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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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진지한 얼굴이지? 목이 마른 것이 잊힐 정도로 한태경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진지했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이건은 티셔츠를 입고 자세를 바로 했다.

“무슨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한 전무님이 바닥이면 제가 불편하니 옆에 앉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건의 말에 한태경이 살짝 웃더니 약통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옆에 앉았다.

“서이건 씨, 아마 오늘 밤부터 많이 아플 겁니다.”

“감기 때문에요?”

“아니요. 러트 때문입니다.”

“러트…?”

러트가 아픈 거던가? 이건은 순간 그간 러트를 겪었을 때를 생각했다. 아무리 열이 오르고 흥분이 되어도 감기만큼 아프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올 러트는 평소의 러트와 다를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한태경은 이건의 목 뒤를 톡톡 쳤다. 갑자기 닿은 그의 손가락에 깜짝 놀라 이건이 목 뒤를 손으로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주차장에서 바퀴벌레들이 덤빌 때 기억 안 납니까? 나 대신 그들의 주사를 맞은 거.”

한태경의 말에 이건은 멍하니 그때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에 이건은 ‘아!’ 하고 말했다.

“그때의 약은 러트 유발제입니다.”

“러트 유발제요?”

“네, 그것도 상당히 효과가 센… 특이체질인 저의 러트를 끌어내기 위해 제조한 특수한 러트 유발제입니다.”

“아….”

생각도 못 했다. 러트 유발제라니.

“잠시만요. 바로 효과가 나오는 거 아닙니까?”

“네, 맞고 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럼 지금 며칠이나 지났는데…?”

“상처 치료를 위해서 러트 억제제를 투약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임시방편으로 세 번 정도밖에 쓸 수가 없었고, 서이건 씨가 치료받는 동안 그 세 번의 기회를 다 쓴 상태였습니다. 이제 억제제의 효능이 떨어질 때라 러트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억제제는 소용이 없다는 거군요. 그럼… 그 약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냥 러트가 오면 러트가 오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거나.”

“일단은 싸구려로 제조하여 아무런 임상시험을 않은 약입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일반 유발제보다 몇십 배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일반 알파가 맞은 기록이 없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맞아본 저로선 정말 아프고 이성을 잃을 만큼 괴물이 된다는 겁니다.”

한태경의 말에 이건은 순간 머릿속을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성을 잃은 괴물… 주사… 알파… 모든 조각이 하나로 모여지자 어떤 것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오래전 그 날… 한태경이 자신을 강제로 안았고 몸을 강제로 벌리고 노팅했을 때. 바로 그 날… 그 증상이 일어난 것은 한태경이 바퀴벌레들에게 약을 주입 받았을 때였다.

“설마… 설마!”

“네?”

이건이 이를 악물고 한태경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그 약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정말 큰일 날뻔했다. 그 날의 일을 다 안다는 것처럼 말을 해버리면 안 되니까.

“그, 그런 약을 먹었다고 죽는 건 아, 아니겠지?”

얼른 말을 돌렸다. 그래, 그저 말을 돌리기 위한 말이었는데 한태경의 표정이 사뭇 아까보다 진지해졌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일반 알파가 그 약을 투약한 기록이 없으므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병원에서 약물을 제조해준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 약을 쓰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까지 서이건에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를 불안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저는 몸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혼자 견딘 겁니까?”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