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신이 된 두 사람의 교합으로 침대가 출렁였다. 격렬히 움직이는 에스퍼의 허리 양쪽으로 걸쳐진 하얀 다리 또한 흔들거렸다.
“후우, 흐.”
“우읏, 흐윽! 응!”
여러 차례의 사출로 축축하게 젖은 하반신이 맞부딪힐 때마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침실을 메운다. 또 한 번의 사정을 앞두고 쿠퍼액을 흘리는 육봉이, 흉포하게 구멍을 뚫고 들어가 여린 내부를 들쑤시기를 반복했다.
마른 뱃가죽 위로 불룩불룩 튀어나오는 거근의 윤곽이 제법 선명하다. 얼마나 깊은 부위를 탐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라, 욕구가 한계를 모르고 지글거리며 타올랐다. 주청경은 차은수의 귓가에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정사에 집중했다.
차은수는 언제부터인지 순응한 것처럼 주청경의 어깨를 붙잡고 할딱거렸다. 그러다 더 빨라질 수 없는 속도로 때려 박아오는 좆질에, 한층 높은 음의 신음을 터뜨렸다.
“조, 금, 만, 천천, 히, 잇! 하으!”
차은수가 짓무른 눈을 하고서 주청경에게 애원했다. 주청경은 보기 좋게 부어오른 입술을 한번 빨고 놓아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진심입니까?”
주청경은 가이드의 청이 거짓됨을 알고 있었다. 난폭할수록 달뜨는 육체의 반응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차은수는 거친 섹스를 꽤나 잘 버티는 타입이었다. 아니,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즐겼다. 아픈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아플 만큼 강렬한 쾌감을 추구하는 것일 터다.
그래서 주청경은 그만두기는커녕 더욱 안쪽에 닿겠다는 양, 사납게 좆을 쳐올렸다.
퍼억! 엉덩이를 터뜨릴 기세로 부딪혀 온 샅에 커다란 타격음이 울렸다. 두 눈이 크게 벌어진 차은수가 비명을 질렀다. 과연, 고개를 꺾은 얼굴은 고통보다는 선명한 성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악, 아아……!”
벌어진 입에서 타액이 흘러나왔다. 잠시 의식을 놓은 듯 안면 근육이 아무렇게나 풀어진다. 희열에 찬 주청경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스퍼트를 올렸다.
듣기만 해도 아플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퍽, 퍽퍽퍽! 주청경은 호흡마저 참은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좆으로 차은수의 내부를 쑤셨다. 차은수는 그 몰아붙이는 동작에 맥을 못 추고 휩쓸렸다.
이윽고, 과격하던 허릿짓이 우뚝 멈추었다.
차은수의 체내에 완벽히 숨어든 양물이 짙은 씨물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다시금 정액을 뒤집어쓴 육벽은 놀란 듯이 경련했다.
“히윽……. 흑.”
차은수가 엉망이 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가쁜 숨을 내쉬느라 들썩이는 어깨와 가슴팍, 스스로의 사정액에 흠뻑 적셔진 복부, 어디 하나 색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주청경은 차은수의 빠른 심장 박동을 감상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사 직후의 흥분을 음미하는 깊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차은수가 지친 듯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랫구멍은 주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움칫거렸다. 안쪽에 가득한 좆과 좆물을 어서 뱉어 내고 싶은 것처럼. 하지만 그 움직임이 되레 흉악한 좆을 발기하게끔 자극하는 걸 모르고 말이다.
차은수의 입 안을 탐하던 주청경이 목울대를 울렸다.
“음…….”
그리고 이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던 차은수가 주청경의 목에 양쪽 팔을 감아 온 것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입을 더 벌려 저를 내어 준다.
눈꺼풀을 잘게 떨며 제 혀를 받아 무는 차은수를 주청경이 뚫어지게 주시했다.
순간적으로 그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차은수에게 약을 또 먹인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다시 눈을 뜬 차은수와 시선이 마주친 찰나,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연민.
본인과 타인, 쌍방을 향한 연민으로 물든 눈동자가 저를 담고 있었다.
얽히던 혀가 풀리고 떨어진다. 촉촉한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가 일찍 만났더라면, 당신이 다른 길에 있었을 거라고 했죠.”
가여운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손길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온다.
물기 없이 또렷하되 슬픈 눈길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이라도 바뀔 수 있잖아요.”
“…….”
“바뀐다면……. 그럼, 그런 당신과 함께할게요.”
주청경의 표정이 굳었다.
차은수는 자신이 뭘 바라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절 원한다면 제 행복까지도 원해 주세요.”
“……!”
“형이……. 가족들이 보고 싶어요.”
자신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당신과 함께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나를 당신 곁에 두지 말고.
당신이 내 곁에 있으라고.
간절한 협상이란,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라 주청경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면 눈앞의 가이드는 착해 빠지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차은수는 무언가를 이용할 줄 아는 존재였다. 제 가이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 그것을 통해 수하를 포섭하지 않았나.
지금은 주청경 자신의 감정을 역으로 건드려,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
하지만 속내를 파악한 것과는 별개로, 주청경의 내면에서는 가이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은 욕구가 피어올랐다.
그는 어쩌면 실제로 그러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할지라도 과연 차은수가 희미한 미소 한번을 보일까.
본인의 말대로 안온한 집에서 행복하게 지내며 여유를 갖는다면, 오히려 그편이 자신을 향해 확실히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아.
이런.
주청경은 일순 멈칫했다. 차은수의 말을 들어주는 쪽에 힘을 싣는 사고의 흐름을 인지한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가이드를 오래도록 염원하기는 했으나……. 그 상대에게 이토록 휘둘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그런데도 대답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지배욕과 독점욕이 고개를 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차은수가 찾는 차은혁은 단순한 형제가 아니었다. 그는 차은수에게 의미가 가장 깊을 에스퍼이기도 했다. 자신의 지인들을 죽게 만든 상대가 차은혁이라고 이야기했음에도, 그를 향한 신뢰와 애정을 저버리지 않는 태도를 보면 답이 나왔다.
거짓임을 간파했을 수도 있고.
주청경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자신은 알 수 없는 시간을 함께했던, 어려서부터 각별했던 가족이자 우선순위일 에스퍼.
그에게 가이드를 돌려보내 주고 싶을 리가.
그리고 차은혁은 곧 생사를 알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터였다.
***
바다를 거닐던 차은수가 고개를 뒤로 돌려 바라봐 왔다. 추위에 뺨이 붉어졌는데도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경호원님.’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햇빛에 물들었다. 심태성은 홀린 듯이 멈추어 섰다. 차은수는 그에게 옆에 서서 함께 걷자고 손짓했다.
그러나 걸음을 옮겨 거리가 가까워지자, 전경이 훅 바뀌었다.
제 칭찬에 웃음을 터뜨리던 차은수. 지인들의 장례식장에서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차은수. 기운 없이 창가에 기대앉아 있던 차은수.
넘어질 뻔한 몸을 받아 내자, 지친 듯 품에 안겨 이마를 기대 오던 차은수.
‘아프셨겠어요.’
자신의 슬픔을 뒤로하고 저를 위로해 주던 차은수.
……그리고 마지막은.
‘그만……!’
테러범에게 붙들린 채 저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었다.
“……! 허억……!”
심태성은 막혔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눈을 번쩍 떴다.
낡고 균열이 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상체를 일으켜 세운 그는, 땀이 흐른 제 얼굴을 양손에 파묻었다.
성난 흉근이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차은수를 데려간 놈들의 예상 경로를 쫓다가 발견한 폐건물. 잠시 눈을 붙였건만, 그새 꿈을 꾸었다.
끝이 어떠했건, 이렇게라도 차은수를 보았으니 악몽은 아니었다.
“큭, 후우…….”
쿵쿵. 쿵.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며 뇌가 에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폭주 직전에 깨우친 능력을 컨트롤해 보고자 계속해서 무리한 여파였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단기간에 많은 힘을 써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모자라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 삶을 빼앗겼으니까.
매 순간 차은수가 어떤 험한 짓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찾아들어 극도의 분노와 불안을 초래했다. 사실상 그러한 압박감이 현재 심태성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심태성은 손을 내리고 캄캄한 실내를 눈에 담았다. 간간이 굴러다니는 집기가 아니었더라면 텅 비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
벽에서 떼어진 채 바닥에 뒹구는 선반을 향해 한쪽 팔을 뻗었다. 이어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지이익…….
선반의 주변 공간이 기이하게 찢기기 시작했다. 따로 정해진 형태도 없이 벌어진 그것은 칠흑으로 이루어진 틈이었다.
지이이이익.
점차 범위를 넓힌 틈 안으로 선반이 삼켜지듯 사라졌다. 다소 힘겹지만 능력을 펼치는 것에 성공한 심태성이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흰자가 빨갛게 물든 것처럼 충혈된 눈이, 선반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본다.
……차량을 이용했다면 기록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적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심태성은 그들이 침입한 산중의 저택에서부터 예상되는 모든 루트를 광인처럼 뒤지고 다녔다.
움직이는 내내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작 제 바람대로 차은수를 데리고 떠났어야 했다고.
위험으로부터 피할 길은 그뿐이었는데.
그러니 반드시 찾아내어…….
이번에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단둘이 함께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