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괴물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좀 보이고 끝내려고 했는데…….
나는 견고한 근육으로 짜인 등을 차지하고 있는 흔적을 노려보았다. 안락한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듯한 기분이었다. S급 몸에 흉터라니, 시발.
물론 부상을 입었으면 흔적이 남을 수야 있겠지. 에스퍼의 육체도 결국 인체니까. 그런데 전에 주청경에게 치명상을 입었던 심태성은 재회했을 때 말끔하지 않았던가.
괴물의 위험성을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실제로 마주치지 않았던 탓에 실감이 덜 났던 듯했다.
게다가 나는 여태 S급들의 능력치가 괴물보다 우월하리라고 믿었다. 시스템이 보여 주었던 영상에서, 네 명이 제각기 단신으로 괴물을 상대하는 장면은 정말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들은 그냥 S급도 아니고 시스템이 노래를 부르던‘핵’이니, 무언가 다른 것일지 모른다고도 여겼고.
“피가 좀 튀어서.”
묵묵히 앉아 있던 형이 뒤늦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피?”
나는 형의 흉을 짚은 채로 멈칫했다.
“괴물의 혈액은 독이나 다름없어. 보통 접촉 부위를 즉시 도려내거나 절단해야 하지.”
형은 덤덤하게 설명했다.
“안 그러면 점점 체내에 독이 퍼져서 죽게 돼.”
“……!”
“일정 등급 이상의 에스퍼는 오염 수준에 따라 자가 해독이 가능하지만.”
자가 해독이 가능해서 이 정도라는 의미다.
신체 딴딴한 에스퍼가 아니고서는 도망치다 괴물의 피를 뒤집어쓰기라도 하면 즉사한다는 거 아니야.
……그러니 웬만하면 민간인들이 모두 대피한 이후에 괴물을 처치하려고 하겠지만, 과연 시간을 끄는 동안에는 안전할까.
돌이켜 보니 영상으로 사람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괴물의 선혈에 쓰러지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괴물에게 참혹히 먹히거나 밟혀 죽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눈에 띄었었기에, 그런 장면이 이제야 떠올랐다.
“일반적인 신체를 지닌 경우에는 오염되었을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할 거다. 그 전에 건물이라도 무너지면 깔릴 수도 있고.”
형이 태연하게 나를 겨냥해 말했다. 나는 부러 손끝을 움찔거렸다.
그저 틀린 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반인이나 가이드들은 운 나쁘게 주변에 괴물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사망할 확률이 높겠지. 어떤 형태로든.
……하지만 괴물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몰라도,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세상이다.
종말이 찾아와 지구가 싹 다 망한 것도 아니고…….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긴 한데, 당장은 에스퍼들 덕분에 괴물들을 잘 막아 내고 있는 상황이잖아.
형은 이런 세상을 무슨 바깥에 나가면 죽는 세상으로 포장해서 말한다.
진짜, 의도가 너무 불순한 거 아니냐고.
새삼 흐뭇함이 밀려와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근질거렸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등지고 있다고 해서 속내를 드러내는 건 하수였다. 어두운 안색으로 형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거, 내가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띠링!
[시스템 동기화 중…….][동기화가 완료될 때까지 권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더는 들려선 안 될 소리와 함께 눈앞에 창들이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시발?
“……은수야?”
형이 나를 돌아보았다. 흠칫한 나는 허공을 보던 시선을 내렸다. 형의 흑안이 파리하게 질린 내 상태를 살폈다.
본인이 너무 겁을 주었나 싶은지 눈썹을 꿈틀거린다.
“이리 와.”
그러고는 이내 두 팔을 넓게 벌렸다.
“…….”
입술만 바르르 떨던 나는 천천히 형에게 안겼다. 형은 내 몸을 번쩍 들어 제 위에 올렸다. 익숙한 살 냄새와 탄탄한 품이 나를 감쌌다.
나는 형의 어깨 너머로 여전히 부유 중인 창을 직시했다.[시스템 동기화 중…….]
처음에는 시스템이 다시 말을 건 줄 알고 분노와 놀라움이 치밀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시스템의 권능을 품게 되어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구체적으로 어디에 힘을 행사해야겠다는 의지를 갖자마자 설명이 뜬 걸 보면 말이다.
동기화 중이라…….
권능이 내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라도 되는 건가?
“걱정 마. 네가 위험해질 일은 없을 테니까.”
형이 내 귓가에 입술을 누르고 속삭였다.
……맞아, 형. 이 힘을 지니고 있으면 괴물이 날 피한다고 했거든.
사실 나는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안전한 존재일지 모른다.
오히려 내가 넷을 따라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이 될 만큼.
형의 목을 끌어안으며 눈을 내리떴다.
***
일부러 몸을 험하게 굴려서 다친 것인 줄도 모르고.
차은혁은 자신을 걱정해 주다가, 뒤늦게 괴물의 존재 자체에 제대로 겁을 집어먹은 차은수를 위선적으로 다독였다. 그런데도 차은수의 낯빛은 한동안 좋지 못했다.
원래도 직접 TV를 찾아보지는 않았었으나, 괴물에 대한 영상이 나올까 두려운 듯 절대 켜지도 않는다. 차은혁은 그러한 모습이 달가웠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에스퍼 협회장들에 대한 정보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함께 있을 때 진실을 알게 되어 무너져 버리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쪽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기에 사실상 이런저런 방송 매체를 찾아보더라도 구태여 막지는 않을 작정이었었는데.
차은혁은 품 안의 차은수를 응시했다. 자신을 안고 있는 상대가 가학적이고 비도덕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우울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들기 위해 함께 누웠는데도 졸음기 하나 없는 모습에 차은혁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 해.”
기다란 속눈썹 아래의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
“…….”
“납치당했던 것도, 거기서 겪은 일도……. 아무도 날 모르는 것도, 괴물도. 전부 무서워.”
“……차은수.”
“그래서 형편없이 떨면서 형한테 매달리기나 하는 내가 너무 답답해.”
섬연한 모습이 어둠 속에서 희게 빛났다. 몹시 얇아 금방이라도 깨질 유리 같았다.
“형.”
잠긴 목소리가 물었다.
“한심하지?”
이런 질문을 꺼낸다는 사실 자체에 자괴감이 든다는 듯, 축축해지는 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차은혁은 하얗게 드러난 동생의 이면을 음미하듯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말문을 뗐다.
“몇 번을 말해.”
“…….”
“이대로만 있어 주면 된다고 했을 텐데.”
단단한 손가락이 차은수의 눈가를 쓸었다.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게 왜 없어.”
가이드의 능력은 가이딩이다. 에스퍼의 파장을 소생시켰다면 그 가치는 이미 증명된 것이다. 더욱이 차은수는 말라 죽어 가던 이들의 구원자였다. 그의 구원을 탐한 모두가 광기에 점철될 만큼, 그토록 경이로운 존재.
하지만 차은혁은 가이드인 차은수만이 아닌, 그의 동생이었던 차은수 역시 원했다. 그 사실을 반복적으로 알려 주는 차은혁의 모습에 차은수가 울컥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처연하던 눈망울에 기어코 눈물이 고였다.
본인이 바라던 말을 듣는 상황에서 감동받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차은수는 고개를 한껏 들었다. 울음을 참느라 열 오른 입술이 차은혁의 입술에 닿았다.
“……안아 줘.”
그 상태에서 젖은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
“…….”
차은혁은 정신이 혼탁해짐을 느꼈다. 관계의 시작은 늘 자신이었고, 차은수가 이렇듯 먼저 요구해 오는 모습은 간혹 상상 속에서나 등장하는 것이었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과 따뜻한 숨결이 온 신경을 앗았다.
큼직한 손이 차은수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으응.”
굵은 혀가 차은수의 입술을 핥아 올렸다. 적나라한 감각에 차은수가 얼굴을 붉히는 것도 잠시, 입술 사이를 강하게 파고든 혀는 이윽고 좁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발간 살덩이가 서로를 원하며 질척하게 얽혔다.
혀뿌리를 자극해 타액을 교환하고, 달게만 느껴지는 점막들을 아이스크림 핥아 먹듯 맛본다. 깊어져 가는 입맞춤에 두 사람 모두 흥분이 피어올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워 차은수를 마주 보고 있던 차은혁이, 그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빙글 돌렸다. 입술이 쪽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어느새 차은수는 차은혁을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흐읏.”
차은수가 반사적으로 신음했다. 아래를 찔러 오는 감각 때문이었다. 그와 입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발기한 차은혁의 좆이 바지 안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차은혁이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차은수를 쳐다보았다. 그대로 허리를 슬쩍 쳐올리자, 차은수가 짧게 신음하며 휘청거렸다. 그러다 흥분에 부푼 차은혁의 흉근을 짚었다.
“아……!”
차은혁은 다시금 느릿하게 허리를 튕겼다. 이어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은수는 탈것이라도 탄 것처럼 덜컥덜컥 흔들렸다.
“하으, 흑, 응.”
“후, 윽.”
바지를 벗지도 않고 하체를 비비는 느낌은 뭔가 이상했다. 감질나는 행위에 성감이 점차 자극되며, 차은수의 하의 역시 부풀기 시작했다.
차은수는 저도 모르게 제 다리 사이에 차은혁의 좆이 갇힌 부위를 낀 채 허리를 흔들었다.
“우읏, 형…….”
이대로는 부족한데, 어쩌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묘한 쾌감이었다. 바지 안쪽에서 속옷이 젖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은혁이 잡아먹을 듯한 눈길로 차은수를 주시했다. 야릇한 쾌감에 눈가가 발긋해진 모습이, 당장에라도 깔아뭉갠 채 박아 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