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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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내로 들어온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차은수가 차창 너머의 경치 감상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수면이 반짝거리는 바다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평화롭네요.”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차은수가 중얼거렸다.
“아무런 생각도 안 들어요.”
그런 차은수를 심태성이 바라보았다.
“근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대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리 없음을 안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이 그만 튀어나와 차은수를 건드렸다.
잔잔하던 청년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졌다.
“너무 티 났나요?”
곧 쓰게 웃는다.
“하긴……. 제가 대놓고 말씀드리기는 했었죠. 일이 있었다고.”
정면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이제야 심태성을 향했다.
“경호원님은, 가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수성이 자극된 상태여서일까.
차은수의 이면이 연약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의외의 결과에 심태성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이드 말이십니까.”
“네.”
“가이드는…….”
가이드는 불가결의 존재다. 에스퍼의 고통을 줄여 주고 그들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만들어 준다. 심태성은 그 사실을 진작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몸으론 뒤늦게 깨우쳤다.
차은수에 의해.
다만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은수를 향한 극심한 갈증이 들어찼다.
얼마나 인내하기 어려웠던가. 지글거리며 타오르던 폭력성은 지금도 그 기세를 낮춘 채 언제든 폭발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에스퍼를 사람답게 살게끔 합니다.”
속내를 감춘 채 정석적인 답변을 꺼낸다.
“에스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래요?”
차은수가 다시 눈길을 돌렸다. 바다를 보는 얼굴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저희 형도 경호원님과 비슷한 말을 했어요.”
차은혁이 그랬나.
심태성은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혼자서는 지니고 있는지조차 모를 힘이 누군가를 살린다는 거.”
차은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 신기해. 가이드 입장에서도 말이에요.”
“……!”
심태성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비밀을 발설한 차은수의 행동에 놀란 것이었다.
그 반응을 자신이 꺼낸 내용에 당황한 것으로 해석한 듯, 차은수가 쓴웃음을 짓는다.
“네. 저 가이드예요. 형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죠.”
눈이 마주쳤다.
“경호원님께도 끝까지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발현한 걸 감추려고 했거든요. 형이 그러길 바라서요.”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심태성이 기쁨을 억누르고서 물었다.
차은수는 잠시 침묵했다.
“도움을 드리고 싶으니까요.”
……뭐?
“경호원님도, 가이딩 필요하시잖아요.”
심태성은 숨을 멈추었다.
뇌가 굳어 버린 듯했다.
내가 에스퍼라는 사실을 차은수가 안다.
어떻게?
“실은…….”
그를 살핀 차은수가 머뭇거렸다.
“경호원님과 닿았을 때 깨닫게 됐어요. 가이딩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심태성이 탄식을 삼켰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지금에서야 떠올린 스스로가 몹시도 아둔하게 느껴진다.
가이드가 본인의 가이딩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지 않나.
당시 청년의 놀랐던 표정은, 에스퍼가 아니라던 자신의 말이 거짓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척해 주셨던 겁니까.”
어렵게 말문을 떼었다.
차은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숨기실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여겼어요. 가이딩 받는 걸 꺼리시거나, 어쩌면 가이드를 싫어하실 수도 있다고.”
“…….”
“근데 방금 경호원님 답을 들어 보니 그렇진 않은 것 같네요.”
따스한 색채를 덧입은 연한 갈색 눈동자에, 구원이 필요한 사내가 묶였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얀 손이 내밀어진다.
“도와드릴 수 있어요.”
심태성은 가만히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차은수가 왜 먼저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지.
남의 비밀을 지적하려면 자신의 비밀 역시 드러내야 옳다고 여긴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고스란히 보였다.
심지어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돕기 위함이라니.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으면서도, 본능은 그것을 막아섰다.
그냥 잡으라고.
어리석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경호원님.”
고민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는지 차은수가 그를 불러 왔다. 그러고는 다소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어서 입을 열었다.
“형은 제가 가이드란 사실을 깨닫고도 저를 지나치게 배려해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심태성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도 제 몸이 조금 안 좋다고, 실수로라도 더 가이딩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떠난 거죠. 그러니까 제대로 알아보고 형한테 가이딩해 주고 싶어요. 가이드가 어떻게 해야 에스퍼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깐다.
“저도 가이드로서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
“제가 경호원님을 돕는 것만이 아니라, 경호원님도 저를 돕는 거예요.”
상대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선량한 가이드가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다면, 가이딩을 갈구하는 수준이 높은 에스퍼일수록 비정상적인 소유욕도 커진다는 점이었다.
심태성은 걷잡을 수 없으리만치 부정적인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꽉 말아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그러고는 충동적으로 차은수의 손을 잡았다.
“아……!”
갑작스럽게 당겨지는 힘에 청년이 끌려왔다.
심태성이 고개를 틀어, 가까워진 상대의 입술을 삼켰다.
잡아먹을 듯한 눈빛과 직면한 차은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심태성은 긴 속눈썹의 자디잔 떨림까지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긴장으로 꼭 다물린 입술을 깨물자 움찔하며 벌어진다. 그 틈새를 파고든 심태성이 길고 두꺼운 혀로 차은수의 입 안을 헤집었다.
반사적으로 숨으려 드는 혀를 낚아채어 얽고, 부드러운 입천장을 강하게 훑는다. 차은수에게는 미약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난폭한 움직임이었다.
심태성은 극도로 흥분한 스스로를 인식했다. 마치 아귀처럼 가이딩을 흡수하고 있지 않나.
제어해야 할 필요를 느꼈지만, 그 생각도 고작 찰나였다.
지독하게 결여된 것이 채워지고 있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염원하던 무언가가 기적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쾌감으로 치환되는 추상적인 느낌은 더 큰 감각을 바라며 오히려 몸집을 부풀렸다.
“으응, 읍.”
팔을 붙잡아 오는 차은수의 눈이 서서히 흐려진다. 가이딩에 정신이 이지러지고 있는 듯했다. 그러함에도 굶주린 에스퍼를 받아 주기 위하여, 일절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욕망이 미친 듯이 들끓었다.
그대로 차은수의 허벅지 아래로 손을 넣었다. 가벼운 몸을 쑥 들어 제 위로 데려와 앉혔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차은수의 숨과 타액을 탐욕스럽게 취하며, 고급스러운 재질의 상의 안에 손을 넣었다. 손바닥으로 착 감기는 보드라운 살결에 머리가 뜨거워진다.
츕, 붙어 있던 점막이 외설스러운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경호원님…….”
작게 숨을 몰아쉬는 차은수의 얼굴이 붉다. 그저 노을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심태성이 낮게 그르렁거리듯 호흡하며, 차은수의 쇄골에 코를 묻어 향긋한 체취를 맡았다. 안쪽에서는 허리선부터 쓸며 올라간 손이 가슴을 덮었다. 정점을 지분거리자 마른 몸이 낭창하게 휜다.
“흐읏.”
놀라울 정도로 민감한 육체였다. 금세 톡 튀어나온 유두의 감촉에 심태성이 참지 못하고 셔츠를 휙 들치었다. 턱 밑까지 말려 올라가게 된 옷 아래로 차은수의 상체가 드러났다. 색이 옅고 앙증맞은 젖꼭지를 뚫어지게 보던 심태성이 그곳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겨, 경호원님. 잠깐,”
가슴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몸을 파득 떤 차은수가 만류하려 했으나, 심태성은 빠르게 유두를 입에 담았다.
“하으응!”
평소 만질 일조차 별로 없는 부위가 타인의 입 안에서 굴려진다. 차은수는 심태성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차은수의 행동에 한층 밀착된 심태성이 돌기를 질척하게 빨았다. 과실이라도 맛보는 듯한 혀 놀림에 청년에게서 감미로운 신음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입을 떼어 내자 반들거리는 가슴이 시각을 자극했다. 처음부터 반응해 온 아래가 뻐근하게 일어섰다. 자신의 엉덩이를 찌르는 그것을 내려다본 차은수가 눈을 꾹 감았다. 심태성은 차은수의 뺨에 입술을 누른 후 귓가에 속삭였다.
“눈, 떠 보십시오.”
눈꺼풀이 다시금 올라갔다. 구슬 같은 눈동자가 성감에 물기를 머금은 상태였다. 그곳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도록 핥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심태성은 실낱처럼 남은 이성 줄을 간신히 잡아챘다.
“이 이상 간다면 멈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아프고 괴로우실 겁니다.”
그리고 경종을 울려 주었다.
일순 고요해진 차내에서, 차은수가 입을 달싹였다.
“저는…….”
여태 뒤통수에 머무르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너른 어깨 위로 자리를 잡았다.
“제 생각은 변함없어요, 경호원님.”
미형의 얼굴이 수줍게 눈을 내리뜬 채 다가왔다.
가지런한 앞니가 심태성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 온다.
……아.
심태성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জীয়াই থাকিবTempat cerita menjadi hidup. Temukan sek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