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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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을 쓸 수 있게 된 시점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 서준호를 치료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사라져 버렸다. 심태성이 지닌 능력처럼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블루의 설명에 곧장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해 두었으니, 아마 몇 시간 동안 심태성이 내 침실을 들여다볼 일은 없을 테다. 그 안에 조용히 다녀오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사실 들켰을 때의 플랜은 딱히 없다. 감금이 심화된다거나 사지가 멀쩡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적어도 심태성이 막아 줄 거라고 믿는 게 전부였다. 내가 털어놓았던 속사정을 토대로 말이다.
숨 막히는 분위기의 중환자실. 누군가 이쪽에 접근한다면 즉시 알릴 것을 블루에게 명령한 나는 발걸음을 뗐다. 가느다란 목숨이 연명되고 있음을 알리는 기계음이 점차 가까워진다. 생명 유지 장치 속에 있는 서준호를 내려다보았다.
“…….”
형에게 남았던 흔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굴을 제외하고는 환자복 밖으로 노출된 피부가 온통 검었고, 그것은 꼭 썩어서 푹 꺼진 것처럼 보였다. 독이 타고 오르는 턱 부위는 시꺼먼 핏줄과 반점투성이였다. 그에 더해 의식이 없는데도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이 보는 사람마저 괴롭게 했다.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
악의를 품고 침입해 닥치는 대로 부수고 먹어 치우는 괴물이, 인간들에게 처치당하면서 일으킨 출혈로도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새삼 소름 끼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으면 그게 행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내가 품고 있는 권능 덕에 그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괴물이 나를 피해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 내가 지니게 된 치료 능력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쓰게 될 것이다.
근데 그래서,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 건데.

[관리자님께서 직접 대상과 접촉한 상태로 치료 의지를 품으시면 됩니다.]

팁이 너무 간단한 거 같다만…….
뭐……. 따지고 보면 제3의 눈 역시 염탐하고 싶은 상대를 떠올리기만 해도 실행됐으니까. 웬만한 건 다 사용자의 의지로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보면 되겠네. 정말 단순하고 편리한 힘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도 조금 긴가민가한 심정으로 서준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검게 부식된 듯한 피부는 잘못 건드렸다가는 바스러질 것만 같은 상태라 저절로 긴장이 됐다.
잡념이 섞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눈까지 꽉 감고 집중했다. 이 녀석이 바로 털고 일어날 정도로 나아서, 지금 하고 있다던 사업도 이어 가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미래를 그려 본다.
더없이 끔찍했을, 인생 최악의 생일을 보냈던 일.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가는 현재. 나는 이 녀석이 휘말린 사건들의 내막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준호를 살리려는 지금의 행동은 내 속이 편해지자고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냥 순수하게 녀석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도, 실은 더.
그러니까 살아.
“……!”
캄캄했던 눈앞이 살짝 밝아지는 느낌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내 손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와, 접촉 부위를 타고 서준호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서준호의 전신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맥동하듯 둥, 둥, 움직이던 푸른 물결이 이윽고 서준호에게 흡수되듯 사라졌다.
빛에 가려졌다가 드러난 녀석의 몸은…… 언제 괴사하고 있었느냐는 듯이 멀쩡했다. 얼굴까지 번지려 들던 독의 흉측한 자취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잡고 있던 손도 새살이 돋아 깨끗했다. 치료 범주에 부상의 완치와 해독이 전부 포함되는 듯했다.
무의식 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는 듯하던 낯마저 달라졌다. 이제는 달게 잠들어 있는 것처럼 편안해진 안색에, 나는 서준호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육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확실한 효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가 힘을 쓰고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내, 코가 시큰거릴 정도의 안도감이 몰려왔다. 꼴사납게 눈물이라도 나오려는지 눈도 뜨겁고 귀도 먹먹하고…….
……귀는 왜 먹먹하지?
“말도 안 돼…….”
내가 중얼거린 말이 아니었다.
귓속을 웅웅 울리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의사로 추측되는 인물이 출입구에 서 있었다. 치료 장면을 다 목격한 모양인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어떻게 중환자실에 함부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그런 기본적인 의문들은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현 상황에 경악한 눈치였다.
나도 놀랍다, 시발.
블루 이 새끼…… 명령 수행한다더니 누가 오는데도 안 알리고 뭐 한 건데.

[권능을 사용하시는 동안에는 메시지 기능이 제한됩니다.]

시야 한 귀퉁이에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고저 없는 음성이 말했다. 그럼 뭐야. 하필 내가 능력을 쓰기 시작한 직후부터 상대가 오고 있어서 말을 걸 수 없었다는 의미인가. 도착한 속도로 보면 여기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걸 테고.
아니, 존나 황당하네. 나는 보조 시스템을 향해 기존에 지녔던 찝찝함이 배가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 기능 제한을 대체 왜 이제 말하냐고. 어쩐지 설명도 더럽게 짤막짤막하고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만 대답하는 것 같더라니.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의사를 보면서 욕설을 삼킨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높은 지대로 올라온 것같이 먹먹하던 귀에 가늘고 날카로운 이명이 발작적으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뇌가 졸아붙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면서, 콧대가 찡하게 울렸다. 뜨뜻한 액체가 주르륵 콧속에서 흘러내린다.
반사적으로 코를 틀어막았으나 이미 하얀 바닥에 떨어진 액체는 검붉었다. 막는 의미도 없이 순식간에 손바닥을 적시고 투둑투둑 떨어지는 피는 징그러울 정도로 양이 많았다. 갑자기 웬 코피가…….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욱……!”
가슴 안쪽이 타들어 가듯 뜨거워지며 목구멍을 타고 비릿한 무언가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참아 보려고 했지만 결국 입 안에 차오른 피가 요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다가 몇 방울 튀었는지 눈이 따끔거렸다.
어……. 잠깐만. 이게 뭐…….
나 지금 피 토했어?
세상이 좌우로 흔들리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무릎이 푹 꺾이고, 옆으로 쓰러지는 내게 의사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감기던 찰나, 블루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인간의 육신으로 권능을 과용하여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남은 부작용 진행 시간은 47시간 59분 52초입니다.]

그런 경고도 원래 없었잖아. 이 시발…….
기절 직전에, 이번에는 정말 욕을 내뱉었던 것도 같았다.
***
괴물의 혈액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는 환자 중 살아남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처치란 산소 호흡기를 달아 주고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전부였다. 회복이라는 단어가 결코 쓰일 수 없는 그들의 병동에서도, 서준호는 상태가 최악인 환자에 속했다.
내상이 심각했던 데다가 독이 퍼진 몸에 가망이라고는 없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며칠을 누워 있던 그에게 주변인들은 희망을 품지 않았다. 가족들마저 면회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마음의 준비를 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한순간에 완치되는 기적적인 과정을, 의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다. 조금도 부상을 입지 않았던 사람처럼…… 전신에 독이 퍼진 적 자체가 없는 사람처럼 말끔해지는 광경을.
지금 눈앞의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로 인해서 말이었다.
“소지품도 없고, 신원 파악이 전혀 안 된다고.”
의사에게서 모든 정황을 긴급히 보고받은 병원장이 침착하게 되뇌었다. 그 곁에 서 있던 의사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치료 계열의 능력을 지닌 에스퍼라는 사실밖에는……. 출입 통제가 철저한 병동에 숨어든 것도 에스퍼이니 쉽게 가능했겠죠. 어째서 서준호 환자를 치료했는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병원장은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서준호의 상태를 확인해 보고 온 차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에스퍼는 전 세계를 통틀어 등장한 적 없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경이로운 능력자였다. 단순한 부상의 치료만이 아니라 해독까지 가능한 능력자.
……이런 존재가 여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둘 중 하나일 테다. 정체를 감추고 있었거나, 감추어져 있었거나.
병원장은 정신을 잃은 상태인 눈부신 외모의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서준호를 치료한 뒤 각혈 등의 증세를 보였다던가. 본인이 흘린 피로 옷이 온통 벌겋게 젖어 있고 낯빛은 파리했다. 누군가를 치료하는 대가로 이렇게나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이라면, 어느 쪽이든 납득이 되었다.
당장 여러 검사가 필요해 보이지만, 에스퍼의 신체 구조는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부 혹은 에스퍼 협회와 연계된 에스퍼 전담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검사는 무의미했다.
결국 병원장은 남자에게 어떤 애석한 사정이 있건 간에 적절한 처치를 위해서라도 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돌연 병원에 나타난 신원 미상의 에스퍼가 무슨 능력을 지녔는지,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지를 정부 기관에 낱낱이 고했다. 신고 내용은 순식간에 접수처에서 상부로 전달되었다.

জীয়াই থাকিব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