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딩의 느낌이 어땠던가.
주청경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과거 장희강 측에 있을 때 받아 본 가이딩이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조직에 소속된 에스퍼들을 위해 거점에 가이드를 배치해 두고는 있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낮은 등급에 속하는 가이드들의 소극적인 기운이 제 파장을 떠보듯 건드리는 느낌은 무척 불유쾌했다. 결과적으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에 무엇 하러 매달리겠나.
그런데 지금은…….
“하읍……!”
모든 신경이 오롯이 상대에게 쏠린다. 언제부터였는지 자신은 눈앞의 가이드를 통째로 삼키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파먹을 기세로 입 안을 범하는 작태에 마른 몸이 뒤로 밀렸다. 그것이 못마땅해 강하게 끌어안자 차은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목을 울리며 신음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고통스러워하는 반응이었다.
……아, 이런.
이성이 돌아왔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수준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어쨌건 돌아오기는 했다.
가이드의 육체는 일반인과 다름없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러잖아도 제 파장 때문인지 힘겨워하던 기색이었는데.
뼈라도 으스러진 건 아니겠지.
주청경은 아쉬움을 넘어선 분노를 느끼며 입술을 떼어 냈다. 팔에서 힘도 풀었으나 품에서 놓아주지는 않았다.
“콜록, 콜록.”
“…….”
기침 섞인 숨을 내뱉는 모습을 번들거리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급이 높은 가이드이리라 추측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기대를 넘어서다 못해, 기적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존재였다.
“……이런 거구나.”
가이딩이.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황홀한 감각이, 저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떠한 스위치를 눌렀다.
이거 위험한데.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차은수의 옷을 찢어발기고, 여린 몸속으로 물건을 밀어 넣고 싶다.
뇌가 오직 그 한 가지 명령만을 내리고 있었다.
흥분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이 기분을 뭐라고 칭해야 할까.
“하하.”
그만 웃음이 튀어나왔다. 북받치는 감정에 떨리는 목소리가 본인도 느껴졌다.
왜 이제야 만난 것인지 화가 끓어오르면서도, 이제라도 나타나 준 가이드에게 고마웠다. 사랑스러웠다. 벌을 주고 싶다. 아니, 아껴 주고 싶다.
숨을 고르며 자신을 두려운 듯 쳐다보는 두 눈을 핥아 먹고 싶었다.
주청경은 희열에 가득 차 정신이 나가 버린 스스로를 인지했다.
“참기 힘드네.”
“…….”
“어서 갈까요.”
여기서 일 치르기 전에.
미소를 지으며 엄지 끝으로 청년의 붉어진 눈가를 문질렀다. 수치심과 공포에 차은수의 눈이 다시금 습해졌다. 투명한 눈물이 쏟아질 듯 차오르는 모습마저 갈애를 키운다.
가벼운 육체를 안아 들었다. 흠칫한 차은수가 가슴께의 옷을 움켜쥐어 왔다. 그 손끝을 잘근잘근 물고 싶지만 당장은 인내키로 했다.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차은수가 고개를 돌렸다.
젖은 시선은 피투성이가 된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심태성을 향하고 있었다.
***
난생처음 맞닥뜨린 에스퍼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 심태성의 능력을 몸소 겪어보았던 때처럼, 새삼 내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다.
능력을 이용해 온갖 지점에서 기습적으로 나타나 공격하는 심태성. 예지안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그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주청경.
내 육안은 그들의 동선을 전부 따라가지 못했다. 누가 타격을 입히고 입었는지 바로바로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심태성의 모습이 붉게 물들어, 그쪽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끝내 심태성이 의식마저 잃은 채 주청경에게 붙잡히고 말았던 순간, 나는 진짜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이딩을 받아 상태가 좋은 그가, 반대로 상태가 엉망인 주청경에게 그토록 당할 줄은 몰랐다.
물론 나는 주청경이 이곳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고, 납치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태성이 패배했어야 하기는 했다.
……제3의 눈으로 전부 알게 되었으니까.
지금 상황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과 주청경이 협심해 누군가를 치려고 하는데, 그 상대가 장희강이다.
장희강은 내 공략 대상 중 하나이자 국내 최대 규모인 테러 조직의 수장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기도 하다.
장희강도 주청경도 테러리스트지만, 형이 주청경과 손을 잡은 이유는 오랫동안 추적해 온 원수를 잡는 데에 그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형이든 주청경이든 처음부터 서로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 만만했다.
형은 주청경과 세운 작전에서 미리 합의한 바와 달리, 주청경의 조직 역시 소탕할 계획이었고…….
주청경은 지금처럼 나를 낚아챌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를 기회 삼아 주청경을 어떻게든 휘감을 예정이다.
사실 어렵게 갈 것도 없다. 순순히 따라가서 몸정 좀 들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같이 정들 테니까.
가이딩 초반에 형과 심태성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해 보면…….
“…….”
“…….”
아니, 당장 차내에서 나를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 두고 있는 주청경의 모습만 보아도 벌써 넘어왔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까 입을 맞추면서 내 몸을 부숴 버리려고 했던 점은 상당히 무섭지만, 그 또한 그만큼 감정적인 작용이 컸다는 뜻이니 청신호다.
주청경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미친놈이 이렇게 봐 오니까 긴장도 되고…… 좀 짜릿했다.
“도착했군요.”
외진 지역에 차가 멈추어 섰다. 깔끔하면서도 음산한 느낌이 풍기는 건물 입구에, 에스퍼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나는 내 발로 걷겠다는 듯 몸을 움직이려 들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조직원이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자, 주청경이 나를 소중히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해 오는 수하들을 지나 실내로 들어갔다. 어둑하고 삭막한 분위기의 홀이었다. 분명 많은 이들이 지내는 곳인데도 굉장히 정적이다. 주청경은 그곳에 위치한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만 쓰는 층인지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복도의 가장 끝에 자리 잡은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제 침실입니다.”
주청경이 손님에게 집을 소개해 주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외부 전경이 보이는 창문과, 무채색으로 구성된 벽과 바닥이 방문자의 기분마저 황량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각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들은 모두 엄청난 고가의 것이었다. 개중에서도 침대와 소파가 특히나 그러했다.
이유야 알고 있다.
주청경은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을 통증으로 느낄 만큼 파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 구태여 따지자면 예전의 형과 심태성보다도 확연히 나빴다. 그러니 전신을 기대고 쉴 수 있는 부분들에는 이만큼이나 신경을 쓸 수밖에.
그래, 저 침대는 나도 아는…….
“…….”
침대 위로 곱게 펼쳐져 있는 옷에 시선이 갔다.
저게 웬 원피스……?
“아.”
내 시선을 따라간 주청경이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음……. 제 취향을 잘 아는 분이 준비해 뒀나 보네요.”
원피스와 나를 번갈아 보는 적색에 가까운 흑안이 한층 더 끈적해졌다. 아까부터 여유를 가장하고 있지만 이성이 뚝 끊기기 일보 직전인 상태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애당초 여태 참아 낸 것이 대단했다. 물론 심태성도 인내심이 강했지만, 처음에 만난 당시에는 손만 붙잡은 수준이었지. 아까처럼 키스하던 중에 멈추는 거라면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나는 심상찮게 느껴지는 취향이란 단어에, 주청경의 선호 섹스 키워드를 떠올렸다.
띠링![각 에스퍼별 선호 섹스 키워드...주청경: 여장, 거울, 음담패설...*공통 키워드: 다섯 시간 이상]
맞아……. 여장……. 이게 있었지.
눈치를 보아하니 나한테 입힐 것 같다.
……존나 변태 같았다.
“우선 씻을까요?”
주청경이 본인과 내 모습을 훑어보며 말했다. 주청경이 승전하기는 했어도 압도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크고 작은 상처, 땀, 핏자국이 그득했고, 나는 나대로 부상을 입은 심태성을 끌어안고 우느라 몰골이 엉망이 된 지 오래였다.
상태가 심각했던 심태성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시스템이 잠잠한 것을 보니 죽거나 폭주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타이밍이 될 때 제3의 눈을 사용해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성큼성큼 주청경이 욕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란 척 상체를 뒤틀었다.
“내려 주세요. 제가, 제가 알아서 씻을게요. 아니면 먼저 씻고 나오시면…….”
“……네?”
걸음을 멈춘 주청경이 미간을 좁혔다.
“그건 어렵겠는데.”
“……!”
“혹시……. 제가 잘 참고 있으니까 멀쩡해 보입니까?”
웃지 않아 무표정해진 낯과, 일견 차가운 목소리가 나를 내리눌렀다. 잠깐이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
살기를 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형이나 심태성에게서는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던 종류의 위압감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주청경이 고개를 숙여 왔다.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가 퇴폐적인 여우상의 얼굴로 흘러내렸다.
“웬만하면 제 뜻에 따라 주세요.”
흐트러진 숨결이 섞인다.
“최대한 막돼먹지 않게 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