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깜빡거리자 맑아진 시야에서 형이 제대로 보였다. 일자로 다물린 입과 허물어진 눈썹이 우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렇게까지 풍부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성격이 아닌데. 평소 눈빛이나 목소리로만 감정을 드러내던 형이, 내가 죽으라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함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분명 기절하고서 시간이 꽤 흘렀을 테니, 심태성이 내가 사라진 사실을 눈치채고도 남았었을 것이다. 혹시나 서준호를 만나러 갔을 가능성을 떠올렸겠지. 이후에 나를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테다.
어쩌면 그 과정을 형이 함께하지 않았을까. 넷 중에서는 그나마 심태성과 형의 관계가 나으니까.
……아마도.
“…….”
형의 흔들리는 흑안이 나를 응시했다. 내가 깨어나서 기쁘기는 하지만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죄책감과 슬픔에 물든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심태성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등줄기를 저릿하게 타고 흐르는 희열을 애써 감추면서 입술을 파들거렸다. 저번에 형한테 뒤통수 맞고 나서 처음 대면한 상황이잖아.
“왜 그런, 콜록, 표정이야?”
심각하게 갈라져서 내가 듣기에도 아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리해서 말을 잇자 마른기침이 절로 터졌다.
어깨를 움찔거린 형이 침대 근처 협탁에 있는 물을 흘끗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이번에도 도망치는 줄 알았어?”
“……잠깐, 은수야.”
“걱정하지 마. 안 가.”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형이 나한테 얼마나 실망했는데……. 내가 무슨 낯으로 그래.”
“……!”
“기분 다 풀릴 때까지 마음대로 해도 돼.”
거의 속삭이듯이 색색거리며 말했다. 형이 나를 주청경에게 넘긴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무슨 짓을 하든 전부 이해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억울하고 비참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문드러지던 상처를 심태성에게 호소했던 만큼, 한 번 터뜨렸던 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만다. 건조했던 눈이 축축하게 젖어 갔다.
“사랑한다고, 그런 소리는 하지 말고. 아껴 주지도 말고. 그냥 못되게 굴어.”
“차은수.”
“제발.”
나는 울먹이며 빌었다.
“그렇게 부르지도 마. 나중에 더 아파.”
내 반응에 형이 말을 잇지 못했다. 만면이 일그러져서는 스스로에게 능력이라도 쓴 것처럼 얼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기력 없이 눈을 감아 버렸다. 가득 차 있던 눈물이 눈꼬리 밖으로 굴러떨어져 베개를 적셨다. 시야는 차단되었지만 슬며시 제3의 눈을 쓰자 형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꼭 누가 고문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감히 손도 못 뻗겠다는 듯, 머뭇거림조차 없이 나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형이 입을 열었다.
“내가.”
형답지 않게 여전히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은수 너한테 의미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기 싫었다.”
“…….”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정색할 뻔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했다고? 본인이 나한테 무의미한 존재라고?
폭주 예정인 S급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형부터 생각했던 내 입장에서는 아주 많이 억울한 일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충혈되었을 두 눈을 뜨고 형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이 못나 보일 수 있는 고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형을 핏기가 가신 얼굴로 쳐다만 보고 있자, 형이 내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네가 일부러 놓은 게 아니란 사실을 알지 못해서…….”
그러고는 괴로움에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생각이 짧았어. 멋대로 오해해서 미안하다. 미안해, 은수야.”
“…….”
나는 눈시울이 다시금 뜨거워졌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갈라진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 맛이 났다.
“……어떻게 떠나게 된 건지, 말 안 한 사람은 나니까 오해할 수 있어.”
어쨌거나 내가 형을 책임지지 못한 건 결과적으로 사실이고. 쥐어짜듯이 힘겹게 대꾸했다. 형이 나를 데리러 장희강의 집에 찾아왔던 날이 떠오른다. 의미 있는 존재가 없었느냐는 형의 질문에 나는 미안하다며 모호한 대답을 던졌었다. 그러니까 형이 더 나락에 떨어졌겠지.
“그래도 형이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
“내가 항상 기댈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군데.”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형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힘이 달리는 나머지 어설프게마저 느껴지는 동작에도, 형은 어두운 안색으로 가만히 허리를 숙이고 있기만 했다.
“내 가족이 누구였는데……!”
날 함부로 대해도 내 마음만큼은 함부로 왜곡하지 말라는 처절한 외침이었다.
뼈아프게 가닿기는 하는지 형의 흑안이 일렁거렸다.
“다시 만났을 때, 상대가 형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간절히 매달리지 않았을 거야. 근데 형 눈에는 내가 단순히 필요에 의해 기뻐한 걸로 보였겠구나. 아, 그렇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꾹꾹 눌러 두었던 형을 향한 설움과 원망이 펑 터졌다.
“참 우습고 한심했겠다.”
“…….”
“그래서, 내 감정까지 마음대로 판단하니까 직성이 풀렸었어?”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손을 놓았다.
“난 형이 함께니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의 상황 또한 예정된 감금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이 이불을 적셨다. 감정이 격해져 숨결은 거칠어진 지 오래였고 어깨가 서럽게 들썩였다.
“…….”
“…….”
그런 날 한참을 그대로 두는 형에게 답답함이 들었다.
뭐 해, 위로 안 하고.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
“……은수야.”
드디어 형이 내게 팔을 뻗었다. 나는 당연히 거칠게 몸을 뒤틀며 거부했다. 하지만 꽉 안아 오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 머리와 허리를 단단히 감싸 쥔 형이 말문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죄스러운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오히려 내가 너한테 그렇게 보였어야겠지.”
“……!”
별로 반항하지도 못하고 지쳐서 헐떡이던 내가 멈칫했다.
“난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어.”
내가 힘껏 그러쥔 형의 상의 너머로, 심장이 불안하게 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마치 나에게서 더 큰 미움을 받을 것이라 여기며 긴장한 것 같았다.
“네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
“불안해하는 동생 모습을 보면서, 저열한 만족감이나 느꼈다고.”
형이 되어서는 떳떳지 않다 못해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품었노라고 털어놓는다. 자기 밑바닥을 어느 정도 내보였었지만 이제는 아예 활짝 열어젖혔다. 마음껏 들여다보라고. 욕심 많고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쪽은 바로 자신이라고.
회개라도 하듯 토로하는 동시에, 내 말을 확고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젖은 얼굴을 형의 어깨에 묻은 채 숨을 골랐다. 내 가슴도 형처럼 빠르게 두근거렸다.
머지않아, 악문 잇새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
오랜 시간 울다가 겨우 안정을 되찾은 동생은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그를 곱게 눕혀 준 차은혁이 차은수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용서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상처를 준 것과는 별개로, 앞으로도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 평생 뻔뻔한 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차은수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 주고 이불을 덮어 준 차은혁이 조용히 방문으로 걸어갔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 집에서 어떤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게 될 테다.
침실 밖으로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거실에 자리를 잡고 있던 주청경이 그를 돌아보았다.
“신파는 다 찍었습니까?”
“…….”
혐오의 눈빛이 주청경을 향했다. 차은혁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다시 잠들었으니 들어가지 마라.”
“일어나자마자 울고불고 기운 빼게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죠. 은수 씨 얼굴 보는 거야 내 마음이고.”
주청경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천장을 보았다.
“근데 가장 중요한 걸 안 묻던데요.”
차은수의 능력에 관한 심문을 뜻하는 것이었다. 차은혁이 입을 굳게 닫은 채 방문을 막아섰다. 곁눈으로 그것을 살핀 주청경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태도는 뭡니까.”
“아직 안정이 필요한 상태야. 함부로 건드릴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음……. 조금 억울하네요. 은수 씨 사라지는 일에 염증 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텐데.”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저대로 또 도망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이번에는 본인 의지로 벗어났던 게 맞잖아요.”
주청경이라고 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차은수를 탈환해 온 당일, 그 또한 심태성을 통해 차은수가 원래 세계로 돌아갔을 때의 내막을 전해 들었으니까.
시스템이라느니 뭐라느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위 개체를 향한 거부감과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던 순간이었다.
그 외의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주청경에게 중요한 부분은 차은수가 본인의 의지로 떠났고 말고가 아니었다. 그에게 내재된 분노와 집착은 차은수가 자신의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일 차은수의 의사를 신경 쓰는 편이었다면, 매번 납치하는 방식으로 그를 취하진 않았을 테다.
하지만 이와 모순되게도 차은수의 감정이 누군가에게 치우치는 일은 바라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차은수가 정신적 지주였던 차은혁에게 큰 상처를 받아, 주청경은 사뭇 마음이 유해졌다.
“뭐, 일단 충분히 쉬게는 해야겠죠. 나도 우리 은수 씨 아픈 건 싫어서.”
입꼬리를 올린 그가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
차은혁은 경계를 약간 풀면서도 불쾌한 기분에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