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룸메이트,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살벌하게 자신들을 쳐다보는 눈동자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친절하게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게 허락을 구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어쩐지 앞으로 빡세게 굴러야 하는 건 자신들일 것 같은 예감에 선배들은 그러라고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감사합니다.’
태경은 그들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기절한 이건을 부축해서 데리고 나왔다. 내일부터 저 선배들이 자신에게 뭔 난리를 피우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당장 이곳을 벗어나 이건을 쉬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학교 바로 앞 술집이어서 얼른 그를 데리고 숙소에 와서 눕힐 수 있었다. 이건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새벽에 몇 번이나 토했고, 그 수발을 다 들어 준 사람이 태경이었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아버지들에게 전화까지 해서 상담했다. 한태석은 한숨을 쉬면서 ‘네 친구 아침에 꿀물이나 타 줘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숙사에 꿀이 있을 리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편의점에 가서 꿀을 사 와 이건이 깨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중간에 한 번 깨서 꿀물을 마시긴 했지만, 다시 피곤한 듯 잠이 든 모습을 보고 태경은 생각했다. 두 번 다시 서이건에게 술잔이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이불을 다시 꼭꼭 덮어주고 이건이 던지듯 내려놓은 컵을 주워 싱크대에 넣어둔 뒤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던 한태경은 침대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집어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태경아.]
작은 아버지였다.
“아, 아버지.”
[친구는 괜찮아?]
“네, 꿀물 마시고 잠들었어요.”
[다행이네. 너는? 괜찮고?]
“네, 저는 괜찮아요.”
서이건과 거의 비슷하게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한태경은 주당으로 타고난 건지 이상하게 숙취는커녕 취하지도 않았다.
[네 아버지를 닮았나 보네. 네 아버지도 술을 잘 마셔. 해독 능력도 빠르고. 그래도 너무 마시지 마. 좋은 거 아니니까.]
“신고식 때문에 억지로 마신 거예요. 아마 오늘부터 마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맛있지 않았고요.”
[그러면 다행인데… 너무 무리하지 마.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태경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슬슬 이건을 깨울 시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 훈련부터 빠지면 슬퍼할 테니까.
◆
“으, 머리야.”
“괜찮아?”
도복으로 갈아입으면서도 끙끙 앓고 있는 이건에게 한태경이 비닐봉지를 건넸다.
“이게 뭐야.”
“숙취 약, 이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래.”
“와, 내가 이걸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이 얼른 숙취 해소제 알약과 물약을 번갈아 가며 먹고는 숨을 내쉬었다.
“한태경, 너는 괜찮아?”
“난 의외로 술이 센 것 같아.”
“부럽다. 다 가졌네. 아주.”
얄미운 자식이라며 한태경의 등을 팍팍 치고는 다시 울리는 머리를 붙잡은 이건은 한숨을 푹 내쉬며 도복으로 다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훈련장에서 1학년들은 어제의 후유증으로 전부 좀비의 꼴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재수 없게 히죽히죽 웃고 있고, 담당 교수(감독)들은 어찌 된 일인지 잘 안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곤 못마땅하게 1학년들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약해 빠져서야.”
“저희는 억울합니다.”
정말 억울한 듯 1학년 한 명이 이야기하자 감독이 혀를 쯧 차며 이번에는 선배들 쪽을 노려보았다. 선배들이 언제 웃었냐는 듯 헛기침하며 괜히 연습하는 척, 훈련하는 척하는 걸 보니 정말 배알이 뒤틀린다. 그래도 참아야겠지.
“오늘은 너희들 실력을 보려고 한다. 1학년들 끼리 토너먼트전을 할 거다. 2분씩 3라운드로 진행할 거고, 전자호구는 쓰지 않는다. 점수 채점은 내가 한다. 토너먼트 표를 만들어 왔으니 여기 와서 다 보고 준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