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그룹 한태경 전무이사가 사직하고 한재우 실장이 새로운 전무이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한재우 새 전무이사는….]뉴스를 보던 이건은 정말 모든 것이 한태경이 말하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수인계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정말, 본가에 다녀온 지 이틀 만에 한태경은 전무이사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자리를 재우가 차지했다. 그 큰 그룹이 이렇게 간단히 한 자리가 바뀔 수 있는 문제냐고 이건이 질문했을 때. 한태경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물러난다고 하니 주주들이 80%가 반대했어.』
『오.』
『그리고 재우가 나 대신 전무 자리에 앉을 거라고 하니까 99%가 찬성하더군.』
『어?』
『날 지지하던 이들도 재우라면 나 이상으로 할 거라고 믿고 있어. 그렇게 만든 건 재우야. 그 녀석은 훨씬 나보다 일을 잘하고 NI를 더 크게 만들 녀석이야. 미래적 감각으로 말이지.』
『너는 그 감각이 없다고 생각해?』
그 미래적 감각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 한태경이 일을 하는 것을 옆에서 몇 달을 지켜본 이건으로선 그가 능력이 없고, 실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진행하는 모든 일이 성공했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조건 해냈으니까.
『나는 두루두루 살피지를 못해. 하나에 집중하는 못된 버릇이 있거든. 그건 사업가로선 치명적이야. 한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숲을 봐야 하잖아? 그런데 나는 마음에 든 나무만 보는 거지.』
태경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건은 그게 왜 나쁜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 한 그루의 나무만을 바라보는 것도 장점일 수도 있는데.
『정말 후회하지 않아?』
이건은 한태경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그 많은 것들을 그렇게 내려놓아도 되느냐고. 정말 아무것도 없이 떠날 수 있느냐는 마지막 질문.
『절대, 후회할 일 없을 거야.』
단호하게 그는 답했다.
“하아….”
어째 후회는 지금 자신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후회를 하고 있나? 전혀 하고 있지 않다. 한태경의 손을 잡고 함께 떠나자고 했던 것은 진심이었고, 다시 번복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냥… 한태경의 본가를 다녀온 후 마음이 어수선할 뿐이다. NI의 뉴스가 지나가고 다른 뉴스가 나오자 이건은 TV를 끄고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아직 집안에는 한태경의 짐들이 가득했다. 아니, 오히려 본가에서 가져온 짐들 덕분에 이젠 그가 이곳에서 산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도대체 그 좋은 집을 놔두고 왜 계속 자신의 집에서 사는 걸까.
『우리 결혼 허락하셨어.』
한태경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이건은 벌떡 일어섰다.
“미친.”
말도 안 된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태경에게 이야기했지만, 그의 얼굴은 진지할 뿐이었다. 당장 너희 아버지들께 그런 일은 없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하니 한태경은 이건을 말렸다. 이미 그분들은 허락을 했고, 모든 선택은 자신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선택했다고. 이건은 장난이라 확신했다. 그야 자기가 말실수하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진행될 리가 없다고. 그러니 한태경이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고 회피하며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장난이야. 장난.”
암, 그렇고말고. 이건은 소파에 다시 털썩 누웠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면?”
다시 벌떡 일어섰다.
“아니야. 장난이야. 장난. 그 녀석과 내가 어떻게 결혼해. 알파랑 알파가 결혼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하하하하.”
다시 소파에 털썩 누웠다.
“아니 그런데 한태경은 한다고 하면 하잖아.”
다시 벌떡.
“장난이라니까.”
다시 소파에 풀썩.
“…미쳐가네.”
이건은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본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아니, 확실히 미쳤다. 속 시원한 답을 얻고 싶어서 한태경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어떤 답이 나오더라도 어쩐지 무서울 것 같아서 차마 묻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같이 해외로 나가도 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