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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아.」
김 사범님이 한태경을 구하러 가기 전이었다. 한태경의 아버지들, 한재우, 김 사범님까지 모두 다 서이건의 병실에 있을 때 김 사범은 진지하게 이건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네.」
「우리가 출발하고 나서 오늘 밤에 네 병실로 그들이 올 거다.」
「네?」
「태경이가 강유한의 약점을 잡고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어. 강유한이 너를 데려올 수 있게.」
「저를요?」
「강유한은 너를 데리고 가서 협상할 거야. 오늘 온 것도 네가 여기 있는지 확인하러 온 거고.」
그 말은 즉, 김 사범님과 한재우의 연극이 이미 들켰고, 이쪽도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순순히 잡혀가면 돼. 너를 해치진 않을 거다. 너를 다치게 해서 한태경을 화나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이라는 것을 강유한은 잘 알고 있거든. 아마 태경이 녀석에게 너를 보여줄 때까진 다치게 하지 않겠지. 그리고 너의 납치를 돕는 놈 중 몇 놈은 우리 쪽 사람이다.」
「이건 선수.」
김 사범님의 이야기 중에 박재경이 다가왔다.
「거절해도 돼요. 아무리 준비해놨다고 해도, 지금까지 모든 것이 태경의 뜻대로 되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위험해요. 그러니 거절해요. 아무도 서이건 선수에게 뭐라고 하지 못해요.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막을게요.」
「하나만 묻겠습니다. 지금 저 다리가 다친 상탭니다. 한태경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요? 진짜 인질이 되진 않겠죠?」
이건의 질문이 의외였는지 살짝 놀란 김 사범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 이미 우리 사람 외엔 다 처리된 상태야. 정말 강유한과 우리가 살려둔 위장한 끄나풀 몇 명만 남아 있는 상태야. 너에게 어떤 해도 가지 않고, 네가 태경이의 약점이 되지 않는 것도 약속할게.」
「그럼 하겠습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어요. 재경 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의 말에 박재경은 한숨을 쉬며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지켜 줄게요. 절대 혼자 있게 하지 않을 테니까. 혼자라고 생각도 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아요. 알았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사범님과 한태석이 한태경을 구하러 가고, 한재우는 작전 본부를 맡았다. 서이건과 박재경은 병실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외면하며 전혀 긴장하지 않은 척, 평상시의 모습으로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렸다. 박재경은 끝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혹여 그들이 그에게 해코지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김 사범님의 말대로 이건을 납치해가는 이들은 이쪽 사람이었다. 그들은 서이건에게도 박재경에게도 약을 먹이지 않았다. 그저 약을 먹은 척을 하고 잠이 들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계획 대로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런 계획을 세울 정도로 한태경은 대체 왜 자신을 데려오게 했을까. 점점 더 미궁 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널 믿는다. 그래서 이건은 눈을 떴을 때 강유한이 있어도, 온몸이 의자에 묶인 상태였어도 전혀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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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경의 페로몬은 같은 알파 페로몬이지만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대학 때는 한태경이 갈무리를 잘해서 그렇게 느낄 일이 없었는데 다시 만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지금의 한태경은 페로몬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보란 듯이 페로몬을 내보일 때도 많았고, 어쩔 수 없이 한태경과 잤을 때도 그의 페로몬이 역겹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한태경이 옆에 있다는 안도감. 그래, 오히려 만족감이 있었다. 간혹 나의 페로몬과 섞일 때는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서로 얽혀 들어가는 페로몬이 안정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다. 한태경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왜?”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네 생각대로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