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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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태권도 하겠지? 생각하며…. 다행히 그는 계속 태권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태권도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주니어 국가대표를 노리고 있었다. 언제고 만날 수 있겠지? 같이 대련할 수도 있고, 괴물도 함께 무찌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한태경은 매일 서이건의 영상을 봤다. 그가 나온 작은 뉴스도 빠지지 않고 챙겨 보았다. 그가 하는 태권도의 특징과 장단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익혔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은 그가 약한 부분을 더욱더 연습하고 특기로 만들었다. 그러면 서로에게 부족한 점이 채워져서 자신의 몸속에 있는 이 괴물을 더 빨리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이건을 만나 대련하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주니어 국가대표가 되었지만, 아직 몸이 작은 한태경과 서이건은 체급이 달랐고, 체급이 비슷해졌을 때는 한태경은 주로 외국에, 서이건은 국내 대회에 배정받아서 경기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결국 만날 방법은 국체대 선발전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한태경은 열심히 몸과 마음을 수행했다. 서이건에게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그와 동등한 실력으로 함께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괴물은 지금도 잠들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괴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 이후 괴물은 깊숙한 곳에 숨어 버렸고 나오지 않았다. 서이건을 만나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괴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서이건을 다시 만난 것은 국체대 필기시험 때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 꿈인 줄 알았다. 영상을 너무 많이 봤더니 지금 자신이 영상을 보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아니었다. 그는 존재했다. 확실히.

‘와, 형, 진짜 히어로 만난 거야?’

서이건을 카페에서 보고 함께 경찰서에 가고….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생들에게 서이건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동생들은 서이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한태경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를 만났어. 이제 함께 싸울 수 있어.’라고 말하자 동생들은 제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그 히어로는 형을 알아봤어?’

한태경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동생들은 얼른 입을 합 다물었다.

‘아니.’

그게 좀 속상하다면 속상하긴 한데…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잠깐 스쳤을 뿐이고, 그때 정말, 정말 작았었다. 지금은 그때의 모습이 다 사라져 같다고 할 수 있는 건 머리색과 눈동자 색밖에 없었다.

‘나라도 알아봤으니까 됐어.’

태경은 웃었다. 자신은 멀리 있어도 서이건을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영상을 봤으니까. 몇 살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알고 있다. 동생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눕자, 그날 멀리서 달려오며 자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던 서이건의 모습을 떠올렸다.

맞아. 이름은 알고 있었지. 그걸 동생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아주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선발전 아니면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서이건을 이제 자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잠이 들었다.



“하아….”

한태경은 무알코올 샴페인이 든 잔을 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서이건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온 날, 토라진 큰 아버지를 달래주다 원하시는 거 다 하겠다고 했더니 바로 며칠 뒤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냈다.

무려 한태경 국체대 수석 합격이라는 플래카드를 달고 NI 본사 건물 연회장에서 축하연을 연 것이다. 아버지들이면 당연히 축하 파티를 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크게 벌일 줄이야…. 별것도 아닌 자신의 대학 합격 축하연에 국회의원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임원들로도 모자라 유명한 셀럽들까지 참석한 것을 보고 태경은 정말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형, 이 좋은 날에 왜 한숨이야?”

“복 다 나간다.”

한재우와 한태은, 한태경의 쌍둥이 동생들이 태경과 마찬가지로 무알코올 샴페인이 든 잔을 들고 나타나 태경의 잔에 셀프 건배하며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오버 아닌가 싶은데.”

“아버지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라고 말한 건 오빠잖아?”

16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