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경을 만나고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뭐 이런 오지랖 넓은 놈이 다 있나 생각했고, 조건 없이 퍼주는 그 다정함이 부담스러웠을 때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분명 뭔가를 원할 것이라 생각하며 만날 때 늘 긴장했다. 그러나 점점 그와 지낼수록 그의 행동과 말, 모든 것이 진심이었고, 그는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부딪히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태경은 보폭을 한걸음 줄여서 조금씩 맞춰나갔다. 단 한 번도 서이건에게 맞추라고 한 적이 없었고 그런 뜻을 은연중에 내비친 적도 없었다. 모두 한태경 스스로 움직였고, 그러다 보니 싸운 적은 거의 없었다. 싸워도 아주 사소한 것이었고, 그 역시도 모두 한태경이 먼저 사과를 하고 다가와 주었다. 혹시나 자신이 버림받을까 걱정하는 눈으로.그럴 때마다 어이가 없었다. 이 남자는 왜 자신에게 매달리는 걸까. 이럴 시간에 예쁜 오메가에게 정성을 다한다면 줄을 설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태경의 사과를 받아 주며 그가 자신의 옆에 서는 것에 우월감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알파 중에서 상위인 그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 금안의 눈동자도, 홍안의 눈동자도 모두. 자신만을.
“하….”
키스하며 간간이 눈을 뜨고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금안이 서서히 붉은색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올곧은 눈동자는 단 한 명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잡아먹을 것 같이 갈구하던 키스가 끝나고 혀끝으로 이어진 투명한 실이 아슬아슬 연결되어 있을 때 두 사람은 가만히 숨소리만 교환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이건이 먼저 한태경의 목덜미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방금까지의 키스는 한태경이 리드를 했다면 이번에는 서이건이 리드를 했다. 입 안에 혀를 넣고 빨면서 한태경의 셔츠를 벗겼다. 한태경은 가만히 서이건이 하는 대로 있었다. 그가 리드를 한다는 것은 그 역시 자신과 몸을 섞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고 받아 주었다는 뜻이니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은 초조하고 빨리 그를 안고 싶었지만, 지금은 자제해야 했다. 처음 서이건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이 집에 오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고 그때 걸었던 보폭을 생각해서 맞춰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 남자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서이건도 알파다. 그의 리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빼앗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툭툭 단추를 열다 답답해졌는지 이내 뜯다시피 벌렸고, 단추가 헐렁하게 뜯겨 나갔지만 한태경은 상관없었다. 그가 더 옷을 잘 벗길 수 있도록 몸을 바짝 붙였고, 완전히 셔츠가 벌어지나 한태경의 보기 좋은 복근이 보였다. 한태경은 천천히 서이건을 소파에 눕히며 셔츠를 완전히 벗어 바닥에 던지듯 놔두었다. 키스가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던가. 정말 섹스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쾌감을 키스로 느끼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러트가 심해지면서 페로몬의 농도가 짙어지자 한태경의 페로몬도 그와 같은 농도를 맞추고 서이건의 페로몬과 융화되도록 섞었다. 절대 그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길고 긴 키스가 끝나고 두 사람은 각자의 얼굴을 보았다. 고작 키스뿐인데 벌써 섹스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이건은 웃으며 자신의 소매로 한태경의 얼굴에 묻은 자신의 타액을 벅벅 닦았다. 이 남자랑 키스를 하게 될 줄이야. 하.
“왜 그렇게 웃어?”
한태경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서이건에게 물었다.
“갑자기 현타가 와서.”
“현타?”
“너랑 키스하게 될 줄이야.”
한태경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이건의 뺨에 입을 맞췄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염원하던 건데.”
“오랫동안? 고딩때?”
“아니, 그보다 더 어릴 때. 너랑 만나기 전에. TV에서 널 보면서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뭐? 와, 이거 무서운 놈이었네.”
“내가 생각해도 좀 소름 돋긴 하는데. 어쩔 수 없었어. 내 세상은 온통 서이건 뿐이었으니 키스도 섹스도 다 너랑 하고 싶었지.”
“보통 그때쯤이면 사춘기가 와서 뭐랄까. 오메가에 더 흥미가 가지 않나?”
“오메가, 알파. 그것 다 상관없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릴 적에 찾았으니 흥미가 가지 않지.”
“그 말은 날 가지고 자위도 해봤다는 듯 들린다?”
서이건이 장난치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곧 한태경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그게 장난이 아님을 알았다. 한태경은 곧 헛기침을 했고, 서이건 역시 외면하며 하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