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호텔 룸도어를 열며 강유한은 정말 놀란 듯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태경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 층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거북한 페로몬에 두통과 함께 눈살이 찌푸려졌다. 원인은 알고 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이 남자의 페로몬은 원래 거북했지만, 아까 어느 정도 퍼즐 조각이 맞춰진 탓에 더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이대로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이 남자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이 꼬였고 깨졌던가. 서이건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도, 그와 함께 올림픽을 나가지 못하게 된 것도 다 이 남자 탓이었다. 누군가의 탓을 하는 것은 나쁜 거라고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태경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지금은 이 남자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들어올래?”
강유한이 한태경이 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섰다. 그는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고, 막 씻은 것인지 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가 미소를 짓자 한태경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아주 조금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면서 미묘한 페로몬의 변화가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실장이 알파였지. 뭐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그 가능성의 끈을 이어 소설을 써야 한다. 아직도 희미한 모든 것을. 그리고 약간의 거짓말도.
“여기 있어요. 혼자 들어갈 테니.”
“네, 알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강유한은 위스키 잔에 술을 따랐다.
“여기서 혼자 뭘 하고 있었어요?”
한태경이 룸을 한번 쓱 훑더니 말을 하자 강유한은 다시 놀란 듯 눈이 동그래졌다.
“나 오늘 생일인가? 아니면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로또 운이 들어왔거나. 믿을 수가 없는걸.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
위스키가 담긴 술잔을 내밀며 그는 유혹하는 미소로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금 기대감과 욕망이 가득했다.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겠지. 오늘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페로몬을 풀어헤친 거겠지.
“페로몬이.”
“아… 눈치챘어? 마침 히트 사이클이 왔어.”
“이번에는 문자를 안 보내셨던데.”
“그러게. 보내도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이번은 안 보냈는데. 그게 정답이었던 가봐.”
살짝 웃으며 강유한의 페로몬이 한태경에게 감기기 시작했다. 한태경은 토기가 올라오는 것을 꾹 눌러 참으며 픽 웃었다. 그리고 손에든 유리잔에 있는 위스키를 강유한의 머리 위에 부어 버렸다.
“뭐….”
강유한이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위스키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페로몬 역겨우니까 지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야!!”
강유한이 소리 지르며 손을 올리려고 하자 한태경이 얼른 그 손을 붙잡았다.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 그놈의 기억 좀 찾아보려고.”
“뭐?”
“격리실을 갔더니 하나하나 다 떠오르더군요.”
“뭐? 뭐가 떠올랐는데?”
“전부.”
강유한의 몸이 천천히 떨리면서 힘이 빠졌다. 뭔가 복잡한 듯 그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렸다. 그러다 일순 실수했다. 생각했는지 다시 원래의 독해 빠진 눈동자로 돌아왔지만 이미 늦었다. 한태경은 그의 모든 심리를 읽었다. 모든 것은 진실이고 사실이다. 확인할 것도 없다.
“당신이 원하는 건 평생 가질 수 없을 겁니다.”
한태경이 강유한을 밀치듯 던졌다. 위스키에 미끄러져 우당탕 소리를 내며 그가 바닥에 엎어졌다.
“너는? 너는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못 가져. 내가 못 가자면 너도 못 가져!!”
“그건 그 사람이 판단하고 내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지 선배가 뭐라고 할 건 아닙니다.”
“한태경!! 너 정말 나한테 왜 이래?! 끝까지 가고 싶어?!”
“끝까지? 한낱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요? 아, 사람이 아니라면 가능하겠지만. 선배는 ‘사람’이잖아요? 곧 파혼 소식이 뜰 겁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으세요. 지금 가진 거라도 뺏기고 싶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