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한창 운전 중에 계속 한태경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걸려오는 전화는 계속 같은 번호였고, 한태경의 분위기로 봐서는 누군지 아는 것 같아서 일부러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 거는 사람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10분을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고, 덕분에 태경과 이건의 대화가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전화 받지그래?”
이건이 조심스럽게 한태경을 설득했다. 아무래도 전화를 건 사람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아.”
그걸 한태경도 알았는지 짜증 난다는 듯 한숨 쉬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꼈다.
“네, 한태경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곤 잠시 미간을 찌풀 거리더니 곧 또 긴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네.”
생각보다 긴 통화가 끝나고 한태경이 이어폰을 뽑으며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예상대로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닌 듯 했다.
“왜? 무슨 일 있어?”
“회사로 잠깐 가야 할 것 같아.”
“안 좋은 일이야?”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같아.”
후우… 이건은 서늘해졌던 가슴을 쓸었다. 다행이다. 아무리 바퀴벌레들이 정리되었다고 이야기를 듣긴 했고, 또 믿고 있지만 그래도 간혹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감은 어쩌지 못했다. 방금도 발신자 제한이라고 뜨자마자 내심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정말 예전 같으면 호탕하게 넘길 일이… 이제는 나이 들어가는 건가.
“그럼 지금 당장 가야 하는 거지?”
“집에 데려다줄게.”
“야, 우리 집에서 너희 회사까지 얼마나 먼 줄 알아? 당장 오라고 하는 것 같은데… 괜한 원망 사기 싫으니까 그냥 대충 아무 데나 나 내려주고 가.”
“내가 그렇게 하기 싫어서 그래.”
이 녀석 또 고집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나오면 절대 꺾을 수가 없다. 적당히 타협 보는 수밖에.
“그럼 진 사범님 도장에 내려줘. 안 그래도 오랜만에 인사드리려고 했거든.”
거짓말은 아니다. 진 사범님 뵌 지 너무 오래되어서 한번 뵙고 싶기도 했고, 도장이라면 위치가 회사랑 그렇게 멀진 않다. 무엇보다 한태경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의 집이니 크게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알았어.”
됐다. 한태경 역시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듯 받아들였다. 다행히 진 사범님 도장이 십여 분 거리에 있어서 금방 도착했다.
“잠시만.”
이건이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 한태경이 얼른 막으며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보조석으로 달려와 문을 열어 주었다.
“나 이제 깁스 없으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한번 다리를 다치면 또 다칠 가능성이 커. 게다가 깁스만 풀었지 아직 다리에 힘이 없을 테니 조금은 도움을 받아.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이 녀석이 이렇게 논리적인 말을 하면, 이길 수가 없다니까. 이건은 한태경을 이기려는 생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녀석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아직 두 다리로 멀쩡히 서는 것이 확실히 낯설긴 했다. 그래도 깁스한 세월보다 안 한 세월이 더 기니 얼른 적응해서 맘껏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가라. 계단은 내가 올라갈 수 있어. 재활한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올라가 볼게.”
건물 앞에서 이건은 한태경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한태경이 한 고집을 한다면 이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더는 양보할 의사가 없어 보여 한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올라가.”
“너도 운전 조심해라.”
“오늘 집에 갈 테니까. 외롭다고 울지 말고.”
“아 됐어. 이제 그만 네 집으로 좀 가.”
“내가 외로워서 그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