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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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가위눌리는 것처럼 너무 몸이 힘들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마치 천 톤짜리 돌덩이를 몸 위에 올려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하겠고, 몸도 아팠다. 이대로 다시 잠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에 이건은 힘겹게 눈을 떴다. 다행히 몸 위에는 천 톤짜리 돌이 올라가 있지 않았다. 그냥 룸메이자 라이벌, 친구인 놈이 알몸이 되어 자신의 위에 엎어져 있을 뿐이었다. 왜 이 녀석이 이러고 있지? 생각하다가 금세 사태 파악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자신의 몸도 몸이지만 한태경의 페로몬도 이상하고, 그의 몸도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한태경이 눈을 뜬다면 또다시 끔찍한 일이 반복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진짜 조심스럽게 한태경을 밀어냈다. 최대한 그가 깨지 않도록 진짜 숨도 쉬지 않고 밀어냈다. 덕분에 한태경도 지쳤는지 깨지 않고 옆으로 밀려났고, 이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몸 위가 가벼워졌다. 갑갑함과 눌림은 사라졌지만 역시 숨이 막힐 정도로 죄어오는 페로몬은 여전히 힘들었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읏!”

상체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살짝 몸을 뒤틀었을 뿐인데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이 절로 나와 얼른 입을 막고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깨지 않았다.

“하아….”

하지만 이미 고통을 알아버린 몸은 다시 한번 움직이길 거부하고 있었다. 아마 일어난다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릴 것이다. 무서워하지 말자.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또…. 이건은 얼른 고개를 젓고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

진짜 크게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정말 온몸의 뼈가 다 어긋나서 다시 맞춰야 할 것 같았다. 팔다리 다 따로 놀고 손가락뼈마저 다 빠지고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직 숨만 붙어 간신히 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속도 말이 아니었다. 내장이 다 욱신거리고 배가 당겼다. 정말 얼마나 해댔으면…. 이건은 한태경을 노려보았다. 시발… 진짜 미쳤다. 마른세수를 여러 번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태경과 잤다고? 섹스를… 같은 알파인 것도 모자라 노팅까지 하고…. 아니, 더 생각하면 힘들기만 하다 빨리 벗어나야 해. 이건은 벽을 짚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려 여러 번 미끄러져 주저앉았지만 몇 번의 성공 끝에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벽을 짚으며 걷다가 갑자기 구멍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그대로 멈춰 섰다.

‘시발….’

확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봐야 했다. 이건은 눈을 한번 질끈 아래를 바라보았다. 다리 사이에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함께 하얀 액체가 정말 물 흐르듯 주르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뿐 아니라 다리 사이에 말라비틀어진 액체를 보며 다시금 꿈이 아님을 확인했다. 문제는 안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얼마나 싸질렀는지… 한번 노팅 한 이후 한태경은 뺀 적이 없었다. 그 안에 사정하고 또 사정했다. 정말 목구멍으로 정액을 토할 수 있을 정도로 쏟아냈다. 그것이 아래로 다시 흘러내리니 당연했다. 이대로면 나갈 수가 없다. 이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감금실과 다름없기에 이 안에는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휴짓조각도…. 이건은 한숨 쉬며 주위를 둘러보다 한태경의 태권도 도복 허리끈이 보이기에 그걸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바지를 주워 껴입고 바지 안쪽에 그 도복 허리끈을 접어 흘러나오는 것을 머금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바지에 젖은 표시가 날까 봐 한태경의 태권도복 상의를 허리에 묶고 그곳을 나왔다. 문을 다시 닫으며 이건은 쓰러져있는 한태경을 보았다.

“버리지 않을 거다. 일단 사람 불러올 테니 제발 얌전히 있어.”

핸드폰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서 찾는 걸 포기하고 얼른 문을 닫고 사람을 찾았지만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방학이라 당연한 거겠지만….

“젠장…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아직 해가 중천이다. 하루가 지난 건지 아니면 당일인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버릇처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뒤지다가 허리와 엉덩이를 잘못 건드려 이건은 걷다가 멈추며 숨을 골랐다. 한 걸음 내딛는 게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일 줄이야…. 걸을 때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대로 다시 쓰러지고 싶었다. 눈앞이 핑핑 돌고 몸에서도 열이 났다. 그리고 배도 아팠지만 이건은 어떻게든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한태경을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젠장, 그 경호원 형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한태경을 찾아야 할 거 아니야. 찾고 있는 거겠지?

“하아… 하아….”

더는 안 되겠다. 바지는 이미 흘러내린 정액으로 축축 했고,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목도 너무 말랐다. 그래, 차라리 물이라도 마시면 좀 나으려나. 이건은 바로 앞에 화장실 표시를 보고 얼른 화장실로 갔다. 수돗물이지만 세면대 물을 손에 받아 얼른 한 모금 마셨다. 마른 목을 축이니 정말 살 것 같았지만 다리에 힘이 훅 하고 빠졌다. 털썩 주저앉았더니 젖은 바지 틈 사이로 시원한 바닥이 느껴졌다. 온몸이 뜨거웠다. 이대로 누워있고 싶었다.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잠시만… 잠시만 눈 감았다 뜨면 나아질지도 몰라. 이건은 그대로 눈을 감고 의식을 잃었다.



…어디서 사고가 난 걸까. 구급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사람들의 뛰어가는 발소리도… 사람들? 구급차? 이건은 눈을 번쩍 떴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여기서 물을 마신다고… 그 이후 의식을 잃은 건가. 맙소사. 지금 몇 시야? 이건은 화장실 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아까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해가 많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갑자기 피가 싹 내려앉았다. 한태경은? 그 새끼는 괜찮은 걸까? 그리고 구급차와 사람이라니…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누가 한태경을 발견했을까? 만약 바퀴벌레 새끼들이면 어쩌지. 이건은 아까보다 더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화장실을 나왔다. 설마 그런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요.”

“아니… 말이 안 나와요. 정말 확실해요?”

“확실하다니까요.”

화장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몇 개의 무리를 만들어 심각하게 이야기 중이었다. 그들을 보니 확실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이건은 절뚝거리며 가장 가까운 무리의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한참 심각하게 이야기하다 이건의 몰골을 보곤 깜짝 놀랐다. 어디 맞은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을 터져있다. 그리고 손끝은 보라색이었다. 정말 어디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서 그들은 주춤 뒤로 물러났다가 한 사람이 이건을 알아보았다.

“서이건 선수?”

“아… 네….”

“아니,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 감기 몸살이요.”

“그럼 쉬지 왜 나왔어요!”

“아 여기에 볼일이 좀 있어서… 저기 무슨 일이 있나요? 구급차 소리를 아까 들었는데.”

“아, 아! 맞다!! 서이건 선수 한태경 선수랑 룸메이트죠?!”

쿵- 하고 심장이 떨어졌다. 이 사람에게 한태경의 이름이 들렸다는 건…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건을 바라보더니 다가왔다. 마치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한태경이 발견되었고, 병원에 실려 간 거라면 다행이다. 아마 잘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까.

“네, 맞아요.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어휴, 말도 말아요. 진짜 큰일이 생겼어요.”

“뭔, 뭔데요? 무슨 일이죠?”

“글쎄, 한태경 선수가 러트가 와서 오메가를 강제로… 어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강제 각인까지 했다고-. 그래서 오메가도, 한태경 선수도 각인 쇼크 와서 의식을 잃고 그걸 누가 발견해서 구급차 불러서 둘 다 실려 갔어요.”

뭐…? 지금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야. 이건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겪은 일과 너무 달랐다. 혹시 자기가 겪은 일이 다 꿈이고 저게 진짜였던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아직까지 자신의 몸속에 품고 있는 정액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이렇게 생경한데 그게 꿈일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장난하지 마세요… 그 녀석 그럴 녀석이 아니에요. 강제로… 오메가를….”

“우리도 본 게 아니니까 확실하게 말은 못 하지만 발견한 사람 말론 그래요. 강제로 각인 당한 것 같다고, 안 그러면 그렇게 쇼크 안 오지. 게다가 한태경 선수 러트 온건 확실하고….”

“그, 그 오메가는 누군데요? 대체 누가.”

그 주위에 오메가는 없었다. 적어도 이건이 나왔을 때 주위에 오메가 기척이나 페로몬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는데…. 게다가 문을 닫고 나왔어. 그렇다면 그 안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고… 그 격리실은 알파 전용이라 오메가가 들어갈 리도 없는데.

“누구더라….”

“그 체육심리학과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강… 강유한?”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