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태성이 엄청난 인내심으로 가이딩을 회피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허망한 걸 넘어서서 놀라울 지경이었다. 가이딩을 참는 걸로도 모자라 도망 다닌다니. 밀착 경호가 일이니까 근처를 지키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뭐, 불러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어디 가십니까, 도련님.”
차고로 걸어가는 길에 심태성이 나타났다. 멈칫하고서 그를 쳐다보았다.
역시.
“잠깐 볼일이 있어서 외출하려고…….”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찮아요. 혼자 다녀올게요.”
“안 됩니다.”
지나치게 단호한 대꾸가 돌아왔다.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은데요. 잠깐 다녀오는 거라서요.”
“동행하겠습니다.”
벽과 마주한 느낌이다. 내가 뭐라고 하든 무조건 따라갈 듯한 분위기였다.
아마 나에 대해 경각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가이드가 어딜 혼자 다닐 생각을 하나 싶겠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심태성이 운전대를 잡게 된 차 안은 조용했다.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가 덜 어색했던 것 같다.
목적지를 이야기한 후로 쭉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저, 몸은 이제 괜찮으세요?”
“……예.”
그가 내 쪽을 흘끗하며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조금 뒤에 자기도 묻는다.
“도련님께서는 좀 어떠십니까.”
“좋아졌어요. 원래부터 많이 아팠던 것도 아니었고.”
힘들긴 했어. 그래도 멀쩡해진 지가 언젠데.
“……다행입니다.”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경호원님.”
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불렀다.
“그날은 제가 실례했어요.”
“무슨…….”
“아무래도 간섭이 심했던 것 같아서요. 그렇게 가시고……. 제가 뭔가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심스러운 사과에 심태성이 침묵했다.
어떻게 응수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눈치였다.
“아닙니다. 전혀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이내 부정을 택한다.
그럼, 그럼. 불쾌하기는커녕 그 반대의 이유로 정신줄을 놔 버릴 뻔하지 않았을까. 지금껏 정체를 숨기느라 가이딩 자체를 받아 본 경험이 없었을 텐데,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냐고.
내심 흐뭇해하는 나에게 심태성이 이어서 말했다.
“오히려 제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네?”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에요. 저도 기분 나쁜 거 없었어요. 뭔가 이유가 있으셨겠죠.”
“그래도 충분히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정말로 사과하지 않으셔도…….”
반복적으로 말을 더 주고받다가, 문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졌다. 심태성도 마찬가지인지 둘이서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신호에 걸린 차가 멈추어 섰다.
상대를 향한 시선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작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무튼 서로에게 반감이 없다면 다행이네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제 쪽에서는.
낮게 덧붙인 말이 들린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냐고 묻는 대신, 예의상이라도 그런 말을 해 줘서 고맙다는 양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다 왔네요.”
부드럽게 풀린 분위기 속에서 어느 건물에 도착했다. 유명한 향수 브랜드였다. 주차 이후 발을 디딘 입구에서부터 향긋한 공기가 맡아졌다.
내부로 들어서니 화려한 앰플들이 진열된 채 방문자들을 맞이해 왔다.
“곧 생일인 친구가 향수 수집가라, 여기서 선물을 고를까 했어요.”
천천히 돌아다니며 여러 제품을 시향해 보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다. 과하지 않은 생화 향이었다.
“이거 괜찮네? 나도 써 볼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향수에는 원래 흥미 없었는데, 싱그러우면서도 살짝 달콤한 잔향이 나쁘지 않다.
묵묵히 내 뒤를 지키던 심태성이 관심을 보였다.
“잘 어울리실 것 같군요.”
“그런가요?”
“예. 하지만…….”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도련님 체향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
와.
이런 말을 대놓고 한다고.
말문이 턱 막힌 상태로 심태성을 돌아보았다. 의아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본다.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냥……. 그, 후각이 굉장히 뛰어나신가 봐요.”
“그런 편입니다.”
그래. S급 에스퍼가 오죽하겠어.
볼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낯 뜨거운 칭찬에는 면역이 없었다.
***
“은혁이랑 아는 사이라고 들었어요. 우리 은수 잘 부탁해요.”
정신력을 그러모아 가이딩을 벗어났던 날 저녁. 차 회장이 심태성을 불러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인사를 건네 왔었다.
아들의 경호원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얼굴에는 깊은 모성애가 드러나 있었다.
부와 권력이 가정 환경의 전부는 아니다. 차은수가 온화하고 상냥한 것은 가족의 애정을 넘치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형, 퇴근 때 마중 나온 막냇동생을 사랑스럽다며 끌어안는 누나까지.
비록 부친은 끔찍한 사건으로 잃었으나, 과거 차은혁의 말에 의하면 차은수로서는 기억도 못 할 갓난아기 시절에 비극이 일어났다고 들었다. 그러니 평생을 괴롭힐 악몽으로 남을 만한 상처 없이 자라 왔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일이 있었다던 차은수의 말을 떠올렸다. 고운 얼굴에 언뜻언뜻 드리우던 그늘 역시도.
아마도 최근에 가이드로 발현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차은혁이 차은수의 안위에 더 예민해졌을 테고. 차은수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인물을 물색하다가, 일반인으로 알고 있는 자신에게 경호 의뢰를 한 거다.
이로부터 결코 유쾌하지 않은 사실 또한 깨닫는다.
차은혁은 에스퍼다. 그것도 수준급의 가이딩이 절실한 S급 에스퍼. 그는 분명 차은수에게서 가이딩을 받았을 테고, 동생을 독점할 생각으로 그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외부에 숨길 예정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차은수의 몸이 아팠던 것도 차은혁을 무리하게 가이딩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능력의 위험성과 신체적인 면을 따져 보면 차은혁과 비슷한 등급일 자신이 차은수의 가이딩을 겪고는 이성이 붕괴할 뻔하지 않았나. 차은혁이 그보다 덜했을 이유는 없다.
어쩌면 형제는,
“고르는 데에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드라이브 좀 하다가 저녁도 먹고 들어갈까요?”
미성이 들려왔다.
심태성은 고개를 돌렸다. 현존하는 가이드 중 가장 뛰어날지도 모를 존재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상황조차 그저 좋기만 한데,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제안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심태성은 불쾌한 상념을 집어치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운전할게요.”
“…….”
심태성은 시동을 거는 행위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차를 몰아야 운전 중에 위기가 닥칠 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의 경우지만 설명해서 찝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입을 닫으니, 이유를 모르는 차은수가 마냥 아쉬워했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단호하시네요, 경호원님.”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으음, 글쎄요.”
고민에 빠져 턱을 톡톡 두드린다.
“아무도 없는 야외가 끌리는데.”
갑갑한 속사정에서 비롯되었을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심태성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핸들을 돌렸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달려 서울을 벗어났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였다.
멀리서 바다가 보일 때부터 탄성을 터뜨렸던 차은수가 차에서 내렸다. 바닷바람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뽀얀 입김을 흘리며 두 눈에 푸름을 담는다.
“너무 좋아요! 가슴까지 탁 트여요.”
“마음에 드셨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바다에 오고 싶긴 했거든요. 근데 즉흥적으로 다녀오기에는 어느 곳이건 거리가 좀 있으니까…….”
운전하는 사람의 피로를 걱정한 듯했다. 심태성은 그의 다정함을 또 한 번 느끼며,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한 차은수를 뒤따랐다.
“우리밖에 없어서 더 편한 기분이에요. 겨울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원래도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그래요?”
상가도 없는 주변을 둘러본 차은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에 심태성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아무래도 늦게 들어갈 것 같다고 연락드려야겠어요.”
“제가 회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차은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연락은 직접 하는 편이라서요.”
곧 그가 모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디 조곤조곤하던 목소리가 바람 속이라 조금 커졌다.
심태성은 벌써 발갛게 언 차은수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자신의 겨울용 외투를 벗어 어깨 위로 덮어 주었다.
마침 통화를 끝낸 차은수가 당황했다.
“경호원님! 이 날씨에 이걸 저한테 주시면…….”
“괜찮습니다. 저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편입니다.”
최상위 등급의 에스퍼에게는 한겨울의 기온도 추위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계절에 맞지 않는 복장으로 다니면 혹시라도 의심을 살 수 있어 갖춰 입었을 뿐이었다.
“감기 이전에 추우시잖아요. 여기, 얼른 다시 입으세요.”
“안 춥습니다. 그대로 덮고 계십시오.”
잠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호원님.”
결과는 이번에도 심태성의 승리였다.
심태성은 자신이 차은수에게 고집 센 이미지로 인식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몸이 약한 차은수를 보호하는 게 당연히 옳았다.
하지만 차은수는 심태성이 추운 걸 견디고 있다고 여기는지, 계속해서 좌불안석인 기색이었다. 결국 몇 보 더 걷지 못하고 몸을 돌린다.
“그만 차에 들어가요.”
“조금 더 계시지 않고 말이십니까.”
“제가 추워서 그래요. 그리고 풍경은 차 안에서 봐도 되죠.”
선의의 거짓말임이 훤하게 보였으나, 추위에 약할 차은수의 몸이 혹여 감기를 앓을까 염려된 심태성은 그 의견에 따랐다.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겨 차를 세워 둔 지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