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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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혁에게 상부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에스퍼 테러 조직의 근거지를 색출해 내라는 내용이었다. 그에 팀 전체의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과거 몇 번이고 시도했던 일이다. 꼬리라도 잡게 되면 충돌할 때마다 전투가 일어나 적잖은 인명 피해를 일으켰더랬다. 한동안 평화로운 편이었던 까닭에, 그때의 참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은 모두를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에서도 지난 호텔 테러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결코 좌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국민 모두가 두려움과 분노에 떨고 있었다.
“모든 인력이 여기 묶일 수는 없다.”
차은혁은 이번 임무에 함께할 팀원들을 호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향한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태 그들이 잡으려 했고, 여전히 잡으려 하는 장희강의 세력이 이번 사건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을.
실제 주모자와 차은혁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양심에 찔리지는 않습니까?”
본부의 무기고로 향하는 통로. 조용히 함께 걷던 부팀장이 대뜸 물어 왔다.
평소와 다른 억양, 뜬금없는 질문.
차은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서서 부팀장의 멱살을 낚아챘다.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옥죄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당신에게 신뢰 가득한 눈빛들이던데.”
급소를 잡힌 상태에서도 주청경은 여유로웠다.
심기가 거슬린 차은혁이 낮게 받아쳤다.
“같잖은 도발 집어치우고 정보나 뱉어.”
“이렇게 취급이 박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주청경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가 왜 이번 일을 벌였겠습니까. 그 정도는 돼야 웃대가리가 오늘같이 명령을 내릴 테고,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당신이 나서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이어 조금 유감스럽다는 듯 말한다.
“저도 쓸데없는 살생은 안 좋아한답니다.”
“헛소리.”
“네, 뭐. 실은 쓸데없지 않았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빠른 수긍과 함께 범죄자가 웃었다.
차은혁이 거칠게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곧 주청경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장희강은 군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절대 반길 수 없는 소식이었다.
차은혁이 침묵했다. 짙은 눈썹이 우그러진다.
“군대라고.”
“네.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죠.”
흐리멍덩한 눈이 잠시 허공을 쳐다보다가 내려왔다.
“기지는 연단 지하에 있습니다. 작은 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규모고요.”
차은혁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곳에 있는 대다수는 에스퍼입니다. 납치당한 가이드들도, 일반인들도 있죠.”
“일반인?”
“정신 계열의 능력을 지닌 에스퍼들이 다루기 쉬운 도구들이니까요. 전투할 때 유용하겠죠.”
대수롭지 않게도 덧붙인다.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습격해야 할 겁니다.”
“…….”
주청경이 표현한 크기라면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전력이 필요할 터였다. 교전이 기지 내에서만 벌어지리라 확신해서도 안 되고, 설령 점거에 성공하더라도 장희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신이라면 그자의 능력을 알고 있겠죠.”
알다마다.
차은혁은 어린 제 능력의 결과를 아무렇지 않게 쳐 내었던 놈의 모습을 되새겼다. 상대 에스퍼의 힘을 무효화시키는 능력. 어떻게 보면 방어적이지만 기실 그만큼 공격적인 능력도 없었다.
“아, 그렇지. 심태성이라고 하던데.”
별안간 주청경이 말을 툭 던져 왔다.
“차은수 씨 경호원 말입니다.”
차은혁은 어떻게 알아내었는지 캐내기보다, 무슨 속셈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청경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주청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능력이라면 작전에 함께하기 적합할 텐데요. 안 그래요?”
“…….”
확실히 심태성이라면, 순간 이동을 활용한 공격으로 장희강을 방심시키는 데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 돼.”
그러나 차은혁은 단칼에 잘라 냈다.
끔찍하게 못마땅하지만, 심태성은 언제고 반드시 차은수의 곁에 붙어 있어야만 한다. 본인 또한 그와 생각이 동일할 테니 어차피 동행을 요구해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다.
“으음……. 하긴.”
구태여 털어놓지 않아도 안다는 듯, 주청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같아도 그러겠네요.”
기분 나쁜 공감에 인상을 찌푸린 차은혁이 턱짓했다.
“기지에 대한 것, 네가 알고 있는 것. 전부 더 자세히 말해 봐.”
“그럼요. 얼마든지.”
타인의 탈을 쓴 에스퍼가 매끄럽게 미소 지었다.
차은혁은 주청경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주청경이 흔드는 카드는 살펴봐 줄 가치가 있었다.
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던가.
장희강이 찾아오기 전에, 제가 먼저 그를 찾아내어 박살 내는 것이 아니었나.
***
꿈을 꿨다.
나는 제삼자의 시점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와, 퀄리티 봐라.’
꿈속의 내가 어떤 게임 광고를 접했다. 꽤 끌렸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설치한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광고에 쓰인 게임 제목이나 일러스트가 모자이크 처리라도 된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뭔 생존물인 줄 알았더니……. 장르가…….’
어째서인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플레이하기 시작하더니만, 한동안 나는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퇴근 후, 휴일, 시간만 나면 노트북을 붙들었다.
마냥 즐거운 내용만은 아니었는지 나날이 얼굴이 피폐해져 갔다. 어이가 없는 점은, 그러면서도 흥미를 끊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지만 꿈 특유의 부유감이 그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게임은 질리기 마련인데, 꼭 중독자처럼 몰두하는 나를 그냥 하릴없이 구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정신을 차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귀신에 홀린 듯했던 스스로를 되짚어 보며 꺼림칙해하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시발, 왜 이렇게 실감 나선.’
나는 그것을 접기로 결심했다.

[■■ ■■■■ ■■■■]
[종료하시겠습니까?]

게임의 제목으로 추측되는 부분 밑으로, 끝낼 의사를 묻는 문구가 떴다.
평소와 다르게 단호하게 ‘예’를 누르는 내 모습을 끝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
뭐냐, 이 의미 없는 꿈은.
그보다 무슨 게임을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었지?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드르르륵. 드르르륵.
익숙한 패턴의 진동음이 들려왔다. 협탁에서 몸을 떨고 있는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아 쥐었다.
[형]
잠긴 목을 풀고자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응, 형.”
-아직 자고 있었어?
모바일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이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편이었다.
“그러게. 다들 출근하는 것도 못 봤네.”
형은 늘 그래 왔듯이 나를 들여다보고 갔겠지만.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지. 근무 중일 때는 웬만하면 메시지만 하는 편이었는데 말이다.
내 의문을 알아챈 듯 형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부터 몇 달 동안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서.
“……어?”
이렇게 갑자기……? 심지어 며칠도 아니고 몇 달?
눈을 깜빡거리다가 핸드폰을 고쳐 쥐었다.
-서울에도 아예 없을 거다.
자세히는 말해 주지 않는다. 물론 원래부터도 무슨 임무에 다녀온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다. 직업상 기밀인 경우가 다반사니까.
이불을 톡톡 두드렸다.
……호텔 테러 때문인가.
이번 일로 하달받은 임무라면, 테러 조직의 벌집을 찾아내어 쑤시라는 종류의 것이 아닐까 싶다.
주청경이 머리를 스쳤다. 그쪽 소속일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장희강의 존재도 거슬렸다.
이번 건은 아무리 형이라도 위험하지 않나.
서서히 싹틔우는 초조함에 입술을 핥았다.
“형, 가이딩은…….”
-상태 괜찮은데.
마침 넘치게 받고 가긴 했다.
입을 다물자, 형의 저음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위험한 데 가지 말고 항상 조심해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소리야, 형.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나보단 형이 조심해야지. 시간 날 때마다 꼭 연락해.”
-그래.
“일 끝나면 우리 집으로 올 거지?”
-당연히.
방금 말한 우리 집은 이곳이 아니라, 당장 다음 주가 입주 예정인 새 거처였다. 형과 나, 그리고 심태성이 지낼 곳.
내가 나가 살아야겠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형이 진작 봐 둔 안전 가옥이 있다고 답해서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시간을 단축하고 고민 없이 거기로 가게 되었다.
“그럼, 형……. 다치지 마.”
-…….
내 목소리에서 뭘 느낀 것인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뒤늦게 그러겠다고 답한 형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고민에 잠겼다.
뭔가 큰 거 하나 터질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과정으로, 모르는 곳에서 S급들끼리 싸울지도 모른다는 점이 불안감을 안긴다. 퀘스트에 나 자신과 나라의 명운이 달린 이상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러다 폭주라도 하면 망한다고, 시발.
띠링!

[차은수 님께 드리는 두 번째 환생자 특혜!]

“……!”
뭐?

[알 길 없는 상황에 답답하시죠?]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제3의 눈을 제공해 드립니다.]
[눈을 감고 원하는 대상을 떠올려 보세요.]

입을 벌리고 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놀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근데 어쩐지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 답답해서 능력을 준 것 같다면 착각인가.
“…….”
이제 그저 수상쩍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시스템이지만, 거짓으로 능력을 부여했을 것 같지는 않다.
쿵쿵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주청경을 생각했다.
놀랍게도 마치 눈을 뜬 것처럼 앞이 환해진다. 어느새 나는 위에서 굽어보듯 어떤 어두운 장소를 살피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몸을 쓸 생각입니다.
-허튼수작 말고 네 본신으로 와라.
남한테 또 빙의한 듯한 주청경에게 혐오감 가득한 말을 던진 상대는…….
형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জীয়াই থাকি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