그리 가깝지 않아, 다들 더욱 필사적으로 달리기에 바빴던 것이었다.
떨어진 핸드폰이 뛰는 사람들의 발에 차여 멀리 날아갔다.
깜짝 놀란 학생은 벌떡 일어나 소중한 핸드폰을 줍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던 와중.
쿠우우웅.
괴물이 코앞에 착지했다.
거대하고 육중한 몸체가 내려앉은 여파로, 학생의 몸이 뒤로 튕겼다.
그는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았다. 온몸에 쓰라리고 둔탁한 통증이 밀려들어,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치밀었다.
하지만 당장 신경 쓸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끄르르륵, 키릭.
인간의 것이 아닌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 아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꾸라져 있던 학생은 겨우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
눈앞에서 촉수 같은 것이 흐느적거렸다.
혀.
그것은 괴물의 혀였다.
징그럽게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괴물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먹어 치워야 할지 가늠이라도 하듯.
어쩌면, 어떻게 가지고 놀까 고민하듯.
“허억, 헉.”
학교에서 교재로 배우거나 방송을 통해 보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가 솟구쳤다.
생존 본능에 따라 전신의 근육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볼품없이 벌벌 떨리는 몸은 지금 당장 죽음 앞에서 달아나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학생은 확신했다.
죽을 거야.
기적은, 짓밟히지 않았던 것에서 진작 끝났다.
……공포가 극도에 달해 굳어 버린 찰나였다.
눈 깜짝할 사이, 괴물의 혀가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끄르르르?
바닥과 붙어 버린 혀에 당황한 괴물은 손톱이 흉측한 모양으로 자라 있는 손으로 제 혀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도약해 온 남자가 괴물의 머리 위를 밟고 섰다.
검은 머리칼과 코트 자락이 흩날렸다. 한 손에는 서리가 떨어지는 창대를 쥐고 있었다.
학생은 넋을 잃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차은혁…….”
차은혁이다.
나, 이제 산 건가?
안도감으로 인한 눈물이 차올랐다.
차은혁은 S급 에스퍼였으니까.
에스퍼의 등급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고, 신속하게 괴물들을 처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 S급 에스퍼는 고작 넷에 불과했다. 그들은 모두 정부로부터 독립한 신 에스퍼 협회의 창립자들이었고, 괴물들을 상대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영웅으로 추앙받기 충분한 존재들이었다.
학생은 전율하며 차은혁을 바라보았다. 일말의 감정조차 담기지 않은 건조한 표정, 같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까지도 영웅적인 면을 부각하는 듯했다.
차은혁의 기척을 느낀 괴물은 혀가 바닥에 붙은 채로 고개를 털었다.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빠르고 거친 동작이었다.
그러나 차은혁은 중심을 잃는 법 없이, 그대로 손에 쥔 창을 유연하게 휘둘렀다. 괴물의 한쪽 눈알에 창날이 꽂혔다.
키이이이익!
괴물이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포기할 것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는지, 비어 있던 손으로 손톱을 세워 자신의 혀를 절단했다.
엄청난 양의 혈액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지척에 있던 학생이 그것을 뒤집어쓰기 직전.
학생의 두 눈이 멍하게 풀렸다. 그는 지체 없이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 간발의 차로 바로 앞 바닥에 피가 흩뿌려졌다.
적셔진 부분들이 괴사하듯 시커멓게 변해 갔다.
학생은 비교적 안전한 지점으로 휘청거리며 뛰어갔다. 이어서 잠에서 깬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제 몸이 멋대로 이동한 것을 눈치채고는 펄쩍 뛴다.
“어, 어…….”
“독이 든 피로 샤워라도 하고 싶었나요.”
나긋한 말투로 비꼬는 음성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곱슬머리의 존재가 보였다.
학생의 미성숙한 얼굴이 입을 떡 벌렸다.
주청경까지 오다니?
원래 네 명 다 괴물 사냥은 혼자 다닌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과거 불화설도 돌았더랬다.
하지만 서로 싸운 사건이 기사화된 적은 없으니 한때의 의혹으로 지나갔었다. 애당초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함께 뜻을 모아 독립된 에스퍼 협회를 만들 계획조차 하지 않았으리라는 여론이 압도적이기도 했고.
……일단 눈앞의 에스퍼가 얼빠져있던 저를 억지로라도 피신시켜 주었음을 깨달은 학생이 허리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
주청경은 차가운 낯으로 학생을 내려다보았다. 꼭 살려 주기 싫은 벌레를 살려 준 듯한 눈빛이었다.
이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얼굴을 돌린다.
괴물과 전투 중인 차은혁의 모습이 시야를 채웠다. 건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해 가며 싸우는 쪽은 괴물만이 아니었다.
“저런 데 화풀이나 하고.”
주청경이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리며 벽에 등을 기대었다.
“빨리 끝내기나 할 것이지.”
그가 이 근처에 있건만.
콰르르르!
상가가 무너지는 굉음이 주청경의 뒷말을 감추었다.
괴물이 건물의 잔해 위에서 경계 태세로 엎드렸다. 차은혁은 그런 괴물의 멀쩡한 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공격을 피하는 척 몸을 돌린 괴물이, 꼬리로 빠르게 그를 낚아챘다.
그대로 피가 콸콸 흐르는 주둥이 위로 꼬리를 옮긴다. 꽁꽁 감겨 있던 차은혁이 쩍 벌어진 괴물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으!”
주청경의 눈치를 보다가 그쪽을 구경하던 학생이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차은혁이 창끝을 세워 괴물의 턱을 뚫어 낸 모습을.
키이이이이!
괴물이 미친 것처럼 이리저리 날뛰었다. 차은혁은 괴물의 입 밖으로 빠져나와 바닥에 낙하했다.
독성 혈액이 피부에 튀었지만 괴롭지도 않은지, 소매로 대충 훔친다.
고통에 몸을 뒤틀던 괴물은 어떻게든 복수하기 위해 차은혁을 붙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공략당한 급소가 이미 여러 군데인 상황.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사지를 느낀 듯 괴물이 원통하게 울었다.
차은혁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정면에서 괴물을 마주 보았다.
키르르륵……!
피가래가 들끓는 울음소리가 멎었다. 발성 기관이 빙결됐기 때문이다. 차은혁은 손을 뻗은 채로 집중해, 서서히 괴물의 몸 안 전체를 얼려 갔다.
희번덕거리며 차은혁을 노려보던 눈알과, 발악하듯 퍼덕이던 꼬리의 움직임이 점차 줄었다.
결국 쿠웅, 괴물이 다시 한번 굉음을 울리며 쓰러졌다.
창이 꽂힌 채로 열려 있는 주둥이 안쪽이 하얗게 번쩍였다.
차은혁은 팔을 내리고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됐습니까.”
아무것도 없던 그의 옆에, 흑발을 짧게 친 또 다른 에스퍼가 나타났다.
심태성은 멀찍이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학생을 별 감흥 없이 흘끗했다.
“불필요하게 흥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자제하십시오.”
“…….”
차은혁이 피로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우리가 정답게 조언이나 주고받을 사이던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필요하다면.”
심태성이 짧게 대답했다.
그의 어둑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어느 한 방향을 돌아보았다.
“합의한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먼저 찾아낸 순서대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 기회를 만끽하는 동안 절대 방해하지 않을 것.
“내가 방해할 것 같았나?”
차은혁이 실소를 터뜨렸다.
일부러 요란하게 전투를 치러, 장희강과 그 아이가 있는 곳에까지 피해를 입히려 한 것 같으냐고.
그 물음에 심태성이 응수했다.
“그럼 아닙니까.”
그야 당연히 지독히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장희강도 제 기회를 앗아 가려 들 터다.
“아니지. 그래선 안 되지.”
차은혁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내 동생을 데리고, 절대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져야 해서.”
심태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처리를 위해 조용히 괴물의 사체에 손을 얹었다.
이윽고 괴물과 심태성이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