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경이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정말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강유한이 오기 전에 마시던 커피를 보는 눈도 저렇게 심드렁하지 않을 거다. 이건은 얼른 한태경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툭툭 쳤다.
“네, 한태경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태경이 내민 유한의 손을 맞잡으며 이야기했다. 이건은 얼른 유한이 앉을 의자를 빼주었다.
“선배님 여기 앉으세요.”
“아, 이런 거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말도 편하게 하고… 길지 않은 시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서로 불편함 없이 잘 지내보자.”
“네!”
이건의 목소리의 볼륨이 평균 볼륨보다 조금 더 커졌다. 게다가 선배들에게 원래 깍듯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예를 차릴 일인가 한태경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을 보니 시선이 선배에게 일직선으로 향해 있었다. 살짝 상기 된 얼굴이 지금 그가 무척 기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유한이라고 하는 사람과 부딪혔을 때도 저런 얼굴이었지. 좋은 건가. 마음에 들었나?
한태경이 가만히 강유한을 쳐다보았다. 여느 오메가들 같은데….
“어…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뇨.”
쌀쌀맞다 못해 시베리안 벌판을 달리는 듯한 단호함에 이건이 민망할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도와줘서 고마웠어.”
응? 도와줘? 이건이 무슨 소린지 몰라 눈동자를 또르르 굴렸다. 어쩐지 두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한태경은 그저 피식 웃었다.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닌 어이없다는 웃음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유한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혹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 이거 좀 민망한데. 이건은 볼을 긁적였다.
“혹시 이 녀석과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참견하고 말았다. 한태경이 노려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른 척 무시했다.
“아, 응.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만났는데 내가… 실수를 해서… 잘못하면 잘릴 수도 있었는데 태경이가 도와줬어.”
“그건 도와준 게 아닌데.”
“어? 그, 그래? 하지만 난 도움 받았다고 생각해. 그래서 고마웠고.”
강유한이 두 손을 조몰락거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모습에 이건은 어쩐지 가슴이 싸해지는 것 같았다. 아 혹시 태경에게 마음이 있는 걸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자신이 봐도 한태경은 멋진 놈이고 미래가 짱짱한 놈이니까. 가진 것 없는 자신보단 훨씬 가진 것도 많고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하지만.
“그랬군요. 와~ 이 녀석이 누군가를 돕다니. 나도 봤어야 했는데. 착한 일 했네?”
웃을 수가 없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장난을 쳐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태경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강유한은 한태경을 보고 있었다. 뭐라도 이야기해 주길 기다렸지만 한태경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저희가 앞으로 뭘 하면 될까요?”
그래서 서이건은 최선을 다했다. 유한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덕분일까. 강유한은 이건을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꺼내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교수님이 아마 조별 과제 몇 개를 줄 거야. 세 개 정도라고 하는데 이건 그때 주제가 발표되어봐야 알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너희들 관찰 일기를 쓰게 될 거고, 주에 두 번 정도는 심리 상담을 할 거야.”
“함께요?”
“아니 개별로. 그래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구나. 아, 저 써도 될까요?”
노트북도 뭐도 아무것도 없어서 쓸 곳이라곤 핸드폰이라 메모 앱을 켰다.
“괜찮으면 내가 계획 짜 놓은 거 메신저로 보내줘도 될까?”
“그럼요. 그러면 저희가 감사하죠.”
“그럼 전화번호 좀 알려 줘.”
“네.”
이건이 얼른 강유한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유한이 자신의 폰을 한태경에게 내밀었을 때 한태경은 서이건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