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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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안 돼.’

다시 열꽃이 피기 시작했다.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한동안 마음을 잘 다스려 괜찮았는데 흔들리기 시작하자 귀신같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태경은 괴물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자 열기를 뿜어내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몸을 둥글게 감쌌다. 너무 무서웠다. 아버지들을 불러야 할까? 어떻게 하지? 아버지들이 그랬는데, 사람들이 많을 때 아프면 많은 사람이 곤란해질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면 자신들을 부르라고 했는데…. 태경은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아까 대기실로 오기 전에 자신을 응원해 주던 아버지들과 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아버지들이 걱정하는 건 더는 싫어. 조금만 견디면 없어지지 않을까? 이번에도 내가 이기면 괴물이 사라지지 않을까? 태경은 의자에서 비틀비틀 일어나 구석으로 가서 앉아 몸을 힘주어 말았다. 이렇게 있으면 그래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이 덜 가지 않을까? 하는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나오지 마. 무서워. 아니야, 무섭지 않아. 그러니까 나오지 마. 나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마음속으로 치열한 싸움을 했다. 몸이 늘어지고 뜨겁다. 이대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덕분에 숨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답답했다.

‘여긴가?’

그때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며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안 되는데.

‘뭐야, 아무도 없잖아. 아니, 이놈의 사범은 대기실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접수를 하러 가든가 말든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찾으라고-’

문 앞에서 양옆에 손을 올리고 구시렁거리던 남자아이는 태경보다 훨씬 크고 튼튼해 보였다. 자신은 아직 태권도 도복이 너무 커서 흘러내리는데 남자아이는 도복이 딱 맞고 띠도 예쁘게 잘 매서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옆방을 가봐야 하나. 음?’

아이가 뒤로 도는 순간 구석에 있는 태경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있었네. 안녕?’

인사? 누구에게? 자신에게?

‘나…?’

태경이 반문했다. 그러자 아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에 너밖에 없지 않아?’

‘응….’

태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애가 다가오려고 했다. 그러자 태경이 얼른 손을 뻗어 막았다.

‘안, 안 돼. 다가오면.’

‘왜?’

‘…나 때문에 네가 아플 거야.’

‘어? 나 괜찮은데? 튼튼해. 그보다 오히려 네가 아파 보여. 어디 아파?’

분명 아플 거라고 이야기했는데도 그 애는 상관없다는 듯 성큼 다가와 태경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이마에 열을 쟀다.

‘와 너 되게 뜨거워. 괜찮아? 병원 안 가도 돼? 사람 불러줄까?’

태경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이 남자아이는 자신의 열병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아이라서? 아니면 아직 발현 전인 걸까? 발현한 사람이면 백 퍼센트 영향을 받는다고 했는데.

‘혹시… 발현 전이야?’

‘발현?’

‘응….’

‘아, 난 아직 발현 전이야. 그런데 알파가 될 확률이 높대.’

그렇구나. 그래서… 이 방 안에 가득한 자신의 붉은 페로몬을 못 보는구나. 다행이다. 태경은 안심하며 아주 조금 긴장하고 있던 것을 풀었다. 그러자 그 애의 몸 주위에 가득 자신의 페로몬이 닿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넌 발현했어?’

‘응… 그래서 아픈 거래.’

‘몇 살인데?’

‘8살….’

‘나랑 동갑인데?!’

‘어?’

‘나도 8살이야.’

거짓말… 아이긴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크고 튼튼해 보이는데 동갑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야?’

‘…한태경.’

‘난 서이건이야.’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