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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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건 님?]

아, 한태경이 아니다.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한태경 님 경호원 중 한 명입니다. 김우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일로 죽은 사람도 있었다. 체육관이 너무 멀쩡한 모습이라 그 끔찍한 현장이 딱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경호원 목소리를 들으니 모두 다 생각나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피 냄새가 갑자기 주위에서 느껴지는 느낌.

[서이건 님?]

“아, 네. 김우석 님. 혹시 태경이가.”[…이렇게 전화 드리게 된 것은.]

분명 이건의 뒷말을 들었을 텐데도 그에 관련된 답은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왜 전화 한 거지.

[오피스텔을 정리하게 되어 이건 님의 짐을 전달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지금 혹시 학교에 계신지요.]

아, 결국 거긴 정리가 되는 건가. 어쩌면… 이라는 끈을 그 오피스텔로 잡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도 물 건너간 것 같았다.

“네, 학교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피스텔에 가지러 가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미 정리가 끝났습니다. 기숙사 앞으로 가겠습니다. 한 2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숙사 앞 공원이니 거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우석이라는 경호원과의 통화를 끝내고 이건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하지만 정말 꾹 눌러 참았다. 전화상으로 이야기하면 아까처럼 대답 회피만 할 게 뻔하니 차라리 기다렸다가 만나면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건은 휴대폰을 켜서 한태경과 마지막으로 나눈 톡을 바라보았다.

‘사범님 댁은 괜찮아? 나 안 보고 싶어?’

‘미친 새끼. 하나도 안 보고 싶어. 얼른 잠이나 자’

‘일찍 와. 나는 보고 싶으니까.’

이런 대화가 있었지. 이건은 피식 웃었다.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된 건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한태경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죽었는데 기사도 나지 않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언론을 죽일 수 있다니. NI가 대단한 걸까. 아니면 한태경이란 존재가 드러나면 안 되는 걸까.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일까. 그 검은 후드 티의 남자들은 이제 태경이를 쫓지 않을까? 대체 그놈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크게 했다고 이렇게 모두들 잔인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은 마른세수를 하며 이제 완전히 어둠이 장악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보니 사범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파서 내내 연락도 못 드렸지.

“네, 사범님.”

[어, 그래. 저녁은 먹었어?]

“네. 사범님 다치신 곳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 태경이가 보내준 도우미 씨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 생활하는 데 불편함도 없고, 병원도 오늘 다녀왔다.]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건아, 혹시… 한태경에게 무슨 일 있어?]

“네?”

갑자기 사범님에게서 한태경의 이름이 나와서 놀랐다. 이건은 전화기를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옮겼다.

“갑자기 왜.”

[김 사범이 이상해서 그래. 며칠 연락 안 되더니 어제 연락 와선 다짜고짜 세상에 대해 오만 저주의 욕설을 다 하더니 아까는 술을 처먹고 와서 지금 내 방에 기절해있다.]

“뭐?”

김 사범이라면 지금 사태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도 있다.

“혹시 김 사범님 깨울 수 있어요? 나랑 통화 가능할까?”

[안될 것 같은데… 완전히 맛 갔어. 내가 아까 너무 패악질 부리기에 화가 나서 몇 대 때렸는데도 꿈쩍도 안 해.]

“아…. 그래요. 그럼 혹 김 사범님 깨시면 저에게 전화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한태경은 한태경이고 너는 괜찮은 거지?]

괜찮다는 그 한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지. 왜 이렇게 갑자기 뭔가가 무거워진 기분일까. 특히 가슴 한편이.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