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우가 식당을 예약했다고 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 재우를 보자마자 달려 나온 매니저가 안내해준 곳은 프라이빗한 공간이었고, 그곳에 앉자마자 메뉴판이 놓아졌지만 재우는 간단한 말로 많은 메뉴판을 정리했다. 그리고 곧 하나씩 먹어 본 적도 없는, 아니 먹기 아까운 아름다운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 맛있어요. 저희 가족이 자주 오는 곳이에요.”
재우가 얼른 먹어 보라고 재촉할 만큼 역시나 맛있었다.
“가족이랑은 사이가 좋은 것 같아.”
“아, 네. 정말 사이가 좋아요. 특히 저희 아버지들이요. 두 분이 진짜… 아마 작은아버지가 몸이 좀 약하지만 않았다면 자식을 축구구단만큼 낳으셨을 분들이세요.”
“보기 좋던데.”
“네, 그건 그래요. 저도 어릴 적부터 그런 아버지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생각해요. 제 반려될 사람에게도 잘해주고 싶고요.”
“넌 잘해줄 것 같아. 아니, 너희 가족 모두 다 그래. 네 누나도. 태경이도.”
“음… 예전 같으면 그 말에 몇백 번 동의했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왜?”
“가족 뒷담화 같긴 하지만… 누나는 문제없거든요? 그런데 태경 형이… 예전에는 진짜 다정다감하고 좋았는데… 사고 이후에 많이 변했잖아요. 무서울 만큼.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아버지들을 사랑해주고 있지만 그 자신은 텅 빈 것처럼… 그럼 결국 그것을 채워줘야 하는 사람은 반려의 몫인데… 그럼 반려가 힘들죠.”
재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경이가… 사고당하고 변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이건이 조심스럽게 그때 일을 물어보았다. 아마 재우에겐 아픈 상처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일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그냥 충격이었어요. 다정하고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주던 형은 없었으니까요. 처음에는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해서 형도 그랬지만 저희들도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특히 아버지들의 충격이 너무 컸죠. 그래도 마음 다잡고 형이 기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다행히 형이 회복되면 될수록 조금씩 가족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죠. 처음 눈떴을 땐 야생 호랑이 같이 경계하더니 기억하고 나선 순한 호랑이가 되더라고요. 제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고, 누나의 이름도 기억하고… 아버지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그 이상의 기억은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고 형을 위로했지만… 아무리 기억을 잃어도 사람 성미는 안 변하더라고요. 형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과거 기록을 다 찾아보고, 사진을 보면서 저에게 하나하나 물었죠. 그래서 지금의 형이 된 거예요. 그거 알아요? 형은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했어요. 창피함도 느끼지 않고 잃어버린 기억의 피스를 맞추기 위해 교육을 다시 받았어요. 초등 교육부터요. 그리고 경영학까지… 운동도 하고 싶어 했는데 몸이 다 회복된 건 아니라서 그건 의사들과 아버지들이 말려서 하진 못했지만 나중에 건강해지고 나선 거의 헬스장에서 살았어요.”
아, 그래서 몸이 아직도 그렇게 좋은 거군.
“한태경답다.”
“그렇죠? 예전의 형은 이제 없지만 지금의 형도 좋아요. 그런데 이건 형은 어땠어요? 제가 미리 이야기하긴 했지만, 변한 태경 형을 보고 나니 당황했을 것 같은데.”
“당황했지. 간혹 과거의 한태경을 생각하고 처음에는 예전처럼 굴기도 굴었는데… 다른 사람인 거 알겠더라. 그래도 한태경이야. 성격이 아주 조금 나빠진 거 말고는….”
“아주 조금?”
“음… 아니, 아주 많이 달라졌어. 하지만 나쁘진 않아. 나도 너희 가족들과 똑같이 그를 한태경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 과거가 아쉽긴 하지만 다시 쌓으면 되니까.”
이건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재우는 고기를 썰다가 멈칫하며 이건을 바라보았다.
“왜?”
“…아뇨. 이건 형답다… 생각해서요. 이상하게 태경 형이 이건 형에 대해선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정말 많은 정보를 줬어요. 형에 대한 정보는 전부 다. 그런데 기억을 하지 못해서… 어쩐지 이건 형에게 미안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