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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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형!”

1층 로비로 내려오니 기다리고 있던 한재우가 이건에게 밝게 웃으며 다가온다.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한재우는 익숙한 듯 신경도 쓰지 않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이건을 붙잡았다.

“혹시 많이 바쁘세요?”

“아니, 오늘 일정은 이게 다야.”

사실 오늘부터 당장 일할 줄 알았는데 고용인 승인뿐이었다니.

“그럼 저랑 잠깐 대화 가능할까요?”

“너는 시간 괜찮은 거야?”

“네.”

실장이라면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려다가 너무 오지랖 같아서 이건은 관두고 재우가 가자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그리운 곳. 9년 만에 오는 NI빌딩 맞은편에 있는 카페였다.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카페를 보고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었다. 마치 19살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한번 오고 싶었지만 NI가 있는 곳은 어쩐지 가기 싫어서 올 수 없었던 곳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 역시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손님이 많았다. 줄이 꽤 서 있어서 커피 한잔 마시려고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라 재우를 바라보자 재우가 위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니 작은 룸이 있었다.

“룸이 있었던가.”

이건이 중얼거리자 재우가 룸 안에 의자에 앉으면서 웃었다.

“이건 형, 여기서 아르바이트했죠?”

“어? 어떻게 알았어?”

“태경 형이 알려줬죠. 아마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이건 형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을걸요? 물론 다 태경 형이 말해줬었어요.”

“그 녀석은 왜 내 이야기를 남에게 하고 다니냐.”

“자랑?”

“자랑? 무슨 자랑?”

“형이랑 친하다는 자랑?”

“뭐? 나랑 친한 게 뭐라고. 그때 당시는 시니어 국대도 아니었을 땐데. 금메달은 당연히 못 땄고.”

“아니에요. 태경 형에겐 이건 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였다고요. 형이랑 룸메 되었다고, 이제 한 공간에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며 잠 못 자던 태경 형을 이건 형이 봤어야 했는데.”

“거짓말이지?”

“진짠데.”

이걸 지금 저 건너편 높은 빌딩 안에 있으신 분께 물어볼 수도 없고. 이건은 한숨을 쉬었다. 그 사이에 직원이 와서 커피를 가져다주고 조용히 룸을 나갔다.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아, 메뉴 주문하는 거 잊었다. 버릇처럼 위에 올라왔더니.”

“그런데 왜 아메리카노를 가져다주는 거지?”

“아, 저희 가족이 여기만 오면 작은아버지 따라서 아메리카노만 마셔서요. 매니저님이나 직원들이 다 알아요. 감사하죠.”

아, 그렇구나. 이건은 여기서 아르바이트할 때 만났던 한태경을 떠올렸다. 그때도 그는 가족에게 주기 위해서 커피를 샀다. 변태 새끼 잡는다고 난리 친 게 이렇게 긴 인연인지, 악연인지가 될 줄이야. 아마 한태경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할 이야기가 있어?”

“아, 네. 태경 형… 형 기억하던가요? 그게 궁금해서요. 물어보질 못하겠더라고요.”

“아니, 기억 못 하던데.”

“아…. 죄송해요.”

“아니야. 네가 사과할 건 아니지. 좀 섭섭하긴 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태경이 그렇게 된 것도, 날 잊어버린 것도 그 녀석 탓은 아니야. 다 그 바퀴벌레 같은 놈들 때문이지.”

“…그렇게 말해주니 제가 더 고마워요. 진짜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재우가 앞으로 태경 형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고, 이건 역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와 조금 걸었다. 하늘도 보고 한강도 보고… 지나 가버린 세월을 보면서 한태경을 생각했다. 정말 요즘 종일 한태경 생각뿐이다. 붙어 있을 때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건은 피식 웃으며 아까 재우에게 했던 말을 되새겼다.

맞아. 한태경은 잘못 없어. 이 모든 것은 그 개새끼들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 편히 생각하자. 일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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