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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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경이 집에 가질 않는다.

“흠….”

앞치마를 입고 부엌에 서서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덩치 커다란 남자를 보며 서이건은 소파에 앉아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물론 다리가 이 상태라 한태경이 있어 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점점 옥탑방에 늘어나는 한태경의 물건과 생활감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서이건.”

한태경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언제 요리를 한 건지 맛있어 보이는 스파게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

이건이 멍하니 대답하자 한태경은 한숨을 쉬며 스파게티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곤 다가와 이건의 이마를 탁 쳤다.

“또, 또 쓸데없는 생각하지.”

“누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그래.”

“너 쓸데없는 생각하면 멍해지는 거 몰라?”

어, 몰랐다.

“아무 생각 하지 말라고 했지.”

“아니, 나도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은데….”

“생각하려거든 먹으면서 해. 식탁으로 옮겨 줄까?”

“아, 아니. 그냥 여기서 먹을게.”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이건이 스파게티 면을 휘적였다. 그날 이후 이 집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고등학생 때 이후 이렇게 오래 이 집에 있어 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한태경이 이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이야기고 24시간 붙어 있었다. 병원에 갈 때조차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태경은 단 한 번도 배달 음식을 시킨 적이 없었다. 전부 손수 만들어서 이건에게 내밀었고, 맛은 이미 말할 필요도 없어서 정말 이러다가 입맛마저 한태경이 만든 요리에 익숙해질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맛없어?”

“아니, 맛있어.”

한태경은 이건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 다섯 숟가락 정도 이건이 먹어야 그 이후 한태경도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보는 게 좋아서.’라고 말하는 바람에 이건은 소름이 돋았다. ‘너, 어디 아파?’라고 묻기에는 한태경은 원래 그런 녀석이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음….”

말할까. 말하는 게 낫겠지?

“너… 출근 안 하냐? 아니, 그보다 집에 안가?”

이건의 질문에 한태경의 포크 움직임이 멈췄다.

“흠. 내가 귀찮아?”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나야 너무 편하고 좋지. 그런데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니까.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아직 일이 정리 중이야.”

“김 사범님은 정리됐다고 했잖아.”

“큰 먼지는 털었지. 자잘하게 연류 되어 있는 것들은 아직 처리 중이라서. 움직이기엔 이른 것 같아서 출근은 하지 않고 있고, 집에 가지 않는 건 조만간 그 빌라 처분 예정이라서.”

“어? 왜?”

“애초에 그 빌라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거 다 보니 지나치게 폐쇄적이야. 솔직히 난 답답한 거 싫거든.”

“그래서 본가로 다시 들어가려고?”

“그러면 좋을 것 같긴 한데 큰아버지가 반대하실 게 뻔해서. 아마 그 맞은편 집으로 이사할 것 같아.”

“어? 맞은편 집이라면 그 임시 사무실로 쓰던 거기?”

“어. 그래서 지금 그쪽으로 짐을 옮기는 중이야.”

“이사 중이라고?”

“그래. 일은 뭐… 재우가 하고 있기도 하고, 나도 나름대로 큰일은 처리하고 있긴 한데. 일단 앞서 말했다시피. 아직 정리가 덜 된 부분이 있어서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이건의 말에 한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랠 놀 자다. 여기에 있으면서 자신처럼 빈둥거리는 줄 알았더니 일은 다 해놓고 있었잖아. 이러면 또 할 말이 없는데.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