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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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에 이건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시끄러워서 눈을 뜬 것이 아니었다. 그 소리가 너무 구슬프게 들려서 위로해 주려고… 울지 말라고… 옆에 있어 주겠다고 말하고 싶어서 눈을 떴다. 그러나 다행히 그 소리는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래, 비….

‘여기는… 병원이다.’

깨어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입원해 있던 곳이니까. 다만 왜 자신이 다시 여기에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퇴원했던 것 같은데… 퇴원하고 어떻게 됐더라? 잠깐 집에 갔다가 습격을 받았고, 한태경의 집에 가서 쉬다가 러트가 왔다. 그리고….

“헉!”

이건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숨을 참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정말 ‘하나님 살려 주세요.’라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근육통도 근육통이지만, 위랑 장 쪽이 너무 아팠다. 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지. 궁금한 것 투성인데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이건은 어쩔 수 없이 호출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김 사범이 들어왔고, 그는 이건을 보자마자 놀라 달려 들어왔다.

“이건아, 괜찮아?”

“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목이 완전히 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침을 삼키는 것도 목구멍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라 캑캑거리니 김 사범이 얼른 생수를 컵에 담아 이건에게 다가와 편안하게 상체를 일으킬 수 있도록 침대 상판을 움직였고, 이건이 자리에 앉자 물이 든 컵을 내밀었다. 대체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건지 손에 힘이 없어 컵 하나 잡는 것도 덜덜 떨었다.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두 모금 입에 머금은 후 세 번째는 한 번에 원샷을 해버렸다. 물이 들어가니 이제 좀 살 것 같아 이건은 숨을 푹 쉬었다.

“하아… 사범님. 어떻게 된 건가요.”

“기억 안 나?”

“…아뇨. 어렴풋하게 기억이 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데 여기에 있으면 안 되지 않나요? 병원이면… 아니, 잠시만 사범님이 여기에 있다는 건 한태경은요? 태경이 녀석은 지금 누가 지키고 있습니까?”

“이건아… 너는… 지금 누굴 걱정해.”

“네? 당연히 한태경이죠.”

“네 몸부터 걱정해. 그 녀석은 괜찮아. 유능한 놈들이 잘 지키고 있으니까.”

“그래도 사범님이라도 붙어 있어야죠.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정말 서이건은 진심으로 한태경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고 둔한 놈이 있을까. 김 사범은 정말 가슴은 치고 싶었다. 진 사범이 서이건은 정의감에 넘치는 녀석이라 나쁜 녀석들은 가만두지 않지만 정작 자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 십여 년 전의 한태경이 그렇게 서이건 옆에 붙어 있으면서 걱정했지.

“이건아. 태경이는 괜찮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 계속 위치 확인하고 있고, 보고도 받고 있어.”

김 사범이 귀에 붙어 있는 무전을 톡톡 치며 서이건에게 말했다. 그제야 이건은 조금은 안도하며 침대에 몸을 기댔다.

“의사 선생님 부르마. 너 일어나면 꼭 알려 달라고 한 선생님이 계셔. 네 담당의라고 하던데?”

“아, 네. 정 교수님이요?”

“그래. 맞아.”

김 사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출 버튼을 눌렀다. 곧 간호사가 와서 서이건의 상태를 보더니 정 교수를 호출하러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교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서이건 선수, 괜찮아요?”

“네, 교수님. 죄송합니다. 걱정 끼쳤습니다. 그런데 저 대체 얼마나 잔 건가요.”

교수님을 기다리는 동안 김 사범에게 며칠을 잔 건지 이야기를 듣고 이건은 깜짝 놀랐다. 죽어서 잘 잠을 이번에 다 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한 번도 깨지 않고 그렇게 잘 수가 있지?

“욕창 생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약의 후유증과 체력이 너무 떨어진 상태라 몸이 쉬고 싶었던 겁니다. 그나저나 지금 좀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아, 네.”

“배는 고프지 않아요?”

“네, 아직은 고프지 않습니다.”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