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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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고, 입을 연놈들은 자신들도 그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저 사람을 시켜 여러 번 전달해서 일을 맡은 것뿐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번에 잡힌 녀석들 모두 필리핀에서 살수 훈련을 받은 놈들이라고 합니다.”

그럴 것 같았다. 몸의 움직임이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과 완전히 달랐다. 한 번만 부딪혀도 그들이 충분히 훈련받고 온 녀석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서이건의 말대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제 나를 죽여서라도 데려가겠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팔다리 한두 개쯤은 날려 버려도 상관없다고 했겠지. 가장 필요한 건 정액일 테니. 정말 잡혀가면 종일 종마처럼 살겠어. 태경은 쯧 혀를 차며 이건이 있는 병실 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에게 위협을 가하고, 서이건을 건든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참, 기숙사 확인 좀 해주세요. 도청기나 감시 카메라가 있는 거 아닌지.”

“수상한 점이 있었습니까?”

“내가 옥상에 올라간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더군요. 기숙사 CCTV 해킹 여부도 확인해 보세요.”

“네.”

“그들의 굴을 알아봐요. 돈에 움직인 녀석들이니 역시나 돈에 움직일 확률이 높습니다. 잘 회유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회장님들께도 보고가 올라갔을 겁니다. 연락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두 분께는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한태경을 지키고 있는 이들 중에 부모님의 사람도 있기에 숨길 수는 없었다. 한태경은 한숨을 쉬며 서이건의 병실 앞에서 아버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을 걱정했고, 지금 당장 병원에 오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말렸다. 어차피 늦은 시간이고 이미 일은 다 마무리되었으니 굳이 오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다. 서이건이 다쳤지만 그건 치료를 잘했고, 내일이면 퇴원할 거라는 것까지 다 보고드리고 안심시켰다. 아니 어떻게 안심이 될까. 아들이 거의 10명의 괴한에게 당해 죽을 뻔했는데. 두 분은 아마 그것을 보고 듣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셨을 것이다.

[기숙사를 당분간 나와 있는 게 좋겠구나.]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발전 훈련 때문에 본가에 들어갈 순 없어요,”

[만약을 대비해서 너희 학교 앞에 빌딩을 하나 사놨다. 현재 너희들을 지켜주고 있는 경호원들이 그곳에서 살며 교대로 움직이고 있다. 약 5층에서 15층까지이고 1층에서 5층은 상가라 현재 비워둔 상태다. 대신 누구도 출입할 수 없게 막아 두었고, 대문에서부터 지문과 홍채로 인식한 다음 승인받은 사람만 문이 열려 건물 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 CCTV 등 누군가 접근하면 바로 경보음이 울리게 해 두었다. 너희들은 10층을 쓰도록 해. 그 외의 층은 모두 경호원들이 있을 거다. 경호원의 신원은 걱정하지 마라. 모두 몇 번에 걸쳐 확인해 놓았으니까.]

“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중에 이건이랑 같이 상의해 보겠습니다.”

[너희들이 한창 올림픽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좋지 않다. 부디 네가 오래 꿈꾸던 꿈을 손에 넣기를 바라는데….]

한태석이 안타까운 듯 이야기했다. 강인하신 분이 자신의 일만 되면 이렇게 나약해지셔서 큰일이라고 태경은 생각했다.

“꼭 국가대표가 돼서 올림픽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열심히 서포트하마. 그러니 무슨 일이 있다면 꼭 연락해.]

“네.”

전화를 끊고 태경은 다시 한번 이건이 잠든 병실에 들어가 침대 옆에 앉았다. 나 때문에 네 꿈마저 망칠까 두렵다. 너를 오피스텔에 함께 데려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너 혼자 기숙사에 있고 학교에서 생활한다면 그들이 너에 관한 관심은 놓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내 욕심이다.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미안.”

한태경은 잠은 이건의 손등을 쓰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말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와 미쳤다.”

서이건은 한태경의 경호원들이 내려놓는 도구(?)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퇴원하자마자 기숙사에 왔더니 가구고 뭐고 뒤집혀 있어서 그사이에 도둑 들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경호원들이 태경의 명령을 받고 도청기나 감시 카메라가 없는지 확인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태경의 의심은 맞았다. 정말 도청기와 감시 카메라가 있었다. 그 말은 즉 두 사람이 없을 때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이야기였고, 복도에 있는 CCTV 확인 결과 중간에 잘린 수상한 부분이 있었다. 태경은 사람을 시켜 해킹 여부를 확인했고, 역시나 CCTV도 조작된 것을 확인하여 모두 다 끊어 버렸다. 그것을 보니 소름이 안 돋을 수가 없었다. 기숙사에 편히 잠을 못 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건은 태경이 퇴원하면서 이야기했던 오피스텔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서둘러, 짐을 옮기고 학교 앞 몇 달 전에 지은 신축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태경은 이 건물이 자신의 부모님이 위험할 때를 대비해 마련해 두신 거라고 했고, 각 층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 주었다.

“여기야.”

이건과 태경이 머물게 될 오피스텔은 약 35평으로 한 층에 두 개밖에 없는 아파트형이었다. 게다가 풀 옵션에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TV나 집값이 올랐다는 뉴스에서만 보던 정말 이건에게 있어 꿈의 공간 중 하나였다. 심지어 필요한 가구까지 다 들어가 있어서 오히려 기숙사보다 훨씬 좋았다.

“와. 좋다.”

“여기 큰 방은 네가 써.”

태경이 먼저 큰방을 이건에게 양보해 주었다. 큰방에는 퀸사이즈 침대와 벽걸이 TV가 있었고, 욕조가 딸린 화장실 하나와 옷 방까지 따로 있었다.

“아니, 괜찮아. 나 이렇게 크면 잠 잘 못 잘 것 같다. 작은 방 내가 쓸게.”

그렇다고 해서 작은방이 작은가? 그것도 아니었다. 거기도 퀸사이즈 침대가 넉넉하게 들어가 있고 화장실이 없다뿐이지 옷 방이 있어서 그다지 큰방과 차이점이 없었다. 게다가 테라스도 딸려 있었고. 설마 10층인데 그 바퀴벌레들이 벽을 타고 기어 오겠어. 이제 테라스 문을 열고 자도 되겠지.

이건은 얼른 태경이 붙잡기 전에 작은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옷 몇 벌과 책 몇 권이 다인 조촐한 짐이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방이 생긴 것 같아서 뿌듯했다가 붕대 감긴 자신의 머리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집 좋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곳에 왜 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오니 경호실장이 왔다. 거실에서 태경과 함께 셋이 앉아서 앞으로의 행동 지침(?)에 관해 설명과 보고를 받았다.

“앞으로 두 분은 저희가 모시고 다닐 겁니다. 학교로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차로 모실 거고, 훈련받으시는 동안에는 주위에서 저희가 지킬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학교에 이미 허락을 받았고, 가능한 한 훈련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불편하시겠지만 외식은 삼가세요. 가능하면 이곳에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에도 어떤 장난을 칠지 모르니까요. 요리해줄 분은 대표님께서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 머리가 깨졌지만 그래도 아직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불편하다고 여겨지는데 한태경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기고, 미래 유망주라 뭐 저런 인생을 사는 놈이 다 있나 생각했었는데 역시 알지 못하면 입 닥치고 있어야 한다.

“불편하겠지만 앞으로 더 붙어 있어야 해.”

경호실장님이 나가시고 한태경이 이건에게 말했다.

“새삼스럽게. 만날 24시간 붙어 있었다. 여기서 뭐 더 어떻게 붙어 있어? 침대에서 끌어안고 자야 하나.”

이건이 별거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며 농담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은 침대 쓸까? 안 그래도 큰방 침대 너무 넓게 느껴지는데.”

“나 잠버릇 안 좋아서 안 돼. 가끔 나 기숙사 침대에서 떨어지는 거 봤잖아.”

“그건 침대가 작은 거였잖아.”

“하긴 이제 와 말하는 건데 거기서 어떻게 남자들을 자라고 한 건지 모르겠어. 자고 일어나면 항상 허리가 아팠는데 이제 안 아프겠다.”

그 침대보다 여기 거실 소파가 더 편하다며 이건이 한태경의 무릎을 베고 벌러덩 누웠다. 갑작스러운 이건의 행동에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대신 이건의 상처를 피해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 주었고 이건은 눈을 감았다.

“아프지 않아?”

“어, 전혀. 의사 선생님 실력 좋으신가 봐. 역시 네 주치의.”

“다행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좋은 상황에서 이렇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은 도망치기 위해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이건에게 미안했다. 결국, 셀프 감금 생활을 해야 하니 말이다.

“빨리 해결할게. 적어도 올림픽 선발전까진.”

태경의 말에 이건이 눈을 뜨고 태경을 바라보았다. 올곧은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다치면 아무 소용 없어. 지금 이대로가 나은 거면 그냥 이대로 선발전까지, 아니 올림픽까지 지내다가 그 후에 처리하자. 나도 도와줄게,”

“아니, 이건 내가 해결할 거야. 더는 널 다치게 할 수 없어.”

“야 그런 놈들을 어떻게 상대한다는 거야. 그리고 경호원 형들에게 들었는데 그 수보다 더 많다며?”

“언제 들은 거야?”

“이사하면서 물어봤지. 경호원들도 걱정하더라. 그런데 혼자 어떻게 하겠다고.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이 시점에 나도 도울 수 있으면 도울게. 그리고 이번엔 처음이라 다친 거야. 이젠 안 다쳐.”

“약속해. 절대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건이 손을 들어 선서처럼 이야기하더니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밝고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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