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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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온몸에 힘이 빠져 살짝 비틀거렸다. 그건 서이건 뿐 아니라 한태경도 말문이 막힌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마른세수했다.

“얼, 얼마나… 얼마나 다친 겁니까.”

한태경의 목소리가 저렇게 떨리는 것은 처음 들었다. 아니, 온몸을 떨고 있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아끼고 사랑했다.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리고 한태경이 가장 힘들어했던 순간은 바로 한재우가 고등학생 시절 납치당할 뻔해서 병원에 있을 때였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반면에 불안해하고 미안해했다. 그가 그토록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것은 아마 자신을 끈질기게 건드리는 것이 아닌, 가족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의식…이 없다.]

맙소사.

한태경의 큰 아버지인 한태석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힘겨워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어. 앞뒤로 박았더구나.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하는데 크게 다쳤어.]

한태경의 옆에 서이건도 털썩 앉았다.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이 정도로 이야기하는 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일지.

‘이건이 형!’

활짝 웃고 있던 그 아이가. 당장 어젯밤에 술에 취해 일이 너무 많다고 구시렁거리던 아이가 대체 어떤 꼴이 된 건지.

[지금 수술에 들어갔다. 아마 긴 시간이 될 거야.]

“제가….”

한태경은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안다. 지금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는 알고 있다. 지금 이렇게까지 바퀴벌레들이 움직인다면 한태경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작은아버지는.”

[괜찮다. 강한 사람이니까. 재우도 잘 이겨 낼 거다.]

“그 녀석은… 저보다 강합니다.”

[유일한 오메가인데도 가장 강하지.]

“아버지…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야. 그런 이야기 듣자고 전화한 것이 아니다. 네가 왜 사과해. 우린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전화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아까 김 사범과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그곳도 위험할 것 같다. 김 사범과 재우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어. 그 집도 안전할 것 같지 않아. 그러니 옮기는 게 어떠니. 준비해둔 곳이 한 곳 더 있잖아.]

“네, 알겠습니다. 보고 옮기든지 하겠습니다. 재우… 깨어나면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그 녀석이 무슨 욕을 하든 듣고 싶네요.”[물론이다. 그럼 이만 끊으마.]

“네.”

한태석과 통화를 끝낸 태경은 긴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얼굴을 꽉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만약 자신이 한태경의 입장이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서이건은 생각했다. 수없이 이런 일을 겪었기에 안타깝지만 지금 버틸 수 있는 거겠지.

“괜찮아?”

서이건은 간신히 그에게 한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한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이건을 바라보았다.

“익숙해지진 않네.”

“이게 어떻게 익숙해져.”

“그렇지.”

“네가 말한 대로 재우는 잘 이겨 낼 거야. 걱정하지 마.”

“그것도 그래.”

“그런데 아까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일단은 경호 실장과 이야기를 좀 나눠야겠어. 아버지 말대로 여기도 안전하다고 이젠 장담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다른 경호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한태경은 현재 이 빌라에 있는 경호원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 말은 이 집에 있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신호와 마찬가지였기에 이건은 한태경이 경호 실장을 부르는 사이에 그의 서재에 들어가 책장 두 번째 칸, 책 뒤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이곳은 CCTV에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CCTV 송출되는 영상은 다를 것이다. 이건 김 사범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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