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재경이 다정한 목소리로 강유한을 반겼다. 방금까지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믿지 말라고 했던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 마치 그때 강유한이 본가에 와서 식사할 때처럼 다정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니야.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은데…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아니에요. 저 혼자 있으면 오히려 불안해서.”
저들의 대화에서 어디가 거짓말이 있다는 걸까? 이건은 의문스러움에 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강유한 선배. 정말 오랜만에 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겪은 일들이 너무 크고 그의 약혼자에 관련된 일이니 당연히 걱정되고 올 수밖에 없겠지.
“아, 이건아.”
강유한이 이건을 보고 다정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사람. 그래서 사랑했고, 만약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맺어져도 행복하기만을 바랐던 사람이었는데… 바람과 다르게 그의 반려인 한태경도, 강유한도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향한 집착만이 느껴질 뿐.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 죄송해요. 태경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태경 씨 강한 사람이니까 무사할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저도 빨리 나아서 태경이 찾으러 갈 겁니다. 꼭 구해올게요.”
“든든하네. 정말…. 꼭 그렇게 해줘. 네가 구해줘.”
강유한이 슬픈 얼굴로 살포시 미소 지으며 이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박재경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무슨 일 있어?”
박재경이 걱정하며 강유한의 손을 꽉 붙잡았다.
“혹시 그놈들이 너에게 해코지를 했어?”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경호원 붙여 주시고, 그렇게 절 보호해주시는데 어떻게 그들이 절 해코지할 수 있겠어요?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그냥… 좋은 소식인데… 이걸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태경 씨도 없는데…. 그래서 아버님들께라도 이야기 드리고 싶었어요. 상황은 이렇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 이 상황에서 그의 아버지들에게 위로가 될만한 좋은 소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저 임신했습니다.”
이건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지금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임신이라고??
“임신 2주 차에요.”
“어, 어… 어떻게.”
박재경이 애써 침착하게 물어보았다.
“얼마 전에 태경 씨가 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그게… 그날 제가 히트 사이클이 와서 그대로….”
두근두근. 이건 누구의 심장 소리일까. 너무 크고 시끄러워서 그 심장 조용히 좀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건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는 자신의 소리였다. 왜 이렇게 불안하게 뛰고 있을까.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바로 축하한다고 해야 할 기쁜 소식인데 왜 자신도 박재경도 아무 말 못 하는 걸까. 가슴에 뭔가가 턱 하고 걸린 것 같았다. 목구멍을 누가 막은 것 같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버님?”
“아, 검, 검사했니?”
“네, 그럼요. 아 그런데 너무 놀라서 초음파 사진은 못 받았어요. 다음 검사 때 받아서 올게요. 그런데 기록을 보시면 될 거예요. 이 병원에서 검사받았거든요.”
이 병원은 한태경네 집안 소속 병원이다. 그렇다는 건 속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아까 그의 작은 아버지가 모든 것은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고 했다. 그럼 이것도 믿지 말아야 하는 정보인 거 아닐까? 사실은 임신하지 않았고. 아니,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좋은 일이잖아. 축하해야 할 일인데. 2주 전이면 대체 언제지. 자신이 입원해 있을 때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