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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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우.

이름을 듣자마자 뭔가 머릿속에서 바삭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멍하니 내민 손을 보았다. 미인보다는 미남상을 하는 젠틀한 얼굴과 반듯한 인상. 그리고 누군가가 생각나게 하는 미소.

이건이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기다리게 하고 있는데도 남자는 다정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네.”

이건은 그의 손을 잡았다.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던 듯 한재우는 이건이 자신이 내민 손을 받아 주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입니다.”

“정말 많이 컸다. 몰라보겠어.”

딱 하루, 심지어 딱 한 번 만났음에도 인상에 남아 있었다. 큰일을 당했음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잔뜩 품고 있어서였을까. 쉽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괜찮고?”

“언제적 일인가요. 저는 괜찮습니다. 건강해요. 그나저나 서이건 선수는 그대로네요. 제가 만났던 그 어떤 알파들보다 멋집니다. 늦었지만 금메달 축하드려요.”

“…고맙다. 그리고 나 이제 선수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하하. 네, 형.”

이런 붙임성도 좋았고, 활짝 웃는 미소도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아직 긍정적인 에너지를 잔뜩 품고 있는 것 보니 다행히 ‘그의 인생은 평탄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 아픔이 두 번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앉아.”

“네.”

이건이 먼저 자리에 앉고 테이블 위에 순대 봉지를 올렸다. 사범은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이런 걸 놔둘 순 없다며 봉지를 들고 커피를 타러 갔고 이건은 재우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을까. 물어봐도 될까?”

“당연하죠. 여기엔 의뢰인으로 왔습니다.”

“의뢰인?”

“네.”

“무슨 의뢰를 하려고? 보다시피 여긴 나밖에 없는 사설 경호원 고용 사무실이야. 내가 알기론 너는….”

'그 녀석과 같은 NI 총수 가의 일원이잖아' 라는 말을 하려다 이건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이건이 입술을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리자 재우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인지 알 것 같아서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네, NI의 사람이죠. 경호원이라면 이미 내부에 있고, 원한다면 큰 회사의 경호원도, 해외의 용병도 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이어야 합니다.”

“왜?”

“…유명하고 사람들의 얼굴을 다 알고 있는 경호원이 필요하거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만약 얼굴마담이 필요한 거라면 거절할게. 미안. 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단순한 얼굴마담이 아닙니다.”

“얼굴마담이 필요하다는 거네.”

이건은 더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손님인데 이렇게 보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칼같이 끊어야 하는 의뢰인 것은 맞는 것 같으니 그냥 여기에서 그 정도만 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반가운 얼굴도 아니고.

“형이!”

‘형’ 그건 이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재우의 진짜 ‘형’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형이… 위험합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놀라울 정도로 답은 빨리 나왔다. 그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한재우의 ‘형’이 위험하든지 말든지.

“진 사범! 손님 나가신대요.”

“태경이 형이! 사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연락 못 한 겁니다!!”

진 사범에게 손님 갈 테니까 커피 필요 없다고 말을 하려다가 한재우가 한 말에 이건이 움직임을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천천히 뒤를 돌아 한재우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여유 있게 웃고 있던 얼굴이 괴로운 얼굴로 바뀌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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