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차는 실장이 탄 차를 들이박아 다리로 밀었고 곧 다리의 방어벽을 뚫고 차가 튕겨 나가 한강으로 곤두박질쳤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자살 테러였다.“어? 어?”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옆에 앉은 기사의 외침에 이건이 고개를 들자 차 한 대가 한태경의 차로 돌진하는 게 보였다.
“뭐해요?! 막아야죠!!!”
“네??”
기사가 당황한 듯 차를 멈춰 세우자 이건이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기사는 자기의 역할을 깨달았는지 달려오는 차를 막으러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올리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핸들이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것 같아 이건은 보조석에서 벨트를 풀고 일어나 핸들을 붙잡고 한태경의 차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찬 타를 희생하기로 했다. 죽을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한태경을 그 끔찍한 사고로 잃을 순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과속으로 달려오던 차 뒤에 한 대가 더 있었다.
“젠장!!”
차 한 대는 막기도 전에 이건의 차를 밀어 버렸고, 한 대는 한태경의 차를 밀었다. 동시에 두 차량은 밀려 한강으로 튕겨 날아갔고, 몸은 충격을 받아 꼼짝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명까지 들리는 동시에 물속으로 빠져 깊게 들어가 숨이 막히는 지경까지 되었다. 무엇보다 차 때문에 터지는 거품 때문에 시야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물속에 감겨서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 건가.
사람이 죽기 전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더니 정말이었다. 그간의 인생이 스쳐 지나가며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솟았다. 그깟 바퀴벌레들 때문에 인생을 이렇게 끝내버릴 순 없었다. 이건은 발끈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운전석에 있던 기사는 피를 철철 흘리며 몸의 살점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죽어 있었다. 그의 명복을 빌기도 전에 이건은 보조석의 문을 발로 찼다. 다행히 문의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아 쉽게 떨어져 나갔고 몸을 빼내어 주위를 보았다. 한태경, 한태경을 찾아야 했다.
저 멀리 핏물이 보이는 것 보니 그쪽에 있을 것 같았다. 숨이 막혔지만 조금만 참고 그쪽으로 헤엄쳐 갔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답답한 시야를 뚫고 헤엄쳐 가니 차의 잔해가 보였다. 그리고 보조석에 의식을 잃고 있는 한태경도 보였다. 문제는 차가 더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안된다. 이대로면 한태경은 죽을 것이다. 그건 너무 불쌍하잖아. 저 녀석이 무슨 큰 죄를 지었는데? 죄를 지었다면 자신에게 지었는데 그 벌을 내리기도 전에, 스무대를 때리기도 전에 이렇게 보낼 순 없었다. 이건은 어떻게든 차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멀어졌다. 애가 타고 눈물이 났다. 빨리 자신도 올라가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태경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고 생각할 때, 저 멀리서 빛과 함께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한태경 쪽으로 가서 그를 꺼내 데리고 올라왔다.
처음에는 구조대인가? 생각했지만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한태경이였다. 그렇다는 건 바퀴벌레들이 틀림없었다. 살려준 건 고마운데 이대로 바퀴벌레들이 한태경을 데리고 가게 할 순 없었다. 이건은 그들을 쫓아갔다. 그들이 물 위로 올라가자 자신도 물 위로 올라가 숨을 크게 몰아쉬고 계속 끝까지 따라갔다. 처음에는 이건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 전등을 비추고 이건을 발견했다. 그러자 한 명은 한태경을 데리고 가고 한 명은 이건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 아까 같은 상황이라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물가로 나갈 수 있는 깊이였다. 저쪽은 잠수복까지 입고 있다지만 그렇게 승산이 없는 싸움은 아니었다. 물속 전투는 처음이지만, 지금은 그저 한태경을 구하는 것만 생각해야 했다. 더 멀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바퀴벌레가 헤엄쳐서 칼을 휘두른다. 확실히 지상보다 바퀴벌레들도 움직임이 느렸다. 슬로우모션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이건 역시 수월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을 빠르게 움직여 바퀴벌레의 등을 발로 차서 누른 다음 칼의 손목을 쳤다. 칼이 흐늘거리며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이건은 바퀴벌레의 입에 있는 산소 호흡기를 뺐다. 바퀴벌레가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휘젓자 이건은 다시 한번 그의 몸을 쳐서 산소통과 몸을 분리한 다음 한태경을 데려간 바퀴벌레를 쫓아 올라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 보였다. 이건은 정말 이를 악물며 수영을 해서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그리고 한태경을 데리고 나가는 바퀴벌레의 발을 붙잡아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바퀴벌레가 물에 빠짐과 동시에 한태경을 놓쳤다. 이건은 얼른 바퀴벌레의 머리통을 아까 가져온 산소통으로 후려쳤다. 덕분에 바퀴벌레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고, 이건은 얼른 한태경을 붙잡아 끌어올려 물속을 나왔다. 아주 많이 헤엄쳤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그렇게 멀리 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발견해주기를, 아니 그 사고가 났으니 뉴스가 나고 난리가 났을 테니 지금 수색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태경, 한태경.”
이건은 바닥에 쓰러진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의식이 없고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건은 얼른 심폐소생술을 했다. 어떻게든 그가 마신 물을 뱉어내고 숨을 쉬게 해야 했다.
“제발, 제발.”
그의 입에 입을 맞추고 공기를 불어 넣었다. 여기서 죽으면 안 돼. 너, 절대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젠장.
“태경아, 한태경.”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 이 녀석의 삶이 고달파서. 아픈 몸으로 태어나 치료받겠다고 선택한 방법이 이 녀석을 죽음의 길로 끌어당겼다.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크흡!”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던 몸이 꿈틀거리더니 그의 입에서 물이 쏟아진다. 이건이 비키니 그가 몸을 뒤틀며 기침을 했다. 숨을 쉰다. 움직이고 있어.
“한태경, 괜찮아?”
“크흡. 콜록콜록.”
이건은 한태경의 등을 두드렸다. 살았다. 그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니 이마에 흘러내리는 피가 거슬려 젖어있긴 했지만, 자신의 상의를 벗어 그의 머리의 피를 닦아주었다. 숨을 고르며 눈을 깜박이던 그가 서이건을 바라보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럴 시간 없어. 도망쳐야 해.”
“일어날 수 있겠어?”
이건의 질문에 한태경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칼을 꺼냈다.
“우리 위치 신호 수신기가 모두 망가졌을 거야.”
“아.”
이건은 얼른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과 위치 수신기들을 확인했다. 아무리 방수 처리가 되어있다고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물을 먹었다면 기기가 망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젠장. 어떻게 하지? 분명 우릴 찾고 있을 거긴 한데.”
조금만 더 여기서 버텨야 하나? 아니면 어딘가로 도망가야 하나. 사람들이 있는 도심 쪽으로 가기엔 다소 멀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어? 왜 차가 없지?”
이상하다. 차가 하나도 없다.
“오늘 이쪽 행사 때문에 도로통제 해 둔다고 했어. 오후 4시까지.”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젠장.
아까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가 오후 1시를 넘었다. 1시간이 넘었다고 해도 아직 도로통제가 풀리려면 2시간이나 남았다.
“그렇다고 해도 경찰이라도 있어야- 잠시만. 아까 바퀴벌레들이 널 데리고 이쪽으로 빠져나왔어. 그렇다는 건….”
이건의 말에 한태경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쪽으로 눈치가 생기는 건 좋지 않은데.”
“지금 저기에 있는 있을지도 모르는 경찰들이나 통제하는 사람들이 바퀴벌레일 확률이 있다는 거네.”
젠장,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다시 한강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해야 하나? 아니 그러기엔 너무 위험 부담이다. 한태경은 다쳤고, 이건도 이제야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골절된 것 같은데 자칫하다간 한강 물살에 쓸려가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멀리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한 명, 두 명, 못해도 세 명 정도. 누가 바퀴벌레 아니랄까 봐 기분 나쁘게도 다가온다.
“서이건, 내 말 잘 들어.”
“뭐?”
“살아.”
“무슨 소리야.”
“저 녀석들은 날 죽이지 못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구하러 와.”
“무슨 소리냐고.”
한태경이 갑자기 칼로 자신의 손목을 찔렀다. 그리고 칼로 헤집어 아주 조그마한 칩을 꺼냈다. 충격에 멍하니 있는 이건을 바라보던 한태경은 칩을 닦고 자신의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서이건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혀가 엉키며 결코 달다고 할 수 없는 그 키스를 잠깐 받으며 이건은 자신의 목구멍으로 뭔가가 넘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한태경을 밀어내고 토하려고 했지만 이미 삼킨 후였다.
“너, 지금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위치 추적기.”
“뭐??”
“체내에 심는 거라 몸속에 있어도 위치를 알 수 있어.”
“그런 거라면 그때 팔에도 심어놨잖아!”
“신호가 약해. 그게 더 확실해.”
“무슨 소리야.”
한태경이 멱살을 잡는 이건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어쩐지 그 미소가 기분 나쁠 정도로 십여 년 전과 닮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이건의 배에 큰 충격이 가해졌고, 서이건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바닥에 쓰러지기 전 그를 안은 한태경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얼른 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갔다. 서이건을 바퀴벌레들이 발견하기 전에 그들 앞에 나서서 항복해야 했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 사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