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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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경에게서 연락이 없다.

한태경답지 않게 어제 약한 소리를 조금 해서 걱정이 되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준비 때문에 바쁜가보다 싶어 문자로 ‘잘 다녀와. 전화하고.’ 라고 문자를 보냈다. 보통 문자를 보내면 바로 확인하는 사람이 확인도 하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닌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아니, 애초에 정부다. 그들이 바퀴벌레와 같진 않은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이건은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밖을 나갔다.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보이는 작은 카페에 앉아서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우스웠다. 한태경 걱정을 왜 하는 걸까. 자기보다 훨씬 잘난 놈이고 싸움도 잘하는 놈이니 무슨 일이 있으면 스스로 다 이겨내고 싸움에 승리할 녀석이었다. 그 독한 바퀴벌레들도 이기지 않았던가.

『태경 형 이제 각인된 사람도 없고, 약혼한 오메가도 없으니까요. 가만 놔두겠어요? 정부 차원에서 좋은 오메가 붙여 주려고 난리에요. 뭣하면 태경 형은 일부다처제 해도 된다고 말을 하겠어요.』

『그 말은 정부도 바퀴벌레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데.』

『다를 바 없죠. 아마 태경 형은 당분간 힘들 거예요. 마음에 드는 오메가가 생겨서 당장 결혼하지 않는 이상, 계속 들들 볶을 걸요. 아버지들이 방어선을 쳐주고 있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죠.』

재우와 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정부 역시 바퀴벌레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 그리고 더 뿌리치기 까다롭다는 거. 바퀴벌레들은 범법자들이지만, 정부는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한태경을 압박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들은 훨씬 권위 있고, 한태경을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한태경의 아버지들도 방어선을 쳐주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는 거겠지. 그렇다는 건 자신 역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건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재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 이건 형이 웬일로 저에게 전화를??]

“일하는 중이지? 미안해.”

[아니에요. 좀 쉬고 있었어요. 산책 중입니다.]

혹여나 이건이 불편해할까 봐 이렇게 말해주는 재우의 사소한 배려가 너무 고맙다.

[형?]

“아, 혹시 태경이에게 연락이 있나 싶어서. 오전에 국회로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서.”

[아, 저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어요. 김 사범님이 같이 들어갔으니까 별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 이게 바로 PTSD인가 보다. 뭔가 사소한 일도 불안감을 느끼네.”

[형, 괜찮으면 상담심리라도 받을래요? 우리 가족 담당의가 있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한태경이 눈앞에 있거나 옆에 있으면 괜찮아져. 그 말을 하려다가 이건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태경이 연락 오면 나한테 연락 좀 해달라고 해줘.”

[나에게 전화할 시간에 형에게 먼저 할 걸요? 형이야말로 나중에 태경 형 연락받으면 저한테 연락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하하, 알았어.”

조금 무겁게 전화를 시작해 유쾌하고 끝내고 이건은 얼음이 다 녹아 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러고 있지 말자. 불안한 생각만 드니까. 병원 가서 재활이나 하자. 이건은 빈 커피잔은 반납하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재활을 다 하고, 진 사범님의 체육관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한태경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남긴 문자는 보지도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재우에게도 연락이 없는 거 보니 아무래도 그도 소식을 모르는 것 같고, 그렇다고 닦달하며 물어볼 수도 없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도대체 누구에게 연락을 해봐야 하지.

『김 사범님이 같이 들어갔으니까 별일은 없을 거예요.』

아! 아까 재우가 했던 말이 떠올라 이건은 얼른 김 사범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김 사범님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럼 김 사범님과 함께 움직일만한 경호원들은 뭔가 알지 않을까 해서 그들에게 쭉 연락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점점 불안이 싹 트기 시작했다. 밤 10시, 11시까지 기다려 보고 연락 없으면 한태경 아버지들에게라도 전화를 해보자 결심하고 집에 딱 들어왔을 때 잠잠하던 휴대폰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한태경이었다. 이건은 신발 벗는 것도 잊어버리고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