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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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건.”

“태경아.”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잠시 몇 초간 멈칫했다가 태경은 서이건에게 먼저 이야기하라고 손을 내밀었다.

“술 마시러 가자.”

“뭐?”

“술”

“마시지도 못하면서 무슨.”

“그래도 이런 기분이면 술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 어차피 내일 훈련도 쉬고 마셔도 될 타이밍인 것 같다. 애석하게도 마실 친구가 너뿐이라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싫으면 강요 안 해. 나 혼자 마시러 갈 테니까.”

이건이 손을 흔들며 앞서 걷는다. 기숙사 방향이 아닌 학교 버스 방향이었다. 정말 나갈 생각인가. 태경은 얼른 그의 뒤를 쫓아갔다.

“같이 가자.”

이건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은 버스를 기다렸다. 술집에 도착해서 술을 마시는 내내 이건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맥주 한 병에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그 모습을 한태경은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술에 취한 이건을 힘겹게 기숙사로 데려와 침대에 눕혔다. 입학하고 신고식 할 때 이후로 처음 마시는 술이라 상당히 버거워 보였고, 급기야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되자마자 숙취 약을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술 냄새 풀풀 나게 숨을 쉬고 있는 이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항상 이건은 자신에게 잘 생겼다고 했다. 부러울 정도로 잘생겼다고, 하지만 태경은 이건이 훨씬 잘 생긴 것 같았다. 자신이 정말 원하던 남자답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 지금 강유한만 바라보고 있어서 그렇지 서이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오메가가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건의 눈에 띄어 보려고 애쓰는데 정작 당사자가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있고, 태경도 굳이 이야기해 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태경아….”

푸- 푸-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은 채 이건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왜?”

“우리~ 한번 대련해 볼까?”

“대련?”

“어, 그래서 내가 이기면… 선배… 아니다. 선배가 물건도 아니고. 선배가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 내 욕심이지. 알아. 아는데… 너무 슬프다? 진짜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슬프고.”

아까 술 마시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더니 결국은 독이 터졌나 보다. 참고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 내는데 그게 한태경을 향하는 것인지 서이건을 향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분 나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안타까웠다.

태경은 이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너를 너무 낮출 필요는 없어. 내가 얼마나 너를… 이 자리에 있기까지, 너 하나 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너는 모르겠지.”

“거짓말하지 마. 뭐든 잘하잖아. 너는.”

“그러기 위해서도 필요한 노력도 있는 거야.”

“결국, 잘한다는 건 부정하지 않네. 나쁜 놈. 그런데 왜 선배 안 받아줘. 차라리 네가 받아줬으면 내가… 포기할 것 같아. 노력은 해볼 것 같아.”

한마디 하고는 다시 푸- 숨을 쉬며 기절하는 이건을 보며 태경은 웃었다. 아마 내일 아침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너는… 누굴 좋아해 본 적… 없어?”

기절하는 그 순간까지도 궁금한 것을 쏟아 낸다. 그리고 그 답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 OR라고. YES도 NO도 아닌 OR이다.

“잘 자.”

한태경은 이건의 이불을 꼭꼭 덮어 주고 자신의 테라스로 잠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끔 동기들이 담배 피우고 싶을 때가 있지 않으냐고 말할 땐 이해를 못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아서 착잡했다.

‘바스락’

음?

하늘을 바라보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한태경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공원 쪽에 검은 인영이 나무들 틈새로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았다. 그냥 산책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한태경은 얼른 방으로 들어와 테라스 문을 잠그고 커튼을 닫았다. 불안함이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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