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파악할 시간도 없었다. 놀라는 것조차 사치였다.“한태경, 숙여”
이건은 얼른 한태경을 붙잡아 고개를 숙였다. 본능에 가까운 빠른 움직임이었다. 제길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은 얼른 무전을 연결했지만, 무전의 연결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전화기도 마찬가지였다. 통신이 터지지 않았다. NI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서도 터진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젠장.”
이거 훈련은 아니겠지? 제발 훈련이었으면 좋겠는데.
이쯤 되면 김 사범님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저기 CCTV는 어떻게 된 거지? 이 바퀴벌레들이 이렇게 대범하게 나왔다는 것은 필시 어떤 장난을 쳐도 쳐놨을 것이다. 그냥 대책 없이 이렇게 덤비지는 않을 테니 이건은 마른 침을 삼켰다.
“시발! 왜 전화가 안 돼!”
기사가 소리쳤다. 아무래도 열심히 전화를 건 모양이지만 당연히 전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님, 문 열면 안 됩니다. 그리고 머리 숙이세요. 다시 총을 쏠지도 모릅니다!”
“으아악!”
이건이 이야기도 하기 전에 갑자기 차 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단말마가 들렸다. 그 소리는 도망치는 소리도, 그렇다고 안심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비명이었다. 이건은 곧 기사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차 안을 둘러보았다. 차 유리문을 깼다. 방탄인데도 총알이 통과했고, 차 유리문을 쉽게 깼다는 것은 이 새끼들 확실하게 준비해왔다는 거다. 이건은 이 차 안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그들이 차를 포위하고 있다면? 이건은 슬쩍 고개를 들어 상황을 바라보았다. 왜 바로 공격해오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차 밖에선 지금 주차장을 지키고 있던 다른 경호원들이 검은 후드티를 입고 있는 바퀴벌레들과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일까. 한태경 자리 쪽을 보니 다행히 그쪽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한태경, 내가 먼저 나갈게. 그러니 너는 신호를 받으면 나와.”
이건의 말에 한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태경과 자리 체인지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저 멀리서 비명과 칼에 찔리는 소리, 그리고 발차는 소리와 넘어지는 소리까지 리얼하게 들려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죽을 거라는 공포보다는 한태경을 지키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이건이 먼저 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때 차 밑에서 손이 나와 이건을 붙잡았고, 이건은 얼른 한태경이 나오기 전에 차 문을 닫았다. 타이밍 좋게 그때 차 밑에 있던 바퀴벌레가 칼을 휘둘러 조금만 늦었어도 한태경이 나오면서 칼에 베일 뻔했다. 이건은 바닥에 누운 채로 잡히지 않은 다른 발로 남자의 머리를 세게 걷어찼다. 남자의 눈이 구둣발에 찍혀 ‘으악!’ 비명을 지르며 잠깐 손에 힘이 빠지자 얼른 나머지 발을 뺀 다음 벌레의 양팔을 잡고 꺼내 칼을 뺏고 팔을 그대로 찍어 부숴 버린 후 남자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손에 쥔 칼을 보며 이건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쿵쿵쿵 시끄럽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차에 비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검은색 인영이 보였다. 이건은 칼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칼을 들고 이건에게 덤벼들 때 이건은 자신을 쥐고 있던 칼로 남자의 몸에 그대로 쑤셔 박았다. 처음으로 사람의 몸을 칼로 찔렀다. 처음이었다. 절대 자신은 이런 감각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살려면… 지키려면 어쩔 수 없지. 남자가 몸을 비틀거리자 칼을 뽑고 그대로 그 남자의 손목을 쳐서 그 남자의 칼도 뺏었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이건을 노려보았다. 아마 죽여야겠지. 이건이 남자의 목을 그어 버리려던 순간에 총소리와 함께 남자의 관자놀이가 뚫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태경이 차에서 내려 총을 쏘았다.
“너, 왜 나와?! 들어가 있어!!”
“아까 말했잖아. 차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지만은 않다고.”
한태경이 총을 다시 한번 조준하고 불리하게 밀리고 있는 자신들의 경호원들을 위해 지원사격을 했다. 그리고 그 솜씨는 백발백중이었다.
뭐야 이 새끼. 언제부터 사격도 잘했어? 물어보려 하기도 전에 갑자기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던 차들 문이 열리면서 검은 후드티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은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어떻게? 이들이 이렇게 침투할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내린 이들 중 몇 명이 총을 들자 이건은 얼른 한태경을 데리고 몸을 숙였다. 다행히 오른편엔 다른 벌레들이 생길만한 차가 보이진 않았지만 도망갈 구석도 없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들은 모두 소음기를 달고 총을 쏘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리가 나가면 안 되니까. 무차별적인 난사는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것은 그들이었다. 누군가가 눈치채도 챘을 시간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피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것 또한 자살 행위다. 이건은 슬쩍 고개를 들어 다른 경호원들을 보았다. 이미 상당수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남은 이들은 두세 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무척 지쳐 보였다. 저대로 죽도록 둘 순 없었다. 그렇다고 한태경을 놔두고 갈 수도 없다. 그렇다는 건 최대한 그들을 공격하는 이들의 수를 줄여 주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