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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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건이 네가 태권도를 잘하는 건 네 아빠가 물려준 재능이야. 그걸 포기하지 말아다오.’

‘아버지….’

‘아버지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다오. 태권도 하고 싶니?’

아버지의 질문에 서이건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열 번도 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날 밤에 아버지는 서이건의 손을 잡고 체육관에 찾아가 진 사범님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그렇게 서이건은 다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빠의 꿈이었던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 출전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한태경이라는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그 남자가 자신의 꿈에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 방향이 같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국가대표를 한 명만 뽑는 것도 아니니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도 이름을 듣고 숨 쉬듯이 비교를 당하니 지겨울 뿐.

“흐음….”

집에 와서 씻고 학교 숙제를 한 다음 침대에 누웠다.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마주칠 때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서이건은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을 찾았다.

6개월 전 영국에서 있었던 태권도 대회의 68kg 체급 결승전 영상이었고, 상대는 우즈베키스탄의 주니어 챔피언이었다. 다음 순간,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힌 한태경의 모습을 본 서이건은 허, 하고 어이없다는 듯 숨을 토해냈다.

“진짜 잘생기긴 했네.”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건 인정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란에는 ‘한태경 얼굴이 국가대표다!’를 시작으로,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간지럽고 유치한 말들이 끝도 없이 쓰여 있었다.

선수들의 소개가 끝나자 서이건은 얼른 유튜브 화면에 집중했다.

5분도 되지 않아 끝난 경기는 당연히 한태경의 승리였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한 뒤 카메라를 보고 한 번 웃어주고는 자신의 코치와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물론 이미 한태경이 이겼다는 걸 알고 본 영상이었기에 서이건은 그 부분은 가볍게 넘긴 뒤 경기 스타일 분석을 시작했다. 그는 생각보다 더 깔끔하고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자신이 묵직하게 발차기를 꽂는 스타일이라면 한태경은 빠르게 단칼에 베어 버리는 듯한 공격이 특징이었다.

‘한태경이랑 너랑 붙으면 창과 방패 같을걸?’

이 경기를 보고 나니 왜 진 사범님이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번 붙어보고 싶다. 자신을 상대로 그는 어떻게 움직일까. 어떤 폼을 보여주고 어떤 공격을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음… 선발전에서나 보려나.”

이건은 발열로 따뜻해진 핸드폰을 끄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이건은 한태경의 경기 영상을 찾아보느라 새벽 네 시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와~ 망했다.”

이건이 성적표를 보고 한숨 쉬었다. 아무리 공부를 포기했다지만 진짜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적이 최악이었다.

“이건아. 넌 어때?”

앞자리에 앉아 서이건과 함께 연신 한숨을 쉬던 친구, 김경수가 절망적인 눈으로 서이건을 돌아보았다.

‘아, 내 뒤에 딱 열 놈이 더 있더니 그중 한 놈이 저놈이구나.’

서이건은 오늘 집에서 깨질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망했지만, 너도 망한 것 같구나.”

“하, 진짜 개망이야. 오늘 존나 깨질 것 같은데… 아빠 벌써 성적표 확인한 거 아닐까?”

학교 앱에서 바로 성적표 확인이 가능하니 벌써 그러고도 남았을 거다. 경수를 제외한 그 집 형제들이 모두 수재인 것을 뻔히 아는 이건은 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친구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아 오늘도 그냥 벌벌 기어야겠다.”

“힘내라.”

“아니 그냥 오늘 너랑 같이 있고, 집에 들어가지 말까?”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