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문을 닫을 시간에 도착하긴 했지만 NI가 운영하고 있는 백화점이라 그들은 한태경이 오기를 기다렸고, 그가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어주었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미안해요. 강 점장님. 여기 밖에 올 때가 없었어요.”
“아닙니다. 전무님이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야 영광이죠.”
“지금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는 100% 상여금을 주도록 하세요. 오늘 바로 지급하는 걸로요.”
“네, 알겠습니다. 룸을 준비할까요?”
“아니요. 매장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한태경은 마주치는 직원 한 명씩 인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건의 마음은 복잡했다. 굳이 많은 사람 번거롭게 하고, 돈까지 써가며 자신의 옷을 사러 올 필요는 없었는데…. 하지만 한태경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사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그는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정말 예전 한태경이었다면 당장 목을 졸라서 그냥 가자고 붙잡았겠지만….
“서이건 씨.”
“아, 네.”
정말 비싸기로 유명한 양복 매장에 도착했다. 백화점 안에 다로 매장이 분리되어있는 것도 모자라 그 만의 인테리어가 빛나는 곳이었다. 정말 부담스러웠다.
“그런 표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담가지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이놈아. 너 같으면 부담 안 가지겠냐.
“서이건 씨가 골라주면 오늘 날 지키느라 애쓴 모든 경호원들에게 다 선물하겠습니다.”
“네?”
이건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불어 한태경의 옆에 서 서 있던 매장 직원들도 깜짝 놀라 한태경과 서이건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서이건 씨에게만 사줄 줄 알았습니까? 난 특별취급하지 않아요.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골라요.”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더불어 등 뒤에 다른 경호원들의 눈이 반짝이며 이건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안 고를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 젠장. 이건은 자신의 옆에 딱 붙은 매장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가장 무난한 것으로 고르긴 했지만, 한태경에게 기각당하고 결국 그가 골라준 옷을 받아야 했다. 한태경은 바로 그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했고, 입고 있던 양복은 직원에게 부탁해 버려버렸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이건의 정장은 그렇게 안녕을 고했다. 한태경은 그날 그 매장의 1년 치 매상을 한 시간 만에 이뤄주었다.
“피곤해.”
이건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오랜만에 온 집에 온기도 없고 생활감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집은 집이라고 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닥에 거실 바닥에 누워 엎어진 종이가방을 보았다. 정말 평생 한 번 입어 볼까 말까 한… 아니,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었던 브랜드 옷을 덥석 받다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아, 맞다.”
입고 오는 바람에 구겨지면 큰일 나지. 이건은 벌떡 일어나 재킷과 바지를 곱게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비싼 거라 그런가? 확실히 옷 자체는 번쩍번쩍해서 고급스러운 테가 낫다. 이건은 옷을 한번 슬쩍 쓸었다. 문득 아까 호텔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보아하니 강유한과 한태경은 함께 발정기를 보낸 것 같지 않았다. 대체 왜일까. 약혼했다고는 하지만 한태경의 태도를 보면 정말 남보다 못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강유한과 약혼을 한 걸까? 이 의문은 아마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 풀리지 않을 테지. 그리고 만약 물어본다면 또 의심할 것이 뻔하니 묻지 않는 것이 답이다. 그리고 한태경에게 자신이 물어볼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괜한 오지랖 소리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
“생각하지 말자.”
그래 지금은 한태경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자. 이건은 옷을 걸어 두고 욕실에서 오랜만에 몸을 푹 담그고 씻은 뒤 침실로 들어가니 핸드폰에 재우로부터 부재중 통화가 들어와 있었다. 이건은 혹시 태경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얼른 재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재우야. 전화했던데 미안해. 씻느라고 전화 못 받았어.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오늘 숙제 잘했나 싶어서요. 많이 힘들었죠? 아까 태경 형이랑 통화했거든요.]
“아… 내가 힘들 게 있나. 태경이가 걱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