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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건.”
한태경의 목소리에 이건은 눈을 깜박였다. 여긴 어디지.
이리저리 둘러보니 익숙한 듯하면서 낯선… 한편으로는 그리움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국민체육 대학교. 태권도 체육관과 기숙사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의 벤치였다. 왜 여기에 있지? 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었더라.
“서이건.”
불쑥 얼굴이 시야에 다가왔다.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뒤로 흠칫 물러나다 넘어질 뻔하자, 얼른 그 얼굴의 주인공이 자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었다.
“정신을 어디다 빼고 있는 거야?”
“어… 한태경?”
뭐야. 한태경 얼굴이 왜 이렇게 젊어졌어? 마치 십여 년 전 대학 시절처럼. 아, 잠시만 지금 대학 시절이 아니라. 대학생인 건가? 혹시 그럼 지금까지 꿈을 꿨던 걸까.
“나 여기에 언제부터 있었어?”
“연습하고 나서부터 줄곧? 잠시 샌드위치 사러 간 사이에 여기서 졸고 있으면 어떻게 해.”
“졸고 있었다고?”
“그래.”
한태경이 사 온 샌드위치를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졸았구나. 역시 그건 꿈이었어. 정말 별별 꿈을 다 꾸네. 이건은 웃으면서 샌드위치의 비닐을 벗겼다. 한태경이 그 옆에 앉아 그런 서이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무시하기엔 시선이 너무 강해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장난일 게 뻔하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냐고.
“그냥. 잘 먹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이 정말 좋아.”
“뭐라는 건지.”
“진심인데.”
“그래, 그래. 나도 네가 좋다.”
서이건의 말에 한태경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진한 금색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지만, 이건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서이건.”
“웅?”
입에 한 아름 샌드위치를 베어 문 서이건이 뭉개진 발음으로 답을 하자 한태경이 웃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뭐가? 어? 말이 안 나온다. 목이 갑자기 막힌 것 같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샌드위치가 목에 걸린 건가? 이건이 가슴을 치며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도와 달라고 외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한태경이 조금씩 부스러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먼지로, 그다음에는 모래로, 그다음에는 돌덩이로 와르르 무너지는 그를 보며 서이건은 어떻게든 그의 잔해를 모으려고 했다. 안돼! 안돼, 한태경!! 제발…. 데려가지 마세요. 불쌍한 녀석입니다. 제발, 신이시여 태경이를 지켜 주세요.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남은 건 먼지였고, 그마저도 모두 바람에 흩날려 날아가고 말았다. 이건은 눈물을 흘렸다. 좌절했다. 그때도 한태경을 지켜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한이 되었다. 그래서 경호원이 된 것인데… 이번에야말로 한태경을 지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만이었고 오만이었다. 결국,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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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톡톡 두드리는 느낌에 이건은 천천히 눈을 떴다.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은 지긋지긋한 병원 천장. 그리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한태경과 닮은 얼굴이 이건을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괜찮아요?”
박재경, 한태경을 낳아준 아버지. 그는 손수건으로 이건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슬픈 꿈을 꿨어요? 계속 울어서…. 안 그래도 깨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태경이는요? 차마 그렇게 묻지 못했다.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그의 마지막 모습만 떠올려도 알 수 있으니까. 결국, 한태경은 자신을 구하려 그 자신을 스스로 희생했다.
“죄송… 합니다.”
이건은 힘겹게 재경에게 사과했다. 재경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왜 사과해요. 서이건 선수 잘못이 아닌데.”
“제가 지켰어야 했는데… 제가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