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전투에서는 체계를 더 굳게 유지하는 쪽의 승산이 높다.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테러 조직의 기지를 급습한 정부군은 어떠한 피해나 변수에도 동요치 않고 명령에 따라 공격과 방어를 펼쳤다.
그들이 결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반드시 전투를 지하에서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 이곳에서 자신들이 밀리거나 패전한다면 그 후 일어날 일은 자명했다.
외부의 통제실 역시 지상전으로 번질 상황에 대비해, 숨을 죽인 채 원격 감시를 진행했다.
“미, 민간인입니다!”
비교적 순조로웠던 진입은 머지않아 끝이 났다. 악랄한 범죄자들이 납치한 일반인들을 방패막이로 쓴 것이다. 정신을 제대로 건드렸는지, 그들은 잘 훈련받은 병력처럼 일사불란하게 달려들었다.
차은혁은 주청경으로부터 전해 들어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었으므로 침착할 수 있었다. 출정 전 작전 계획을 세울 당시였다. 그는 조직에서 민간인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조우 시 민간인들은 가급적 생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을 주장했다. 하나, 본디 생포란 사살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듯 민간인들이 달려드는 틈을 타, 에스퍼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퍼부어지는 상황에선 더더욱.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는 아군을 주시하던 차은혁은 묵묵히 능력을 사용했다. 무고하고 가여운 인명들을 죽인다면 병력의 사기가 떨어질 테니, 섬세한 컨트롤로 민간인들의 발만 얼려 바닥에 붙였다.
쿵, 쿵. 여기저기서 쓰러진 민간인들은 말 그대로 발이 묶여 허우적거렸다. 차은혁은 자신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온갖 공격을 피하며, 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장희강을 찾아내어 상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자, 단독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미리 숙지하고 있던 정부군은 차은혁의 능력으로 인해 한층 수월해진 교전을 치르는 데에만 집중했다.
***
장희강은 광대한 자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들었다. 처절한 비명과 고함, 혼란스러운 발소리, 무언가가 무너지고 갈라지는 굉음.
그는 눈을 내리감았다.
수많은 함정을 통과해 가까워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콰아앙.
문이 터져 나가듯 부수어진 순간.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두 에스퍼의 흑안이 부딪혔다.
“차은혁.”
“…….”
차은혁이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먹에서 서리가 파스스 떨어졌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살의가 느껴지는 얼굴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장희강은 난관을 뚫고 온 그를 칭찬했다.
“꽤 훌륭하게 자랐어.”
“……닥쳐.”
“동생도 많이 컸나?”
차은혁의 눈동자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의 주변으로 얼어붙은 표창들이 생성되었다. 모든 창날의 끝이 섬뜩하게 빛났다.
쌔애애액!
제 심장을 중점으로 쇄도해 오는 공격을 장희강이 여유롭게 응시했다.
조금도 방어하거나 피하지 않은 그의 피부에, 수십 개의 첨단이 닿은 찰나.
능력으로 빚어진 무기들은 전부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과거가 떠오르는 상황에 차은혁은 미간을 좁혔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의 장희강이, 지금의 장희강에게 선명히 겹쳐 보였다.
아버지를 죽이던 모습과, 그리고…….
차은수를 품에 안고 토닥이던 모습도.
만면이 살벌하게 일그러진 그가 지체 없이 장희강에게 달려들었다. 장희강의 파장 상태가 분명 최악이리라 예측했건만, 태연하게 능력을 쓸 정도는 된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총 등의 원거리 무기 따위야 가뿐히 피하고도 남는다. 육탄전으로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동시에 내심…… 예상보다는 건재한 장희강의 모습에 동요했다.
가이딩이 절박했던 같은 에스퍼로서, 나날이 찾아드는 증상이 얼마나 끔찍해지는지 알고 있다. 장희강은 저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것을 견뎌 왔을 텐데도, 놀라우리만치 멀쩡해 보이는 것이었다.
장희강이 이미 미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한 생각이었다.
“…….”
차은혁을 상대하는 장희강의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 흩어졌다.
자신이 자비를 베풀었던 에스퍼가 장성한 모습에 조금쯤은 진심으로 기특하다고 여겼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성가셔졌다.
청각을 비롯해 온 신경을 자극하는 차은혁을 향한 살기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익숙한 감정 기복이었다.
심지어 머지않아, 혈관 하나하나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역시 밀려들었다.
머릿속이 붉게 변했다. 모든 걸 망가뜨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괜찮으세요?’
또다.
환상이 그를 덮쳐 왔다.
‘옷을 너무 얇게 입고 계신 것 같은데…….’
장희강은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아.
남자의 선연한 얼굴이 아주 잘 보인다. 돌이켜 보니 말소리도 뚜렷했다.
어쩐지 그리운 느낌에,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졌다.
아니……. 환상에서는 늘 남자를 죽이기 위해 다가갔다.
장희강은 문득, 이것이 아무 의미 없는 환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형…….”
엉망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닿으려 했던 환상 속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는, 어느 누구의 심미안이라도 충족시킬 만한 청년이 주저앉아 있었다.
“아, 으, 경호원님…….”
공포에 젖은 연갈색 눈이 바라보는 지점에는, 차은혁과 거구의 사내가 피범벅이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성한 부위를 찾아보기 힘든 그 두 명은 의식마저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목숨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장희강은 그것이 자신의 작품임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통증에 내려다보니, 스스로의 몸도 온전치 않았다.
……잠깐 정신을 놓았던 직전의 일이 서서히 기억났다.
두 인물이 돌연 나타났고, 그들 중 청년 쪽을 향해 차은혁이 경악한 낯으로 남동생의 이름을 신음처럼 불렀다.
저 수려한 청년이 바로 그 조그맣던 아기, 차은수인 것이었다.
동생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차은혁의 침착함이 무너진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희강 자신이 차은수를 환상 속 존재로 착각하며 다가가기 시작하자, 차은혁은 그를 무조건적으로 막기 위해 덤벼들었다.
곧이어 경호원이라던 사내도 합세해 왔다. 그는 순간 이동을 사용하는, 제법 까다로운 에스퍼였다.
그러나 지켜야 할 대상에게 신경이 분산된 에스퍼들에게는 빈틈이 없을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장희강은 양측 모두를 꺾을 수 있었다.
“……!”
저벅거리며 코앞까지 다가온 장희강을 차은수가 올려다보았다.
눈물을 끊임없이 떨어뜨리는 창백한 얼굴과 덜덜 떨리는 몸이 퍽 가여웠다.
“차은수.”
“…….”
“은수. 차은수.”
장희강이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워낙 어렸을 적 본 터라, 청년의 외모에서는 어릴 적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애틋함 같기도 했다.
이상함을 느끼지도 못한 채, 약간 넋이 나간 듯 차은수를 응시했다.
하지만 곧 눈동자가 옆으로 굴렀다.
미약하게 움직이는 차은혁과 경호원의 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짧은 고민 끝에, 번거로운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큰 경호원 쪽을 먼저 확실하게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몸을 돌리는 의도를 눈치챈 차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안 돼!”
벌떡 일어선 차은수는 필사적인 태도로 매달려 왔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장희강은 그러지 않았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셔츠 사이로 드러난 상체에 차은수의 팔이 감겼다.
서로의 피부와 피부가 접촉되었다.
장희강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큽……!”
심장이 멈추었다.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고, 숨 쉬는 법조차 잊었다.
마치 여태 살아온 세계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괴하고 충격적인 감각이 정신과 육체를 전부 뒤흔들었다.
……그 어떤 사고도 흘러가지 않았다.
이윽고,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의식이 끊겼다.
***
나는 형이 장희강을 찾아낸 타이밍에 맞추어 도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동했지만, 그때 장희강은 반쯤 폭주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시발. 기왕이면 형도 심태성도 다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내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건만.
지성체임을 포기한 것처럼 맛 간 눈의 장희강은 내게 접근하려고까지 해, 모두를 조바심 나도록 만들었다. 끝내 형과 심태성은 내 쪽에서 미처 만류하기도 전에 장희강을 협공했고…….
결과는 어찌 보면 예상한 대로였다.
진짜.
존나 무서웠다.
절대로 간단한 전투가 아니었고, 장희강도 물론 많이 다쳤으나, 그에게 패한 두 사람에 비하면야 지극히 멀쩡해 보였다. 꼭 폭주 증상을 버프로 받아들이는 괴물 같았다.
불행 중 다행히, 어디 나사 하나 빠진 듯해도 이성을 되찾은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애초에 분위기부터가 광인 그 자체라서.
나한테 느리게 걸어올 때는 혹시 내 목을 비틀어 버리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다. 그냥 그대로 다 모르는 척 기절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짓밟힌 형과 심태성을 보면서 실감되는 공포를 이 악물고 참았다.
그러고는 둘의 숨을 끊으려는 듯 돌아서는 장희강에게 다이빙이라도 하듯 뛰어들었다.
“…….”
그다음에 어떻게 됐더라.
내가 정신을 잃었던가.
온통 먹색으로 칠해진 듯한 주변을 돌아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띠링![■■■를 ■■하시겠습니까?]
……시스템?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창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저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