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그냥 진작 따라오면 되잖습니까. 사람 피곤하게 왜 이러십니까?”한국인? 검은 후드라서 전부 그 외국인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지? 경호원들은? 저 사람들은 괜찮은 거야?”
“아아 죽이지 않았으니 안심하십쇼. 그런데 지금 한태경 씨는 저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본인 걱정을 해야지. 이제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 안 됩니까?”
“하아….”
어지럽다. 무슨 약인지 모르겠지만, 몸을 나른하게 하는 성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아닌지 태경에겐 약물이 잘 듣지 않았다. 해독하는 능력이 너무 빠르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된다 싶어서 태경은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는 거지? 설마 여기서 자위 쇼라도 하게 하려고? 아니면 다른 곳에 끌고 갈 심산인가?”
“하하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네. 그런데 반은 맞습니다. 지금 우리 대표님이 진짜 엄청나게 한태경 씨의 정자를 가지고 싶어 하거든요. 뭐 여기서 1차 자위 쇼를 하고 난 후에 저기 행복한 파라다이스로 데려가겠습니다. 그 파라다이스에 지금 수백 명의 오메가가 한태경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야.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모든 오메가를 다 갖다 바칠 수 있습니다.”
“개소리를….”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방금 내 목에 맞은 약은 뭐지?”
“그냥 프로포폴입니다. 아주 소량만 넣었죠. 파라다이스 가기 전에 필수 아닙니까?”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지 않는다. 한태경은 손가락 끝을 움직여 보았다.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눈앞에 재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자신만만한 검은색 후드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게 어떤 신호인지 모르는 검은색 후드는 마지막 발악이냐며 비웃었고 한태경은 그 후드를 끌어당겨 바로 엎어치기를 했다. 벽 쪽으로 날려 버렸더니 벤치에 떨어진 몸이 꽤 아픈지 남자가 끙끙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잡으라고 소리 질렀고, 다른 검은 후드들이 주춤거리더니 이내 자신들이 끌고 온 의식 없는 경호원들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움직이면 이 경호원들 한 명씩 목을 그어 버리겠다.”
미치겠군. 이건 정말 방법이 없다. 지금 세 명의 목숨이 걸려 있다. 자신이 한 명을 구한다고 해도 두 명의 생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까 주저앉아 있을 때 시계로 신호를 보냈지만 가까이에 있던 놈들은 이미 다 잡힌 것 같고, 과연 언제 올지. 서이건은 무사한지.
“그러니까 말했잖습니까. 그냥 얌전히 따라오라고요.”
던져졌던 놈이 입만 살아서는 한태경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온다.
“좋아, 너희들을 따라가지. 그러니 저 사람들은 놔줘.”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신단다. 두 명은 처리하고, 한 명은 살려놔.”
그 말에 태경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미 두 명의 목을 그어 죽여 버렸고, 한 명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였다.
“저 한 명은 저희 보험입니다.”
“젠장!”
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정말 끝에 끝까지 몰린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빠른 판단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마찬가지고 저 경호원도 위험해질 것이다. 둘 다 살아나갈 수 없다면 저 사람이라도 살려야 한다.
“한태경 씨, 지금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립니다.”
“당신 같으면 머리 안 굴리겠어?”
“하하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머리 굴릴 만큼 여유롭다는 소리라서 좀 기분 나쁩니다.”
“됐고 저 사람은 살려.”
“네, 살릴 겁니다. 그래야 당신이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참에 보험도 들어 두고요.”
남자가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검은 후드가 다가와 태경의 허벅지에 주삿바늘을 꽂는다. 아까보다 훨씬 양이 많았다. 버티려고 했지만 버틸 수가 없다. 앞이 점점 까매지고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의식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정말 깨어났을 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된다. 무엇보다 지금 이건이 여기에 온다면… 그마저 큰일을 당할 것 같았다. 오지 말라고 해야 한다. 오지 말라고… 제발 서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