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야? 지금 재우가 납치당할 뻔했다는 거야?”“맞아.”
“아니 대체 왜? 누가?!”
“그건… 알 필요 없어. 어차피 잡아 처넣었으니까.”
“그건 다행이네. 그럼 이제 안전한 거야? 목적은 뭐였어? 보통 납치한 거면 목적이 있잖아.”
“목적은… 나야.”
“뭐?”
“날 붙잡기 위해서 재우를 이용했어.”
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냥 가벼운 사고겠지 생각했는데 납치라는 단어가 나오고 그 목적이 한태경이었다니.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스케일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기껏 돌멩이 하나를 생각했는데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눈앞으로 굴러오는 기분.
“널… 왜 붙잡는데? 누가?”
“그냥 서이건, 네가 봐도 내가 잘났잖아? 그래서 예전부터 노리는 놈들이 많았어.”
저 녀석이 답지 않게 왜 저럴까. 저런 말 할 녀석이 절대 아닌데.
“너 농담한 거야?”
“아니, 반은 진담이고, 반은 농담이고. 그런데… 자세히 너에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굳이 네가 몰라도 되는 이야기들이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만 알면 될 것 같다.”
“네가 이야기하기 싫다면 더는 묻지 않을게. 그런데 한 가지만 묻자. 너도 위험해?”
서이건의 질문에 한태경이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웃음기도 그렇다고 장난기도 없었다. 진중하고 올곧은 눈이 소리 없는 답을 주었다. 한태경도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당분간 경호원들이 우리랑 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조금 불편할 수 있는데 이해해 줘.”
“당연하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고맙다. 아마 빨리 해결될 거야. 그렇게 바라고 있고.”
그렇게 말하며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분명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건대, 더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아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이건은 묻지 않고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언제고 한태경이 이야기해 주길 바라면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끝났다.”
지긋지긋한 기말고사가 끝났다. 그리고 여름 방학을 앞두며 가만히 앉아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학교 입학하고 나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감사하게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비바람 피할 기숙사도 있어서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그 시간을 온전히 연습과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에 갑자기 감사해졌다.
“마셔.”
벤치에 앉아 감상에 젖어 있는데 한태경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불쑥 내민다. 이 또한 감사하지. 이렇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말이다.
“방학 동안 뭐할 거야?”
“방학 동안 훈련하겠지. 올해 하반기에 국가대표 시니어 선발전 있는 거 잊은 건 아니겠지?”
“잊을 리가 있냐. 그냥 물어본 거지.”
벌써 내년 가을이면 올림픽이다. 올림픽에 가기 위해선 기필코 시니어 국가대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의 오랜 염원이었다.
“시험 끝났으니 오랜만에 진 사범님이나 뵈러 가야겠다. 얼굴 좀 보여 달라고 계속 그러시네. 그 양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 봐.”
“흠….”
“너는 김 사범님 안 뵈어도 되는 거야?”
“따로 뵐 일은 없지만, 조만간 회사 창립 기념일이라 거기서 뵐 것 같긴 해.”
‘창립 기념일’ 가끔 이런 말을 들으면 한태경이 NI의 총수 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더더욱 매번 놀라게 되는 것이다.
“언젠데?”
“다음 주 일요일. 너도 올래?”
“어? 아… 아니, 됐어. 순간 솔깃하긴 했는데 내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