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시발. 가이딩이 이토록 무지막지한 건지 몰랐다.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산 채로 생기를 빼앗기는 느낌?
아니. 아니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단순히 얼굴이나 손이 닿았을 때는 괜찮았다. 조금 기운이 빠지는 수준에서 그쳤으니까.
그런데 입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몸도 정신도 꼭 끝이 없는 심연에 빨려드는 것만 같았다.
끝내는 무저갱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감각.
하마터면 의식을 잃을 뻔했다.
“일단 쉬자.”
침묵하던 형이 말문을 뗐다. 온갖 감정으로 물든 낯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정확히 알 것 같다.
형은 형제 사이에서 벌어져서는 안 됐을 일에 관한 배덕감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
저 복잡하고 어두운 얼굴의 원인은 그저, 나를 범하려던 본인의 행위 자체에서 비롯된 죄책감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쪽에 손도 못 대고 있는 거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 하면…….
저 눈.
한참 부족하다는 듯 나를 갈구하는 형의 두 눈이 그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단순히 동생을 보는 눈빛이 아니다.
“너 지금 많이 놀랐으니까, 방에서 푹 쉬고 난 다음 얘기해.”
그런 주제에 이성 좀 되찾았다고 내 휴식이 먼저라 말한다. 아, 물론 그게 우선순위인 건 맞지만.
이상하지.
절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근한 반발심이 고개를 든다.
우리 형, 실은 아까보다 훨씬 더한 짓을 해서라도 가이딩 받고 싶으면서.
“…….”
솔직히 그런 상황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 형이랑 키스하는 거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도리어 약간 짜릿했었다.
나 혹시 억지로 당하는 게 취향인가.
“형.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 아니야.”
계속 눈물이 맺힌 상태로, 눈앞의 가슴에 기대듯 슬쩍 손을 얹었다.
탄탄한 근육이 전기라도 오른 양 움찔했다. 이 간단한 스킨십조차 형에게는 아찔하게 가닿는지, 다시금 흐려지려는 이성을 다잡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여태까진 모르는 척했지만……. 형이 괴로운 걸 막을 수 있게 됐는데, 어떻게 앞으로도 그러겠어.”
“……차은수.”
“괜찮아.”
형과 시선을 마주한다.
“그래. 오히려 형이니까. 형이라서 괜찮을 거야.”
자기 세뇌를 하는 양 되뇌자 훤칠한 얼굴이 굳어진다.
미안, 형.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거든. 되레 설렐 지경이야.
근데 이 상황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잖아?
“……!”
불쑥 다가온 단단한 팔이 나를 안아 들었다.
이 나이에, 내 진짜 정신 연령에 이렇게 안기기는 처음이라 부끄러움이 솟았다. 동시에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평균 체중에 못 미치기는 해도 엄연한 성인 남성인데……. 전혀 힘을 들이지 않는 듯한 기색이 놀라울 따름이다.
형이 그대로 계단을 올라 침실로 향했다.
“우선 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내 몸을 조심스레 침대에 내려놓더니 이불까지 덮어 준다.
“형.”
“부탁이다. 아까부터 너무 무리하고 있어.”
이제는 숫제 애원하는 수준이다.
내 상태가 그렇게 나빠 보이나.
매트의 감촉이 평소보다 지나치게 푹신하기는 했다. 쏟아지는 잠을 애써 몰아내면서 형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알겠어. 대신 옆에 있어. 어디 가지 마.”
불안하게 흔들리는 목소리에 형이 눈을 크게 떴다.
“피하지 말란 뜻이야, 형.”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관계. 무척 두렵지만, 내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한쪽이 외면하는 결말이다.
혹여 형이 오늘 행동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를 떠나지는 않을까.
그러느니 차라리 에스퍼와 가이드의 관계가 되어도 좋아.
아주 끝나 버리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최대한 처연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
깊게 잠든 주인의 고른 숨소리가 침실을 채웠다. 침대 근처에 자리 잡은 차은혁이 차은수를 내려다보았다.
눈가에 음영을 드리운 긴 속눈썹이 미동도 없다. 기절하듯 잠든 누군가의 모습이 이다지도 곱게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존재가 동생이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측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내 동생.
내 구원자.
차은수는 못난 그를 내치기는커녕 매달려 왔다. 형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도록 돕겠다고. 그러니 계속해서 함께하자고.
그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말았던 자신은 도대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등지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야 할 사람은, 차은수가 아닌 차은혁 자신인데.
애원조차 본인의 방식대로 앗아 간 동생은 너무도 착했다. 어려서부터 일관됐던 성품처럼.
잠깐의 머뭇거림 끝에, 차은수의 흰 뺨을 스치듯 쓸었다. 손도 대지 않겠다고 얘기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비겁하지만, 상대가 남겼던 허락으로 이를 정당화한다.
다부진 손가락이 볼에서 입술로, 코끝으로, 귓가로 이동했다. 그쪽을 가볍게 그러쥔 채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댔다. 사랑스러운 온기가 제대로 느껴졌다.
에스퍼로서의 자아가 머릿속에서 날뛰었다. 당장 이 가이드를 취하라고. 보드랍고 연약한 육체에 저를 묻어, 고통을 전부 해소하라고.
악력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 손등에 힘줄이 불뚝 섰다. 어렵사리 상체를 물리면서 묵직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
이런 자신과는 다르게, 여타의 S급 에스퍼들은 구태여 참지 않을 것이다.
전무후무한 동급 가이드의 존재를 깨닫는다?
즉시 사투를 벌여서라도 차은수를 손아귀에 넣으려 들 테고, 성공한다면 제 동생을 지독하게 취급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놈 또한 바로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물론 차은혁은 동생이 여럿에게 노려지는 사태가 발생하는 걸 지켜볼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차은수가 S급 가이드라는 정보는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절대 비밀로 묻어 두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 형제가 함구하더라도, 이틀 후 있을 에스퍼 협회에서의 신체검사가 문제였다. 완벽히 안정되지는 않았으나 눈에 띄게 나아진 자신의 파장을 확인한다면 분명 의혹이 뒤따를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이딩을 받은 것이냐고.
아니라고 부정한들, 검사자는 기계가 표시하는 정보를 신뢰할 터다. 인력을 동원해 집요하게 자신의 뒤를 캐서 가이드가 누구인지 알아내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파장을 다시 엉망이 되게끔 만드는 것.
“으…….”
차은혁의 결정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차은수가 작게 신음했다. 미간도 다소 찡그린 모습이었다.
그곳을 짚어 보니 미열이 느껴졌다.
가져다 댄 손의 온도를 내렸다. 시원한지 차은수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다른 불편한 곳은 없는지 세심하게 지켜보며, 차은혁은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으음.”
차은수가 이불 안에서 조금씩 뒤척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파르르 떨던 눈꺼풀을 연다. 살짝 충혈된 눈이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었다. 그 안에 차은혁의 상이 맺혔다.
안도감이 스쳤다.
“……형.”
잠긴 음성이 다디달다. 침실로 새어 드는 햇살에 미형의 얼굴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를 감상하느라 차은혁은 느리게 대답했다.
“더 자도 돼.”
“형은 설마 아예 안 잔 거야?”
“이 정도는 상관없어.”
진심이었다. 일주일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틴 적도 있었으니까.
차은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에스퍼도 사람이잖아. 남들보단 덜해도 분명 몸에 무리가 올 거야.”
차은수가 질책하는 어조로 이야기하며 시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아.”
짧은 소리와 함께 휘청거린다. 차은혁이 빠르게 그를 받아 냈다.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눈길로 차은수를 살피니, 창백해진 안색이 튄다.
“어지러워?”
“조금. 목도 마르고……. 나 좀 부축해 줘.”
“기다려.”
차은혁은 움직이려는 차은수를 만류하고 그가 침대 헤드에 기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방을 벗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둘밖에 없는 집 안이 고요했다. 차은혁이 휴무인 날에는 가사 도우미가 방문하지 않았다. 그가 최대한 타인의 기척을 느끼지 않고 쉬는 것을 선호하므로.
부엌에 들어가 물잔을 챙겼다. 이후 다시 향한 침실에는 동생이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마워.”
차은수는 건네받은 물로 목을 축였다. 이내 깨끗하게 비워진 컵이 트레이 위로 돌아갔다. 그것을 치워 준 차은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수야.”
조용한 부름에 차은수가 고개를 들었다.
곧 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형?”
차은혁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이제껏 일반인으로 살아온 네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안다.”
“…….”
“그런데도 먼저 손잡아 주겠다고 했지.”
감히 기뻤다.
네가 내민 손을 단번에 붙잡을 뻔할 만큼.
차은혁에게 차은수가 가이드라는 사실은 티끌만큼의 유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원래 품고 있던 애정과 합쳐져, 차은수는 끊임없이 갈망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차은수도 그럴까.
성인이 될 때까지 에스퍼와 가이드의 세계 밖에서 평범하게 자라 온 차은수다. 그렇기에 더욱 형제와의 가이딩을 비도덕적이라 여길 것이었고.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가족으로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잖은가.
그러한 관념으로 형의 가이드가 되어 살아간다면, 정신적으로 망가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네 결정을 거부할 수 없어.”
거부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다면 말해.”
차은혁의 낯이 죄악감으로 괴롭게 일그러졌다.
“정말 내 가이드로 살아가 줄 수 있겠어?”
형으로서 지닌 양심의 탈을 쓴 이기심이, 동생에게 확답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