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계단 아래에는 한태경이 서 있었다.
“끝났어?”
“응.”
얼굴을 보아하니 이겼네. 그런데 왠지 분한걸. 이렇게 일찍 끝낼 줄이야.
“이제 너와 내 차례야.”
한태경의 얼굴이 신나 보였다. 그리고 그건 서이건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려, 딱 5분만 쉬고 올 테니까.”
“그래.”
이건과 태경은 서로의 주먹을 부딪치고 잠시 마련된 대기실에 들어가 각자 쉬었다.
“너희 둘 사이좋은 것 같다?”
진 사범이 이건에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그 말에 딱히 반박하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사이가 정말 급격히 좋아지긴 했으니까. 이건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한태경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니 무시할 재간이 있나.
“한태경이 장례식장에 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저도요.”
“난 좀 싸가지 없겠지 생각했는데 좋은 녀석 같다. 사이좋게 잘 지내봐. 어차피 같은 학교에 입학하게 됐잖냐.”
“네, 적어도 저 녀석이랑 주먹다짐하며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너에게도 저 녀석에게도 서로 자극이 되면 좋겠구나.”
이건도 그러길 바랐다. 5분 정도 쉬자 결승전을 준비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또 5분이 지나고, 드디어 경기장에 두 사람이 마주 섰다. 두 사람이 맞붙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도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선가는 한태경과 서이건을 응원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서로의 눈을 보고 나란히 섰을 때부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슬리는 세상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오직 시작을 알리는 신호만을 기다리며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태경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을 때, 경기 시작 신호가 울렸다.
한태경은 깔끔하고 단호했다. 그의 성격이 보이는 발차기였다. 그리고 한태경 역시 서이건의 발차기를 보며 그답다고 생각했다. 둘 다 서로의 경기하는 모습은 영상으로밖에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 부족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였다. 회피하는 기술, 발의 방향과 공격 자세. 찰나의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둘은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 강렬한 공기는 체육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느낄 정도였다. 사진을 찍던 기자들도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경기에 집중할 만큼…. 지켜보는 김태운과 진철운 사범들도 침을 꼴깍 삼켰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누구도 질 수 없고,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은 4라운드까지 이어졌다. 결국 점수를 먼저 내는 자가 이기는 라운드. 덕분에 더 치열했다. 이건과 태경은 턱 아래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너무 즐거웠다. 이렇게 계속 대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마 만에 이런 즐거움을 느껴 보는 건지 모르겠다. 요 1년간은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경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오늘만을 기다리며 쉼 없이 달렸을 뿐.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상관없을 정도로 서이건은 즐거웠고, 그건 한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즐겁더라도 4라운드마저 끝나가는 지금, 두 사람은 승부를 내야 했다.
“한태경, 미안한데 내가 이길 거야.”
서이건의 자신만만한 말에 한태경은 와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화도 나지 않는다. 그저 저 녀석과 함께 다닐 대학 생활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건은 특기인 발차기를 한태경을 향해 힘차게 날렸다.
◆
“축하한다.”
“축하한다.”
경기가 끝나고 삼겹살집에 한태경과 서이건, 진 사범과 김 사범까지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은 살짝 지친 얼굴로 자신들에게 축하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범들에게 인사했다.
“사범님 덕분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이건의 인사가 약간은 이상했지만 진 사범은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 그냥 넘어가겠다고 이야기하며 콜라 한 잔씩을 따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