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답답해지고 구역질이 났다. 그 녀석에게 태권도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한태경이 태권도를 하지 못한다. 그건 즉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최악으로 갈 리가… 고작 러트 한 번 온 건데 그 녀석을 하늘이 그렇게까지 몰고 갈 리가 없다. 이건은 고개를 저었다.“김 사범님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 녀석 이겨 낼 겁니다. 한태경이라면….”
[나도 그러길 바라고 있다. 그래, 그렇게까지 되지 않을 거야. 이건이 네 말이 맞다. 이겨낼 거다. 이겨낼 거야.]
모르긴 몰라도 진 사범님과 자신만큼, 김 사범님도 한태경을 처음, 태권도를 시작할 때부터 지켜봐 왔던 분이라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이 상황이 마음이 찢어질지 안 봐도 훤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태경에게 태권도가 어떤 존재인지 서이건보다 잘 아는 분일 테니 그만큼 절망이 더하신 거겠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건은 허망하게 체육관을 바라보았다. 곧 그렇게 꿈에 그리던 시니어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그 꿈을 위해서 얼마나 달렸던가. 누가 금메달을 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그 무대에 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그 꿈이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무너져 내리려고 했다. 부디 그 바닥끝까지 닿지 않고 그가 잘 버텨 주기를 이건은 기도했다. 이대로 끝내기엔 한태경이 너무 불쌍했으므로.
◆
그렇게 또 허무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이건은 한태경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의 전화로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었고, 톡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감독은 유망주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아 짜증을 내고 있었고, 이 대로면 학교에서 퇴학 처리될 거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럴 때마다 이건은 더 열심히 훈련했다. 한태경이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가 돌아왔을 때 대련을 하며 ‘네 실력 줄었네?’하고 놀릴 수 있도록. 그러나 9월 말… 그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때 감독이 아침에 모든 선수들을 불러 세웠다.
“한태경이 자퇴했다.”
쿵-
주위가 웅성거리며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윙윙거릴 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한태경이 자퇴했다고?
“이상이다. 훈련 열심히 하도록.”
감독은 할 이야기 다 끝냈다는 듯 뒤로 돌아갔고 이건은 얼른 그의 뒤를 따라가 붙잡았다.
“감, 감독님. 진, 진짭니까? 진짜 한태경이-.”
“이건아. 너 열심히 해야 한다. 너라도 꼭 가야지. 올림픽.”
아니야. 그 녀석도 갈 겁니다. 올림픽.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건은 돌아서는 감독님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의 물을 틀고 세수를 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그 녀석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원래 금지지만 혹시나 한태경에게 전화가 올까 몰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역시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늘 여느 때면 안내 멘트가 나오기 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녹음을 알리는 ‘삐’ 소리가 들리자마자 이건은 소리를 질렀다.
“개새끼야. 씹새끼야. 시발놈아!! 이런 게 어디 있어?! 시발!!!! 한마디도 없이!!! 어떻게 이래? 네가!! 나한테!!! 야 한태경 말해봐. 말해보라고!!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해!! 각인하면 다야? 이제 친구는 필요 없다 이거냐? 나는 이제 필요 없는 거냐고. 이 개새끼야. 시발!!”
다시 한 번 ‘삐’ 소리가 들리고 녹음 되었다는 안내 멘트를 듣고 이건은 씩씩거리며 젖은 머리를 헝클었다. 소리 지르고 마음껏 욕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시원하지 않았다. 당장 만나서 멱살 잡고 주먹이라도 한 방 날려 주고 싶은데도 그럴 수 없다. 그냥 얼굴이라도 제발 한 번 보고 이야기라도 나눴으면 소원이 없겠다. 한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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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셨다.
입학하고 신입생 환영회 이후 처음이었다. 몸 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술은 기피했다. 하지만 오늘은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혼자 학교 앞 편의점 앞에 앉아 맥주 두 캔과 감자칩 하나 들고 홀짝홀짝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