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안… 태양 빛보다 더 금색으로 반짝이며 그 눈동자는 네 아빠를 똑 닮았다고 큰아버지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태경도 자신의 눈동자 색을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하여 그 금빛을 잃었고, 피보다 더 독한 붉은색이 되어 그 이후부터는 자신의 눈을 거울을 통해 똑바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작은아버지는 그래도 예쁘다 하셨지만, 큰아버지는 내심 안타까워하는 것이 보여 죄송한 마음이 들었었다. 처음에는 붉은 눈이 되었을 때 모두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붉은 눈은 러트 중이라는 증거였지만, 태경의 몸은 러트 중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모두 사고로 인해 색소가 변한 거 아니냐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 의사가 가설을 내밀었다.‘태경 군은 계속 러트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러트가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지 그 자리에 있는 알파, 오메가들은 모두 알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 의사의 말을 비웃었지만, 곧 몇 가지 검사로 태경이 러트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적 흥분이 없는데 그것이 가능하냐는 태경의 말에 의사는 러트라는 건 성적 흥분만이 아니라 모든 알파의 감각이 극대화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극대화는 오직 자신의 각인 상대를 위해 진행되는 것인데 한태경은 그때 처음으로 강유한을 의심할 계기가 되는 말을 의사에게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태경 군은 현재 각인한 반려 오메가가 있는데 왜 이 증상이 나타나는 건지.’
그땐 아직 기억을 제대로 찾지 못했던 터였고, 과거부터 학습하며 천천히 기억의 퍼즐을 맞추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기억이 완전히 백지화일 때 처음 본 사람은 아버지들도, 쌍둥이 동생들도 아닌 바로 강유한이었기에… 또 그가 각인을 주장하기에 당연히 사랑하는 반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뚜렷이 기억이 나는 것은 없어도 강유한에게 많이 기대려고 했고, 그를 통해서 퍼즐 조각을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한태경이 가진 퍼즐 조각을 하나도 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조차 그에 대해서 몰랐다.
‘형과 같은 학교 나왔고, 음… 또 각인 된 사람?’
그것이 가족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각인이 되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각인을 해제하려고 했고, 그러다 독일에서 사고가 나 이렇게 함께 있게 된 거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각인까지 했다면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닐까? 아주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했으나 아니었다. 마음은 전혀 동하지 않았고, 역시 몸도 그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모든 것이. 그도 자신도 각인한 것이 맞는데 서로에 대해서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각인은 했으나 서로의 각인이 어긋난 느낌. 그래서 한태경은 강유한이 어려웠고, 싫었다.
‘각인한 반려가 있다면 벌써 이 눈동자는 금색이 되고도 남았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러트를 안정시켜 주는 것이 반려니까. 아무래도 검사를 좀 더 해보고, 이런 사례가 다른 곳에 없었는지 한 번 더 찾아봐야겠군요. 정말 태경 군은 미스터리 합니다. 지금까지 알파에 대해 연구했던 것을 모두 깨부숴주고 있어요.’
의사는 즐겁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태경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무언가 그때 잘못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이후 강유한의 히트 사이클이 와서 그를 안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성기가 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유한에게선 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단 페로몬을 숨이 막힐 정도로 뿜어내며 자신을 유혹했지만, 오히려 거부감이 생겼다. 아니 그건 강유한 뿐 아니라 모든 오메가에게 다 그런 반응이 나타났다. 그래서 한 번 더 검사를 받았다. 의사들은 태경에게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그래서 사실 포기하고 있었다. 자신은 아버지들 같은 반려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꿈도 꾸지 않았다. 모든 오메가가 이렇게 싫을 정도면 오메가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혼자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알파인 서이건에게 발정하고, 그에게 노팅하고 이렇게 십여 년을 괴롭혀온 몸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이건 뭔가 이상하다. 무언가…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제가 선배와 어떻게 각인을 하게 되었죠?’
기억나지 않아 솔직하게 강유한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네가 러트가 와서 내가 도와주고 있었어. 그리고… 그때 각인을 한 거야.’
‘그 말은 제가… 강제로 선배를 각인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아, 아니야. 절대 강제가 아니었어. 나는… 내가 원한 거야.’
각인….
‘아버지들은 각인했을 때 어땠나요?’
흘러가듯 밥을 먹고 한 질문에 아버지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번개가 내리칠 만큼 강렬한 각인은 아니었지만,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종속된 기분이었어. 이제야 한 몸이 된 것 같은….’
‘더불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지지. 왜냐하면, 내 옆에 평생,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상대가 생겼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어.’
두 분은 그렇게 말하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들은 ‘너는?’ 하고 물었지만, 한태경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억도 없지만 강유한을 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느낌 따위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씁쓸하게 ‘기억에 없습니다. 슬프네요.’라고 말을 했고, 두 분은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강렬한 기억이… 평생에 한 번 있으며 누군가는 새로 태어나는 기분 같았다는 그 기억이 그렇게 쉽게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일까. 한태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서이건은 대체 뭘까. 아무리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이 모든 것릉 보통 ‘반려’에게 오는 반응이 아닌가? 그런데 그럴 리가 없잖아. 자신은 알파고, 그도 알파인데.
“태경아, 너 괜찮아?”
김 사범이 제자가 멍하니 서 있자 걱정되어 어깨를 두드리자 한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서이건은 저에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모든 것이 다 낯선 듯하면서 익숙합니다. 저 사람과 있으면 제가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껴요.”
“그건 내가 답을 내어줄 수 없는 문제구나. 네 아버지들도 마찬가질 거다.”
“…그렇죠.”
한태경은 웃으며 서이건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아까 하던 생각을 마저 했다.
“서이건에게 접근했던 알파를 찾아야겠습니다.”
“뭐?”
“의사를 추궁에서 서이건이 병원에 온 날짜와 시간을 알아야겠어요.”
“이제 와 찾아서 뭐하게. 이건이는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괜히 들쑤셔서.”
“그러니 서이건은 몰라야죠.”
“아니 그러니까 찾아서 뭐하려고?”
“음… 모르겠습니다. 그냥 찾고 나면 생각해보겠습니다.”
노팅을 해서 생긴 독점욕이라고 보기엔 서이건을 오메가로 보진 않는다. 그냥 정말 김 사범에게 말한 그 말 그대로였다. 그냥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후는 생각할 것이다. 고개를 살짝 숙이니 이불 사이에 빼꼼히 드러난 서이건의 손이 보였다. 한태경은 조심스럽게 그 손에 자신의 손을 얽혔다. 서이건의 손은 작은 손이 아니었다. 오메가들이 가진 부드럽고 매끄러운 손도 아닌 군살이 박힌 손에 뼈 마디마디가 길어 길쭉하고 큰 손이었다. 그런데도 그 손가락이 너무 얽히기 편해서 신기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페로몬을 서이건에게 흘렸다.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그에게 영향을 줘서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한태경은 그때 당시 그 행위가 각인한 반려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고, 그걸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서이건은 사흘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많이 지쳤고, 약의 쇼크 덕분에 그런 것뿐이라고 의사들은 안심하라고 했지만, 한태경은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빨리 그가 깨어나야 사과를 하든 말든 할 텐데… 이렇게 누워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태경아.”
문을 열고 들어온 김 사범은 서이건을 보고 있는 한태경을 보며 한숨 쉬었다.
“이거, 네가 부탁한 거다.”
그가 내민 탭을 받아 액정을 터치했다. 그러자 서이건에 대해서 조사한 자료들을 정리한 폴더들이 보였다.
“일단 병원 정보는 모두 받았고, 의사 선생님께 정확한 날도 알아왔다. 자세한 건 거기에 쓰여 있어. 자료를 토대로 알파도 역추적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고 하더구나.”
“네, 감사합니다.”
고작 이틀 정도 만에 모아온 자료는 상당했다. 특히 서이건의 몸 상태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진료기록도 모두 백업이 되어있었다. 한태경은 그 탭을 가지고 의자에 앉아 하나하나 빠짐없이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처음에 서이건이 노팅으로 인해 병원으로 온 날짜. 그리고 진료받은 날짜들을 무심하게 보고 있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