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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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서이건이 한재우를 만난 날로 돌아간다. 서이건과 한재우가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한참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재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그래.”

보고 있던 탭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사랑하는 동생의 목소리지만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서이건을 만난 오메가’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바닥을 쳤다. 그래, 자신에겐 동생이지만 서이건에겐 반려도 될 수 있는 오메가가 아니던가.

[목소리 봐라. 이제 동생이고 뭐고 없지?]

아니라는 말도 차마 나오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뒤에 한재우가 한숨을 쉬었다.

[형, 오늘 나랑 이건이 형 만난 거 알고 있지? 그러니까 이러는 거지?]

“그래.”

[목소리 한번 듣기 힘드네. 너무 그러지 마. 나 형 동생이라고. 이건이 형 반만큼 날 아껴줘 봐.]

“반보다는 더 아끼고 있으니 네가 지금 살아 있는 거야.”

[…와 개 무서워. 누나 말이 맞네.]

“무슨 일이야. 염장 지르려 전화한 건 아닐 테고.”

[아니, 아까 이건 형이랑 한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형은 알고 있나… 싶었지.]

“무슨 이야기?”

[이건 형, 해외로 나갈 생각인가 보던데? 알고 있어?]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받았던 그 어떤 충격보다 이보다 더한 것은 없었다. 기억이 돌아왔을 때도 이렇게 멍한 기분은 아니었다.

“…뭐?”

[하아… 역시 모르고 있었지.]

“언제?”

[언제 간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냥 이제 결정한 것 같던데. 그래도 이건 형, 은근 마음먹으면 실행하는 스타일 같아서.]

“…….”

[형, 이건 형하고 한번 대화해보는 게 어때?]

“무슨 자격으로.”

[형.]

“그래, 알았다. 고마워.”

더는 재우와 통화할 수가 없었다. 꽉 깨물고 있던 입술이 아팠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태경은 의자에 몸을 기대 마른세수를 했다.

그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서이건에게 자신의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그저 친구? 친구라고는 하지만 그의 인생에 들어오는 건 허용이 되지 않는 듯했다. 항상 먼저 다가간 것은 자신이었다. 먼저 손 내민 것도, 혹여나 멀어질까 봐 두려워하며 그 손을 꽉 잡은 것도 자신이었다. 당연했다. 서이건은 그 테두리에 한태경을 단 한 번도 넣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 자신이 위험해지니 경호원이 된 것은 한태경을 자신의 안에 넣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때 지키지 못한 빚을 갚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빚도 갚았으니 이제는 정말 미련 없이 한태경을 놓아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너를 만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너를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이렇게 쉽게 놓을 수 있는 걸까. 지금껏 한 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걸까. 왜? 내가 알파라서? 네가 알파라서?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왜 몰라.

직설적으로 이야기 했어야 했나. 사랑한다고. 서이건, 너뿐이라고. 나는 그 어떤 오메가도 필요치 않다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그랬다면 더 쉬웠을까? 아니다. 서이건의 성격이라면 그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말을 해버린다면 쉽게 생각하고 도망갈 것이다. 그 순간 아마 자신은 돌아 버릴 테지. 그대로 그를 잡아먹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실수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네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자신에게 빚을 졌다 생각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남자다. 그 틈을 조금이라도 이용한다면 어떤 답이 있지 않을까.

문득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건 서이건이다.

“나는 널 놓아줄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미안한데. 서이건. 내 덫에 빠져 줘.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