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의 색이 금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기억을 찾았을 때가 아니었다. 병원에서 서이건을 보고 서이건의 페로몬을 느끼며 마음속에 그 페로몬이 퍼졌을 때 서서히 안정감과 함께 눈동자 색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서이건이었다.
◆
“너, 기억이 돌아왔어?”
서이건이 멍한 얼굴로 한태경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더는 이 더러운 곳에 서이건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곧 문이 열리며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빠르게 그곳을 수습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무님.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정리하던 인원 중 한 명이 한태경에게 물었지만, 한태경은 답하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온통 서이건에게 쏠려 있었고 그건 서이건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들어온 김 사범과 한태석이 한태경의 그런 상태를 확인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긴 우리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넌 이건이 데리고 먼저 가.”
“다 정리된 거 맞죠? 바퀴벌레 더듬이 하나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정리된 거 맞아.”
“그럼 저 위치 추적장치도 끄겠습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김 사범님의 허락을 받자마자 한태경은 서이건을 안아 들었다.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한태경에게 매달리게 된 서이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 사범님을 바라보았다. 김 사범은 그 모습에 허허 웃으며 서이건의 SOS 눈동자를 외면하며 그곳을 수습했다.
내려 달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지금 다리가 이 상태라 어차피 걷지도 못하기 때문에 서이건은 몸에서 힘을 뺐다. 그게 한태경이 더 빠르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서이건의 배려를 모를 리 없는 한태경은 피식 웃었다.
“안 무겁냐.”
“무겁네”
“어깨뼈나 부러져라.”
“이제는 부러져도 돼. 바퀴벌레들이 없으니까. 하지만 널 무사히 집에 데려다줄 때까진 참아줘.”
진짜다. 진짜 한태경이다. 정말 그때의 말투다. 이건은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가슴속에서부터 울컥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대신 한태경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 싶었다. 코끝으로… 아니, 온몸으로 그의 페로몬을 느꼈다. 한태경이다. 정말.
차 문을 열고, 한태경이 이건을 뒷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의 코트를 벗어 꼭꼭 덮어 주었다.
“다리는 아프지 않아?”
“괜찮아.”
“병원으로 가자.”
“…집으로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이건의 말에 발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한태경의 손이 멈췄다.
“우리 할 말 많지 않아? 그러면 병원보단 집이 나을 것 같은데. 다리는 괜찮아.”
“…알았어. 하지만 아프면 말해야 해. 꼭.”
“당연하지. 나 아픈 거 못 참는 놈이잖아.”
“거짓말하지 마. 너는 아픈 거 정말 잘 참잖아. 그래서 늘 걱정이었어.”
한태경이 이건의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주더니 일어났다. 차 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는 한태경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건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기억이 돌아온 게 맞는 걸까. 금안으로 그의 기억이 돌아왔다, 아니다를 판단하기에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저 눈이었다. 그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날 찢어 죽일 것 같은데. 네 눈.”
백미러로 눈이 마주쳤다.
“무슨 헛소리야. 그냥 쳐다본 거야.”
“기억이 돌아온 게 맞는지 아닌지. 궁금해?”
“당연하잖아. 저번처럼 장난치는 거면….”
“장난 아니야. 그때도 지금도.”
“어?”
“정확히는 기억의 조각은 이미 다 찾은 상태였는데 기억의 연결 고리가 그렇게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았었어. 혼란을 느끼고 두통이 왔지. 정리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병원 앞에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어. 그래도 널 만나야 할 것 같아서 들어가 네 얼굴을 봤는데 거짓말처럼 모든 게 다 떠오르는 거야. 정말. 모든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