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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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이 열리자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서이건 씨, 오늘 쉬는 날 아니에요?”

경호원들끼리는 서로 쉬는 날을 다 숙지하고 기억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저 CCTV로 보고 있는 다른 경호원들도 모두 이건을 보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물론 제일 먼저 당황한 사람은 한태경 빌라의 출입자를 체크하는 담당자들이었다. 그들은 이건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믿지 못해 몇 번이나 확인하고, 한태경에게 확인을 받고 나서야 문을 열어 주었다.

“한 전무님께서 불러서 왔습니다.”

“아이쿠, 모처럼 쉬는 날인데. 얼른 들어가 봐요.”

“저, 혹시 별일 있는 건 아니죠? 한 전무님께서 갑자기 불러서 무슨 일 있나 싶어서요.”

“어… 우리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댁에만 계시고 별일 없는 걸로 알아요.”

“그럼 다행이네요. 들어가 보겠습니다.”

별일이 없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그들의 말을 100% 신뢰를 해서는 안 된다. 어디서 어떤 가능성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작은 것도 일단은 의심하고 짚고 넘어가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이건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가 한태경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한태- 아니, 한 전무님. 저 왔습니다.”

이상하다.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오늘은 일하는 아주머니도 오시지 않은 건가. 불안한 생각이 조금씩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자신이 한태경의 경호원이 된 이후 이렇다 할 위험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안심해야 하는 신호는 아니다. 아직 바퀴벌레들은 존재하니까.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이건은 거실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래도 한태경의 방문부터 열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려던 찰나 후드득하고 뭔가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붉은색의 액체가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지고 옷을 적시고 있었다.

붉은색? 피?! 순간 놀라 그 액체를 손으로 닦아 보았다. 훅하고 코를 아프게 찌르는 단향에 피가 아님을 깨닫고 안심했다. 그리고 이 액체가 떨어진 원인을 바라보았다. 소매로 눈을 닦고 다시 올려다보니 복층 난간에 한태경이 와인 잔을 뒤집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태경.”

이건은 얼른 그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뭐야. 너 왜 있었으면서 대답을 안 해? 걱정했잖아.”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는 멀쩡한 모습이었고, 어디 다친 곳도, 해코지당한 것도 없는 듯했다.

“씻고 와.”

“어?”

이건은 눈을 깜박거리다가 자신의 상태를 보았다. 그리고 한태경이 들고 있는 와인 잔을 바라보았다. 혹시 일부러 쏟은 건가. 아니, 그럴 이유가 없잖아.

“아, 이거 와인 맞지? 왜 남의 머리에 뿌리냐.”

“서이건 씨.”

“어? 아, 네.”

“씻고 오라고 했습니다.”

단호하게 내리는 명령에 이건은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한태경이 자신의 뒤에 있는 욕실의 문을 열었다. 마치 준비해둔 것처럼. 이건은 얼른 들어가 옷을 벗으며 재킷과 남방을 보았다. 생각보다 빨갛게 물이 들은 재킷과 남방은 기사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세탁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비싸게 주고 샀는데 안 해줄 리가 없잖아. 이건은 내일 가지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곱게 개켜 내려놓고 샤워를 하고 준비되어 있던 수건으로 몸을 닦고 가운을 입고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입고 갈 옷이 없는데….”

지금 당장 세탁을 맡겨야 하나. 이건은 고민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이렇게 됐지. 한태경이 왜 와인을… 아니, 실수였던 거야. 그럼 그렇고말고, 아니 그래도 실수라도 일단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않나? 씻으라고 하는 게 저 삐뚤어진 자식의 사과 방식인가. 이건은 자신의 방만한 욕실을 한번 둘러보곤 나왔다.

“아.”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한태경이 있었고, 그 옆에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이건이 나오자마자 손에 들린 와인에 젖은 옷들을 수거해서 가져갔다. 세탁해주시려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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