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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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하던 재우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쯧 혀를 찼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임신 이야기를 한 걸까요.”

“임신? 누가 임신했어?”

재우의 말에 김 사범이 놀라서 물었다.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어?”

서이건의 질문에 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서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밖에 누가 있을지 모르니.”

“그래서 누가 임신한 건데?”

“강유한이요. 아까 와서 대뜸 작은아버지에게 임신했다고 이야기하고 갔어요.”

“재경 씨, 정말이야?”

한태석이 놀라 재경에게 물었다. 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가득 있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 확인까지 했어요.”

강유한이 언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리고 그가 임신했을 시기에 대한 추측까지 생각했던 것을 모두 한태석과 김 사범에게 이야기했고 그들 역시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이거 안 좋은데.”

“그렇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한태석과 김 사범의 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신이 어떻게 되었냐는 제쳐 두고. 그 의미랑 뜻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뜻이고, 한태경이 죽어도 그 바퀴벌레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적통 후계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쇼한 거라고 생각해도 돼. 하나라도 놓칠 생각이 없다는 거지.”

“그렇다면 태경이가 위험한 거 아닙니까?”

“맞아. 지금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

“그래야겠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김 사범을 보며 이건은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지금 이대로면 민폐만 될 것이다. 젠장. 이건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이건에게 재경이 다가와 어깨를 도닥였다.

“무사히 잘 올 거예요. 괜찮아요.”

그도 같은 심정이겠지. 당장 아들을 구하러 달려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위치라 그저 지켜볼 수 없는… 아마 이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럼 저를 아버님 보디가드로 삼아 주세요. 제가 다리는 이래도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그가 해주는 위로를 감사히 받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건의 제안에 재경은 살짝 놀라더니 이내 웃으며 그렇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날 밤, 김 사범님과 한태석은 용병들을 데리고 한태경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긴 밤의 시작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마치 선배들에게 끌려가 소주 열 병 마신 그다음 날 같은 고통이었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두통약이라도 달라고 해야 하나? 이건은 무거운 몸과 머리를 깨우며 눈을 떴다.

“안녕, 이건아.”

눈앞에는 믿을 수 없게도 강유한이 있었다.

“선… 배…?”

병원에 다시 온 건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엔 바닥이 너무 차고 곰팡내가 났다. 여긴 병원이 아니다. 이건은 몸을 벌떡 일으키려고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몸이 왜 이런지 고개를 아래로 내려보니 온몸이 의자에 꽁꽁 묶인 상태였다. 그리고 역시나 불이 켜진 그곳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크기로 보아 컨테이너 같았다. 꿈을 꾸는 건가?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히 김 사범님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박재경과 이야기하다가 약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여기 어디예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요?”

이건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강유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할 줄 아네. 언제나 다정하게 미소 짓던 녀석이.”

강유한이 이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 어디야? 그리고 재경 님은 어떻게 했어요?!”

“아버님은 무사해. 죽일까 고민도 했는데 그래도 잘해주신 분이고, 내 아이에겐 할아버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분은 손자 무척 예뻐해 줄 것 같지 않아? 하늘의 별도 따주려고 하실 분이야. 그래서 살려놨어. 네가 있던 침대에 잘 눕혀 놓았지.”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