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나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는 추측했다. 그 번뇌가 빤히 드러나는 질문에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반인으로 살아온 막냇동생이, 가이드로서 형제를 케어하는 것을 힘겨워하리라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다. 자기를 포용하기로 마음먹었어도 별개로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듯한 태도겠지.
“왜 자꾸 같은 소릴 하게 해, 형.”
손을 들어서 형의 팔을 잡았다.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 아니라고 했잖아.”
“너한테도 중요한 결정이니까.”
“응. 그러니까.”
형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결심을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형이 깨닫는 것은 금방이었다.
짙은 눈썹이 살짝 허물어졌다. 긴장이 서려 있던 흑안은 오로지 나를 향한 온기만 담고서 부드럽게 풀렸다.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참 맹목적인 애정이지 싶었다, 나를 향한 형의 감정은. 심지어 현재는 그 단계가 심화된 상태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물론 내 쪽은 마냥 괜찮기만 해 보여서는 안 되겠지.
미래에 대한 수심을 감추고자 미소 띤 채, 어색한 감이 있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만 인정하시지? 나도 내 인생 스스로 책임져야 할 나이란 거.”
“……그래.”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형이 낮게 응수했다.
무거운 죄책감. 나를 향한 걱정.
반대로, 내게 선택받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불가항력의 기쁨.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형의 얼굴을 물들였다. 언뜻 보기에는 무표정이지만,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자니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보인다.
곧 커다란 손이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렸다.
“컨디션 다 나아질 때까진 최대한 접촉하지 마라.”
“이건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조심해.”
“형, 나도 적응해야지.”
너무 깨지기 쉬운 유리 대하듯이 굴면 곤란하다고.
“물론 이 정도로는 형한테 별로 이롭지도 않겠지만…….”
“뭐?”
형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이렇게 닿기만 해도 나한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맞잡은 손에 조절된 힘이 가해진다.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삼켜 낸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너머에 도사린 욕망이 엿보였다.
어쩌면 에스퍼란 정말로 가이드를 집어삼키기 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정신까지 침식되었던 감각을 되새겨 보면, 그런 표현이 충분히 어울렸다.
“어떤데?”
작은 목소리로 묻자 형이 잠시 말을 골랐다.
“물 밖으로 나온 기분.”
“물 밖?”
“여태 숨을 쉬면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숨통이 조여질 만큼의 고통은 어떤 걸까.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영위해 올 수 있었을까.
고작 이렇게 손만 잡고 있는데도 숨 쉴 수 있게 된 기분이라니……. 대체 얼마나 괴로웠을지.
내가 상상했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으니, 형에게 품고 있던 존경심이 배로 더 커졌다.
“네가 나를 살렸다는 의미다, 은수야.”
형이 진중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넌 존재 자체로 내게 도움이었어.”
“…….”
뭔데, 형.
왜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는데.
울컥 감동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다가, 찬찬히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형 인생에 뭘 해 줬다고.”
“무사히 자라 준 거.”
망설임이라곤 전혀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야말로 나한텐 버팀목이나 다름없었다.”
“……형.”
형의 절절한 감정이 버겁다는 양 고개를 푹 숙였다.
익숙한 손가락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끝내는 내 눈가를 경건히 쓸었다. 물기가 하릴없이 옮겨 갔다.
남은 눈물은 스스로 훔친 후 다시금 얼굴을 들었다.
“나도.”
형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내 목표도 이제 형이 고통 속에서 살지 않도록 만드는 거야.”
“……!”
“협회에 갈게.”
가이드로 발현한 이는 의무적으로 가이드 협회에 방문해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곳에서 여러 검사를 받고, 가이드로서의 교육도 이수한다고 들었다.
“오후에 가서 수속 밟고, 정식으로 형 가이드가 될 거야.”
내게 과분한 사랑을 주는 형을 위한 일이다. 가이딩을 주고받는 형제를 향할 세간의 시선이 어떨지 당연히 두려우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존재가 우선이었다.
타인의 손가락질보다는 형을 신경 쓰는 게 옳아.
그렇게 각오한 낯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근데 형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끔찍한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처럼 딱딱해진 표정. 심지어는 아까와 다르게 퍽 강한 악력으로 내 양쪽 어깨를 붙들어 온다.
“아니.”
“형?”
“절대 안 돼.”
호흡마저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네가 가이드라는 사실은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
“어?”
당혹스러운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형.”
“……가이드 개체 수가 적다는 건 너도 알 거다.”
형이 한껏 가라앉은 투로 운을 뗐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C등급 가이드조차 희귀하다고 불릴 지경이지. A등급과 S등급은 현존하지도 않아. 반면에 그들을 필요로 하는 에스퍼들은 여럿이고.”
뭐, 검색해 보니 그렇다더라.
“그래서 높은 등급으로 각성한 에스퍼일수록 자신을 저주받았다고 여기는 경향까지 생겨났어.”
“그건……. 그럴 만한 것 같네.”
아마 우리 형도 그랬겠지.
새삼 안타까워져, 나를 붙든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러자 형의 경직되어 있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이완되었다. 악력 또한 살며시 풀린다.
하지만 여전히 무거운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나간다.
“바로 그 점이 문제야. 여태까지의 나처럼 가이딩에 굶주린 에스퍼들이 네 존재를 알게 된다면,”
형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
“어떻게든 너를 손에 넣기 위해 달려들 테니까.”
섬뜩한 경고였다.
수많은 끔찍한 경우를 떠올리게끔 유도하는.
“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우리 형이 생각보다 솔직해서.
걱정 끼치기 싫다고 오랫동안 본인의 고통을 숨겨 온 형이다. 그런 형이 내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진실을 휘두른다?
이건 그거지.
나를 통제하려고.
내가 불안에 떨며 남들에게 가이드임을 철저히 숨긴 채, 오직 형만 아는 형의 가이드로서 지내기를 바라는 거다.
협회에 가이드로 등록된다면 정보가 샐 확률이 높다. 벌컥 뒤집힌 세상은 유일무이한 S급 가이드가 단 한 명의 동급 에스퍼만 담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리 없을 테고. 형은 그 과정이 납치 같은 위협의 형태로도 다가오리라 경고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글쎄…….
무조건 비인도적인 전개가 이루어진다는 장담은 좀 이상하다. 내가 다른 에스퍼들도 가이딩하라는 협회의 지시에 따를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매칭된 에스퍼들과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평화롭게 지낼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니까.
물론 형이 궁극적으로 내 안위를 위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하지만 이제 형에게는 형제로서 갖는 순수한 걱정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에스퍼로서의 소유욕이 동생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노리고 말을 꺼낸 것도 있을 테지.
그리고 나는 그게 꽤 기껍다.
“그래도, 형. 법적으로 그건,”
“차은수.”
형이 다시 인상을 굳히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네가 위험해질 거란 얘기야.”
“이해했어. 근데 그럴 순 없어.”
나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이드가 된 사람은 그 어떤 예외도 없이 협회에 신고해야 하잖아. 어긴다면 형량이 굉장히 무겁다고 들었어.”
“들킬 경우지. 그리고 가이드 본인은 처벌받지 않아. 은폐한 공범이 있다면 그들만 죗값을 치러.”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형은 공직자라서 이 사실을 숨기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가중 처벌될 텐데, 어떻게 그래?”
물론 우리 가문의 권력이라면 처벌받지 않고 무마시키는 게 가능할 터다. 하지만 내 불세출의 등급이 문제였다. 존재가 유명해지는 만큼 언론의 비난이 폭주할 게 불 보듯 뻔했고, 차화 그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가해질 것이다.
형은 직위 해제 이상의 페널티를 안게 될 테고.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런 꼴은 못 본다.
“넌…….”
내 반응에 형이 답답한 듯 머리를 쓸었다.
“지금 걱정해야 할 건 너 자신이다, 은수야. 내 생각만 하지 말고 네 안위를 챙겨야지.”
“왜 그렇게 얘기해.”
나는 속상하다는 표정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형 안위가 곧 내 안위야. 우린 가족이잖아. 그리고…….”
어려운 말을 꺼내려는 듯 입을 여닫았다.
“난 이제 형 가이드이기도 하니까. 형이 내 에스퍼라면 우린 한 몸이나 다름없는 거 아니야?”
“…….”
회심의 일격을 맞은 형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귓가가 붉어진 것도 같았다. 속수무책으로 행복감이 차오르는 모양이다. 동시에, 나를 설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느라 복잡한 눈치였다.
귀엽긴.
하지만 내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일단 유명해지고 보면 내 타깃들을 만나기가 수월할 테니까.
S급으로 판명 난 가이드를 안 찾아오고 배길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