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비서들이 나와 인사했다. 더불어 그 층을 경호하는 이들 역시 한태경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새삼 이렇게 보니 한태경이 대단한 사람이 되긴 했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자기도 비서들과 더불어 다른 경호원들과 함께 여기에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한태경이 전무실 문을 열더니 가만히 서 있는 서이건을 바라보았다.‘아, 들어오라는 거구나.’
생각보다 눈치는 있어 이건은 그가 무슨 이야기하기 전에 얼른 전무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한태경은 재킷을 벗어 의자에 놔두고는 책상으로 키보드를 툭툭 두드렸다.
“왜 오늘 바로 여기로 오지 않았습니까?”
이제 다시 존댓말이네. 정말 어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알고 있던 한태경이라면 하나만 해라고 멱살을 잡았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니 자신이 맞춰줘야겠지.
“아… 김 사범님께서 알아야 할 것이나 주의 사항 등을 알려 주고 계셨습니다.”
“카페에서?”
“아뇨. 점심시간이라 사범님과 점심을 먹고 커피 사러 카페를 간 것입니다.”
“흠.”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건지. 애매모호한 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전엔 알고 싶지 않아도 얼굴 표정이나 눈빛을 봐도 얼추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저 붉은 눈이 한태경을 숨기는 단단한 보호막처럼 느껴진다. 그때 때마침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에 한태경이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고 손가락은 까닥했다. 아무래도 받아도 된다는 제스처 같아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이건.]
“아, 네. 김 사범님.”
[어디지?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나질 않아서 전화했다.]
아,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구나.
“죄송합니다. 지금 한태경 전무님과 함께 있는데-”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귀에 있던 전화기가 쏙 빠져나갔다. 어느새 다가온 한태경이 이건의 손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서는 자신의 귀에 댔다.
“사범님. 서이건 씨는 이 시간부로 원래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모르는 건 제가 가르치죠.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를 툭 끊고는 핸드폰을 서이건에게 내민다.
“사범님께 허락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여기서 원래 예정되어있던 업무를 하면 됩니다.”
원래 예정되어있는 업무. 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한태경을 지키는 것이다.
“한시도 나에게 눈을 떼지 마세요. 그게 서이건 씨가 해야 할 일입니다.”
혹시나 잊어버렸을까 봐 보여주는 친절에 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김 사범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을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고용인이 그렇게 하라면 해야지. 이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방에 있으면 되는 거겠지. 별말 없었으니. 이건은 책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뒷짐 지고 서서는 가만히 한태경을 포함하여 방을 돌아보았다.
김 사범님이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이 방에 있는 모든 소재들은 불에 붙지 않는 소재라고 했다. 그리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없다. 그래서 방이 지나치게 심플한 것이다. 대신 한태경이 앉은 책상 안에는 총이 두 자루가 준비되어있고, 왼편 검은색 선반에 숨겨진 스위치를 누르면 비상구가 하나 더 표시된다고 했었다. 일단 배운 것을 눈으로 스캔을 다 하고 슬쩍 한태경의 뒤로 보이는 건물의 전망을 확인했다. 이 높은 곳까지 유리로 잠입할 미친놈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헬기로 접근하여 총을 쏠 수도 있어 유리는 전부 방탄유리라고 했다. 만약을 대비해 낙하산을 타고 이 유리에 총까지 쏘는 시뮬레이션도 해보았다고 하니 솔직히 경호 업체로서는 할 만큼 다하다 못해 영화를 한 편 찍은 것 같았다.
한편으론 한태경이 이렇게 위협을 당하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 얼굴에 뭔가 묻었습니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한태경이 입을 열었다. 아,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빤히 쳐다본 모양이었다.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