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정답이라고 칭찬이라도 해 줘야 하나.”
“대체 왜 그런 짓을……!”
정보원이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스스로도 간이 부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 주청경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면 정당한 방법으로 가이딩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S급 가이드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 어째서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온통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뿐이었다.
“내가 내 가이드를 데리고 있는 게 문제가 됩니까?”
하지만 도리어 주청경이 의아하게 물었다.
정보원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그쪽이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닐 텐데요.”
“……!”
“솔직히 화가 좀 났거든요.”
주청경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에게서 위협을 느낀 정보원이 전투태세를 취한 순간이었다. 아주 잠깐 시야가 점멸했다. 육체의 주도권을 갑작스레 잃었다가 되찾은 느낌이었다.
“허억……!”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정보원은 주청경이 능력을 사용했음을 깨달았다.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쓰러진 자신과는 다르게, 주청경은 기울었던 몸을 똑바르게 세웠다.
“집에 숨어든 것도 못마땅한데, 이딴 걸 가져온 것도 그렇고.”
우지끈. 소형 기계가 주청경의 손안에서 부서졌다. 파편들이 정보원의 코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주청경이 깔끔하게 손을 털었다.
“내 가이드를 살펴보려고 했던 것도.”
“…….”
“실은 잔뜩 흥분해선, 아, 나도 그 사람한테 가이딩 한번 받아 봤으면…… 하는 그 욕심도 말입니다. 너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그는 한기 서린 목소리로 제 기분을 강조하며 내뱉었다.
정보원은 다시금 심해진 두통에 몸을 웅크리고 헐떡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신의 속내를 까발리며 치욕을 안기는 이에게 공포가 솟구쳤다. 주청경의 행태를 납득하기 어려워 비난한 것과는 별개로, 내심 완벽한 가이딩에 목마른 에스퍼로서 상위 가이드를 욕망하는 마음을 그대로 읽힌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평생 우리 은수 씨 걱정을 달고 살겠죠. 계속 눈을 떼고 있지 않아도 불안할 거야, 아마.”
창백한 얼굴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음성만큼이나 차디찬 시선이 정보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아무래도 처분은 용도를 다한 후가 좋겠죠?”
섬뜩함이 정보원의 전신을 할퀴었다. 최악의 미래를 직감한 그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
깔끔하고 우아한 외관의 건물 내부. 젊은 남자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각종 향수 컬렉션이 진열되어 있는 곳을 지나 대표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늘어져서 핸드폰을 하는 청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허.”
서글서글했던 인상이 구겨졌다. 남자가 자리로 가서 재킷을 벗으며 물었다.
“평일인데 학교 안 가냐, 사촌 동생?”
“응, 오늘은 수업 없어. 사촌 형.”
“……무슨 대학생도 아니고.”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때는 말이야, 학교를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
“웃기라고 하는 소리지?”
사촌 동생이 코웃음을 쳤다.
“나도 형처럼 대학교 조기 졸업 하고 사업 시작하고 싶기는 한데, 그렇게 살기는 싫어.”
“…….”
“그러니까 저 용돈 좀 주십쇼, 서준호 대표님.”
서준호는 기가 막힌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집에서 쉬거나 친구랑 놀 것이지. 왜 여기로 찾아와선 용돈이나 달래?”
“핸드폰 새로 산 뒤로 돈이 없단 말이야.”
“작은아버지께 받은 카드 있을 거 아냐.”
“그건 진작 뺏겼지.”
앳된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내가 괴물 영상 찍고, 핸드폰 챙기려다가 죽을 뻔했다는 거 듣자마자……. 으, 그때 맞은 등이 여태 아파.”
서준호의 표정이 잠시 경직되었다. 그 또한 사촌 동생이 괴물과 맞닥뜨려 죽다 살아난 사건을 알고 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타박상을 입기는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당시에는 그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몸은, 다 낫긴 했어?”
“당연하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사촌 동생은 항상 낙천적이었다. 큰 사고를 겪은 이후의 트라우마를 호소하지도 않는다. 서준호는 그런 점을 부럽게 여겼다. 제 머릿속에는 잊고 싶은 기억이 너무도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서준호의 반응을 본 사촌은 아차 하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괴물에게 친구들을 잃은 서준호가 폐인처럼 지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의 생일은 수많은 이의 기일이 되었고, 서준호는 자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이들을 애도하며 한동안 제정신이 아닌 채로 지냈다.
괴물을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사촌은 미안해진 기분에 머뭇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 형 말대로 친구나 만나러 가야겠다.”
“이렇게 바로?”
“얼굴 보려고 잠깐 온 거라. 일하는 거 방해할 생각은 없었거든?”
사촌이 부러 툴툴대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서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네 카드에 입금했다.”
“헛……!”
사촌은 감격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머쓱해하던 것도 까맣게 잊은 채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역시 재벌 형이 있어야 삶이 윤택해져.”
“얼른 가. 나 곧 회의 있어.”
“넵!”
깍듯하게 고개를 꾸벅 숙인 사촌이 경쾌하게 문밖으로 나섰다. 서준호는 그 뒷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S급 에스퍼들이 나타나 준 덕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며, 병원에서 열변을 토하던 사촌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괴물들도 잡아 죽이는 능력자들이 적이었다면, 아마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인류의 목숨을 앗는 쪽은 에스퍼였을지도 모른다. 터무니없는 상상은 아닐 것이다. 힘, 권력, 이념……. 괴물이라는 위기가 없었을지라도 분명 다른 요소들이 세상에 갈등을 초래했을 테니까.
서준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사촌 동생을 구해 준 고마운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에스퍼들에 관한 생각은 늘 좋게 끝나지 않았다.
띠딕, 띠딕. 탁상시계에서 작은 알람이 울렸다. 매일 상품을 둘러보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그였기에, 필요한 서류를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평소 선호하는 생화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린 그가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대기 중이던 비서가 따라붙었다.
“오늘 론칭 예정인 라인에서…….”
경영진과 함께 신상품을 살피던 시점이었다.
부르르르. 진열대에 세워져 있던 유리병들이 떨리기 시작했다.
“엇……!”
“뭐, 뭐야.”
모두의 눈에 띌 만큼 확연한 떨림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의아함이 스쳤다. 진동은 점차 강도가 세지며 진열대만이 아닌 발밑과 창문, 심지어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던 서준호는 숨을 들이켰다.
통유리 창을 통해 보이는 외부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형태를 정확히 알아보기 어려웠으나, 비행기 같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위험을 감지한 본능이 경고했다. 당장 저것을 피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악의와 살의를 내뿜는 흉측한 괴생명체의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서준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다들 피하세요!”
하지만 고함을 치면서도 그는 분명 알고 있었다. 어딘가로 대피하기에는 매우 늦었음을. 창 앞까지 근접한 괴물과 정면으로 마주한 찰나,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깨달았다.
비린내가 날 듯한 거대한 눈알, 가시 달린 날개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리라고.
콰차차창!
강화 유리가 덧없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분명히 질렀을 비명이 잔인하게 파묻혔다. 서준호는 눈을 꽉 감고 두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렸다. 온갖 잔해가 몸을 덮쳤다.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몸이 뒤로 밀려나 건너편 벽에 부딪혔다.
차라리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면 나았을 것이다. 눈앞이 번쩍거리고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등을 타고 퍼진다. 입을 열자 왈칵 선혈이 쏟아졌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를 정도의 고통에 허덕였다.
키리릭…….
건물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고,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널려 있는 처참한 상황. 사방에서 깨져 있는 향수병이 지독한 향을 퍼뜨렸다. 실내를 장악한 괴물이 코를 씰룩였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기적적으로 온전하게 남은 향수들을 눈에 담는다. 반짝거리고 향기로운 것들이 괴물의 시선을 앗았다.
괴물이 앞발을 뻗어 병을 쥐었다. 무자비한 악력 아래 유리병은 순식간에 파사삭 깨져 버렸다. 괴물은 재미있다는 듯 다른 병을 움켜잡아 부수고, 또 다음 병을 부수었다. 그러다가 더는 가지고 놀 게 보이지 않자 바닥을 짚고 섰다.
쉬이익, 쉬이익. 길고 느리게 호흡하며 새로운 장난감을 물색하기 시작한 괴물과, 가물가물 눈꺼풀이 닫히고 있던 서준호의 시선이 마주쳤다.
끼르르르.
괴물이 입을 벌리고 울었다. 입꼬리가 눈 밑까지 올라가 있어 찢어지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준호는 짧게 생각했다. 자신은 참 지지리도 불운하다고.
결국 의식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
괴물의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공격이라도 당했는지, 괴물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데시벨로 포효했다. 이내 거대한 몸뚱이를 사납게 움직이는 광경이 서준호의 시야에 흐리게 보였다. 아마 에스퍼일 확률이 높은 존재와 난투를 벌이는 듯했다. 상대는 괴물에 비하면야 당연히 작았지만, 따로 보았을 때는 체격이 굉장할 것 같았다.
괴물의 혈액으로 추측되는 검붉은 액체가 촤아악 튀었다. 서준호는 둔감해진 몸에 와 닿는 감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